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좋은수필]성당의 종소리 / 조이섭

cabin1212 2021. 11. 5. 05:52

성당의 종소리 / 조이섭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집 다오. 어린 시절 손등에 모래를 높다랗게 쌓아놓고 동무들과 부르던 노래다. 나는 요즘 두꺼비처럼 헌 집을 새집으로 고치고 있다.

퇴직하고 남자의 동굴을 만들어 볼 궁리를 하던 차에, 작은 문학회를 맡게 되었다. 삼삼오오 모여 공부할 공간이 아쉬워 도심에 오래 방치되어 있던 낡은 한옥을 빌리기로 했다. 기와를 새로 얹는 등의 보수는 건물주 몫이고, 도배하고 장판 새로 까는 일은 외주를 주었다. 하지만 싱크대의 묶은 때를 벗기고 창문틀을 씻어 내는 거랑 세면장의 타일 사이에 낀 곰팡이는 한두 번 걸레질로는 어림없었다. 집 안팎 구석구석에 켜켜이 쌓여 있는 먼지는 또 어쩌고. 집을 통째로 세탁기에 넣고 돌렸으면 하는 마음이 들 정도였다. 종일 허리 한번 펼 사이 없이 강도 높은 노동의 연속이었다. 누가 억지로 시켰다면 욕지거리가 절로 날 테지만, 제출물로 하는 일인지라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그러구러 일주일 정도 지나자 제법 사람 사는 집 태가 나기 시작했다.

해거름이 되어 귀가 준비를 하는데 종소리가 들린다. 시계를 보니 6시다. 골목 건너 계산 성당에서 치는 삼종 소리다. 삼종은 땡! 땡! 땡! 세 번씩 3회 반복 후에 일정 간격으로 친다. 이 종소리를 들으며 올리는 기도를 삼종기도라고 부른다. 삼종기도는 처음에는 저녁에만 바쳤으나 차차 아침 6시와 정오에도 바치게 되었다. 밀레의 만종(晩鐘)이 바로 고된 농사일을 끝내고 삼종기도를 올리는 그림이다.

하루의 노동을 끝내고 듣는 성당의 삼종 소리, 오랜만에 느끼는 퇴근의 즐거움에 더해지는 평화로움이다. 보수는 없지만, 문우들이 무람없이 드나들 공간을 가꾸는 일이라 보람이 도도록하게 솟아난다. 이 집을 잘 다듬은 다음, 다산 선생이 시우들과 교우했던 죽란시사(竹欄詩社)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옹골진 꿈을 삼종 소리에 실어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