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수필]연근 / 전용희
연근 / 전용희
매일 아침 식탁에 올라오는 삶은 연근을 본다. 연근은 연의 줄기이다. 식감이 경쾌하고 아삭하며 담백한 맛이다. 연근을 말려 차로 마시기도 한다. 생김새도 여러 가지로 하트 모양도 있다. 통기 구멍을 헤아려 보니 보통 9~10개이다. 그 수가 사람과 같은 것이 우연의 일치인가. 연근을 먹으며 이 연은 어디서 왔을까. 어떤 연꽃이었을까. 이런저런 생각에 몇 년 전 연꽃을 찾아다니던 생각이 떠올랐다.
천 개 이상의 연꽃을 카메라에 담았다. 아내의 사진 동호회에서는 매년 연꽃 사진 전시회를 하고 있었다. 처녀작을 담기 위해 가까이 있는 반야월을 비롯하여 경주, 함안, 성주, 밀양 등 연꽃을 찾아다녔다. 진흙 속에서도 청결하고 단아한 꽃을 피워낸다. 모양도 모두 다르며 저마다 다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비록 진흙 속에 뿌리를 박고 살지만, 꽃은 흙탕물이 없이 깨끗하다. 신성함마저 느껴진다. 비가 온 날 뒤에 가면 보석 같은 물방울을 연잎 위에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작은 물방울들이 햇빛에 반사되어 다이아몬드처럼 빛난다. 잎을 건드리면 구슬처럼 데굴데굴 굴러내린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연을 경주 서출지에서 만났다. 그 많은 연 속에서도 가슴에 와 닿는 연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신라 천년의 역사가 서린 장소에서 물속에 비친 아침 햇살의 아우라와 함께 운명처럼 나타난 연을 정성스레 담았다. 한숨을 돌리고 난 뒤 연못 둑을 걸어본다. 배롱나무의 붉은빛이 연꽃과 잘 어우러져 있다. 눈을 감고 천년의 숨결을 느껴본다. 천년 전에도 아름다운 연꽃이 피었으리라. 왕의 목숨을 구한 글(書)이 나온(出) 못(池)이라 하여 서출지가 되었는데, 나도 구해주다니 역사의 숨결과 함께 그 의미가 새삼 가슴에 다가온다. 작품 연을 찾아 온 경남북을 돌아다닌 고생을 마감하게 해준 소중한 연을 오래도록 잊을 수 없다.
삶은 연(緣)이다. 부모와의 연으로 삶은 시작한다. 어떤 삶은 운이 좋아 금수저로 출발하고, 어떤 이는 흙수저로 태어난다. 형제, 자매를 만나고, 친구와의 연을 쌓고, 부부의 연을 맺고 가족의 연이 된다. 삶을 통하여 수많은 연이 만들어진다. 좋은 연도 나쁜 연도 있다. 얽히고설킨 연의 줄기 속에서 살아간다.
연에서 삶을 배운다. 사람들과의 연에서 인생을 배우듯 많은 삶의 교훈을 얻는다. 연밭에 가까워지면 연향의 내음이 은은하게 다가온다. 연꽃의 향기는 훈훈한 사람의 인격이다. 연꽃은 진흙탕 속에서 피지만 더러움에 오염되지 않는다. 연잎과 줄기의 자태도 싱싱하고 푸르다. 주변의 환경에 아랑곳하지 않는 건강한 사람과 같다. 진흙탕을 자신의 꽃밭으로 만든다. 물 위에 드러난 연꽃의 줄기는 유연하여 바람이 불면 흔들리지만, 웬만큼 부러지지는 않는다. 부드럽고 융통성 있는 삶의 지혜를 얻는다.
연잎은 어느 한군데 모나지 않고 원만한 사람처럼 동그랗다. 자신의 환경에 불평하지 말고 견디면 연꽃처럼 아름다움을 피워낼 수 있다고 보여준다. 비 내리는 날 연잎에 물이 얼마 정도 채워지면 흔들어 내려버린다. 그릇에 담지도 못할 만큼의 욕심이 없다. 연근을 자르면 가는 실과 같은 것이 엉기는데, 사람의 연이 엉기어 떨어지기 어려운 것과 비슷하다. 맺기보다는 헤어짐이 힘든 사랑의 연을 보는 것 같다. 연근 속은 얼마나 흰색인가. 주변의 역경에도 불구하고 깨끗함을 잃지 않는 고귀한 삶을 닮았다. 연근은 소금이나 식초를 넣은 물에 담가 떫은맛을 제거한 후 삶는다. 삶의 고통에 절어 본 사람만이 내면의 인격이 깊어지고 진정 삶의 맛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닐까.
연은 목적에 따라 토양이 다르다. 모래밭에서는 생육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사상누각이 되는 우리의 삶을 닮았다. 꽃과 연근을 위한 토양은 다르다. 각자의 삶의 목적에 따라 적합한 환경과 조건이 다르듯이 말이다. 우리의 청년들은 너도, 나도 높은 스펙을 쌓기 위해 몸살을 앓는다. 대학 진학률은 너무 높다. 대학을 가서도 해외어학연수는 기본이고 휴학이 졸업의 필수 조건이 된 듯하다. 척박한 토양으로 과도하게 비료를 주고 있다. 소모적인 경쟁으로 국력의 낭비이다. 경쟁이 높아지는 만큼 출산율은 내리막길이다. ‘대학은 잊어버리고 배관공이 되라’는 억만장자 블룸버그의 말이 떠오른다. 대학을 가지 않아도 충분히 인정받고 꽃을 피울 수 있는 사회적 토양이 필요하다. 혼자만의 삶이 아닌 우리의 삶이기에 나의 삶도 너의 삶도 함께 중요하다.
연처럼 강한 회복력과 생명력을 담고 싶다. 율곡 선생이 신사임당을 여의고 실의에 빠져있을 때 건강을 회복하여 준 음식이 연근죽이었다. 연근의 효능은 여러 가지로 많다.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난 뒤 땅속에 묻힌 연의 줄기마저도 사람들에게 훌륭한 음식 재료가 되어 건강에 보탬을 준다. 하나 버릴 게 없는 고귀한 존재이다. 연의 종자는 강한 생명력을 가졌다. 땅속 10℃에서 이천년 이상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이 학계에 보고되어 있다니 그저 놀랍기만 하다.
한 번뿐인 삶의 시간 속에서 소중한 연을 맺으며 살아간다. 삶이 수많은 연으로 이루어진 연의 줄기라면, 연의 줄기인 연근을 먹고 있는 나는 삶을 매일 먹고 사는 셈이다. 오늘 먹은 삶은 금방 나의 것이 되고 내일의 삶으로 이어진다. 삶의 시간을 먹으며 나이도 먹는다. 시간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보이지 않던 것이 하나씩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무한에 가까웠던 시간의 공간이 점점 좁아져서 이제 작게 보이기 시작한다. 더는 무엇이나 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하지 않는다. 먼 곳만 바라보던 시선을 이제는 주변으로 옮겨놓아야 할 때다. 악연의 시간은 망각과 용서의 늪에 빠트려야 한다.
머나먼 길을 지나 외로이 오솔길을 걸을 때라도 아름다웠던 시절이 그리워지리라. 삶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라 사소한 시간이 모여 소중함으로 태어난다. 삶은 그리움의 갈망(연: yearn)이다. 지나버린 시간이 그리워지는 때이다. 연자육 차를 마시며 추억에 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