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수필]고요 속의 소요 / 김길영
고요 속의 소요 / 김길영
한 사내가 강물에 낚싯대를 편다. 사내의 머릿속에는 이미 자 짜리 붕어로 가득 차 있다. 낚싯대를 편다고 생각만큼 물고기가 잡히는 건 아니다. 집에서 준비하고 강에다 낚싯대를 펼 때까지는 낚시꾼의 가슴은 항상 부풀어 있다.
어느 곳이나 낚시터 풍경은 한 폭의 동양화다. 팔자걸음으로 걷는 노인처럼 느릿느릿 흐르는 강 언덕엔 고향을 알 수 없는 버드나무 몇 그루 숲을 이루고 산다. 수천 개의 귀를 가진 버드나무는 온종일 강물에 몸을 담구고 흐느적거리며 강안江岸의 자질구레한 이야기까지도 귀담아 듣는다.
낚싯대에서 멀찌감치 쇠오리와 왜가리, 물총새 떼가 새빨간 눈알을 굴리며 강바닥을 살핀다. 수면 아랫마을엔 수시로 민방위훈련 사이렌이 울리고 여러 권속들은 흙탕물 속에서 기민하게 움직인다. 경험 많은 놈들은 곧 상황을 파악하고 대처하는데 소홀함이 없지만 어린 것들은 숨바꼭질 할 때처럼 몸은 밖에 드러내놓고 머리만 숨긴다.
잽싸게 순간을 포착한 쇠오리 떼의 동작 하나하나에는 실패란 거의 없다. 날렵한 쇠오리부리에 어김없이 피라미가 물려 나온다. 운명을 다한 피라미는 포승에 꽁꽁 묶인 사형수 신세 같다. 이제 피라미 운명은 바람 앞에 등불이다. 성찬을 앞에 둔 쇠오리가 허기를 채우려고 긴 목 줄기를 쓰다듬는다. 죽음의 그림자를 발견한 피라미는 꼬리에 힘을 실어 쇠오리 뺨을 후려쳐 보지만 이미 때를 놓쳤다.
잠시 후 자 짜리 붕어도 별수 없이 지렁이 반 토막에 숨긴 낚시 바늘을 물고 나온다. 둥근 눈알을 굴리며 바깥세상을 휭 둘러본 붕어는 저승사자를 발견한 듯 휘둥그레 소스라쳐 놀란다. 붕어 역시 민첩한 낚시꾼 동작에 불가항력이다. 어느 곳이나 살아있는 것들은 다른 생으로 하여금 제압당하기 일쑤다.
낚시꾼의 끈질긴 노력은 결실을 얻기 위함이다. 하지만 세상일은 만만치가 않다. 물고기의 식성을 잘 파악한 낚시꾼은 월척의 꿈을 이루기도 하지만 욕심을 부린다고 물고기가 덥석 걸려들지 않는다. 한 마리 물고기를 낚으려 해도 고소한 떡밥으로 꼬드겨보고 지렁이 반 토막으로 홀리기도 해 보는 것이다.
세상에 살아 있는 것들은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한다. 어떤 생이 어떤 죽음을 맞이하느냐에 따라 기록이 다를 뿐이다. 사람도 태어나 늙고 병들고 죽는다는 불문율을 벗어나기 힘들다. 생은 생사의 고리에 엮여 있기 때문이다.
어떤 미물도 태어나서 건강하게 살다가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순리다. 하물며 인류의 숙원은 생존과 재생산에 있다. ‘죽음이란 세상에서 없어지는 것.’ 불의의 사고를 당하는 것도, 스스로 죽음의 구렁텅이에 빠지는 것 또한 불행한 죽음이다.
오늘도 강가에 일가를 이룬 쇠오리의 눈빛이 번뜩이고 낚시꾼의 욕망이 죽음의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수면 아랫마을엔 예측된 긴장감이 흐른다. 살아있는 것들이 강 안팎에서 필사의 노력을 경주하는 까닭은 오래 살아남기 위해서다. 오래 살아남는다는 것. 살아남은 것들의 축복 중 축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