[좋은수필]땅찔레꽃 / 김기섭
땅찔레꽃 / 김기섭
하얀 꽃이 피었다. 찔레꽃이 앙증맞게 피었다. 어머님 산소에 땅찔레가 꽃을 피워 올렸다. 작년까지 보이지 않던 땅찔레가 어느새 터를 잡고 있었다. 어머님이 과수원의 그 땅찔레를 여기까지 데리고 오신 걸까.
고향과 어머니는 누구에게나 그리움의 대상이다. 자랑 할 것 하나 없는 메마른 땅일지라도 인자한 어머니가 목을 빼어 자식들을 기다리는 곳이 고향이다. 태어난 강물의 냄새를 잊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돌아오고야 마는 연어들처럼 몸속 깊은 곳에 숨어있는 고향의 냄새와 그리움은 언제나 우리를 부른다.
돌아가신 어머님이 그립거나, 뛰 놀던 고향의 언덕이 생각날 때면 나는 가끔 어머님 산소를 찾아간다. 고생스러웠지만 아름답던 시절, 지금은 변해버린 고향의 모습에 가끔은 서글픔과 실망을 느끼기도 하지만 마음은 언제나 그 곳을 맴돈다.
지난봄, 어머님 산소를 돌아보다가 저만큼 떨어진 곳에 피어있는 하얀 꽃 몇 송이가 눈에 들어왔다. 땅찔레꽃이었다. 작년까지도 없었는데 어디서 나타났을까. 나는 시골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꽃이나 나무들의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초등학교를 졸업 한 후 중학교 때 부터 곧장 도시로 나와 학교를 다닌 탓도 있겠으나 아마도 무관심의 소치인 듯하다. 하지만 땅찔레라는 이름은 내 기억 속에 깊이 새겨져 지워지지 않는다.
학창 시절, 나는 주말이나 방학 때면 으레 고향으로 가서 부모님의 바쁜 일손을 도와야 했다. 부모님께서는 논밭 농사와 과수원을 하셨는데 사과나무 사이에 간작으로 주로 콩을 심었다. 콩밭 골을 타고 잡초를 뽑고 사과나무 소독을 하는 등 농사일은 끝이 없었다.
시원 할 때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일을 할 욕심에 아침 일찍 들로 나가곤 했다. 일을 하다보면 금방 배가 출출해 온다. 그 때쯤이면 어머님은 어김없이 새참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나타나셨다. 감자나 국수를 삶아 막걸리 주전자를 들고 산모퉁이를 돌아 오셨다.
어느 날 사과나무 그늘에 앉아 새참을 먹고 잠시 쉴 때였다. 과수원 탱자나무 울타리 사이로 드문드문 피어있는 하얀 꽃 몇 송이가 눈에 들어왔다. 앙증맞은 꽃이 너무 예뻐서 한 송이를 따다 어머니께 드렸다. 꽃을 받아든 어머니는 빙그레 웃으시며 그 꽃을 ‘땅찔레’라고 하셨다. 그냥 가시 넝쿨로 알았던 그 꽃이 땅찔레라는 것을 그날 처음 알았다.
땅찔레는 생명력이 무척이나 강해서 산비탈의 메마르고 거친 땅이나 자갈밭에서도 잘 자란다. 여느 식물과는 달리 하늘을 향해 자라지 않고 이름처럼 땅에 바짝 붙어 자라는 줄기식물이다. 줄기식물이 다 그렇듯 땅찔레도 줄기가 땅에 닿으면 그 자리에 새 뿌리를 내리고 뻗어나간다.
땅찔레는 사람들로부터 그렇게 환영 받지 못한다. 그러나 삶에 대한 애착은 대단하다.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저도 소나무나 느티나무처럼 당당한 모습으로 하늘을 향해 뻗어나가고 싶고, 장미처럼 화려한 꽃을 피워 뭇 사람의 사랑을 받아보고 싶은 욕망이 왜 없겠는가. 하지만 몸은 땅으로 기어가고, 꽃도 부끄러운 듯 덤불 속에 숨어 피운다.
이렇듯 땅찔레는 세상의 무관심 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꿋꿋하게 살아간다. 어쩔 수 없는 태생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땅찔레의 그러한 삶이 어쩌면 어머니의 삶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는 열아홉에 시집오셨다. 여덟 자식을 낳아 기르며 자식들에게 화를 내거나 신세를 한탄하는 말씀을 들어본 적이 없다. 남을 시샘하거나 미워한 적도 없었다. 평생 무명옷에 사치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사셨다. 몸에 지닌 사치품이라고는 결혼기념으로 받은 두 돈짜리 금반지 하나가 전부였다. 평생을 검소하고 알뜰하고 잔잔하게 그 자리를 지키셨다.
말년, 기력이 쇠잔하시어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 하시면서도, 무엇을 잡수시고 싶냐고 물으면, ‘나는 다 잘 먹는다. 아무거나 다 맛있다.’ 라고 하셨다.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겨우 한두 술 뜨고 숟가락을 놓으실 땐 목이 메었다.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배려였으리라.
온갖 궂은 일로 손마디가 굵어져 뺄 수도 없는 금반지를 낀 채 따스한 봄날 먼 길을 떠나셨다. 생전에 살던 집이 내려다보이고 평생을 함께한 논밭이 멀리 바라보이는 앞산 양지 바른 곳에 어머님을 모셨다.
땅찔레가 반가웠지만 번창해 산소를 덮어버리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는 일이다. 산소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뽑아버리겠다고 손을 뻗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것은 잔인한 짓이란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우리가 모르는 동병상련의 정이 서로 통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만약 어머니와 땅찔레 사이에 쉬 끊을 수 없는 끈끈한 정이라도 있다면 그 정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하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좀 더 두고 보기로 했다.
달빛이 훤히 내리는 밤이면 어머니와 땅찔레는 마주 앉아 정담을 나눌지도 모른다. 땅질레는, 몸은 비록 땅을 기어야하는 얄궂은 운명이지만 하얀 꽃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하며 눈 내리는 겨울에는 빨간 열매를 따먹으러 산토끼들이 놀러 온다고 자랑 할 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저기 보이는 파란 대문집이 내가 팔 남매를 낳아 키운 집이라고 자랑하시고 금반지도 내 보이실지 모른다. 어머님과 땅찔레의 모습이 훤한 달빛 속에 어우러지면서 조근 조근 속삭임이 들려오는 것 같다.
그날따라 유난히도 하얗고 앙증맞은 땅찔레꽃과 어머님의 환한 얼굴을 떠올리며 즐거운 마음으로 산소를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