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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천장(天葬) / 윤남석

cabin1212 2021. 11. 23. 05:52

천장(天葬) / 윤남석

 

 

 

켁켁’ 고양이가 토해낸 *헤어볼같이 꺼무끄름한 실 몽당이가 드디어 중앙선을 넘었다. 휘불던 바람이 개켰나 보다.

오른편 차선에서 판판하게 다림질되더니,, 엊저녁에는 중앙선에 일정한 간격으로 박아놓은 경사진 반사판 위에서 불거진 털붙이가 번득였다. 돌출된 도로 표지병을 고양이 눈(Cat's eye)’이라고도 한다.

털붙이가 팽창된 고양이 눈빛처럼 표지병 위에서 마지막 발광을 드러냈다. 길게 그어진 야광도로위에 여러 겹으로 접힌 털붙이에서 반사광이 강렬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그렇게 서서히 발인(發靷)을 준비하는 걸까.

 

고양이가 소녀에게 말했네

이런 일로 네가 그토록 가슴 아플 줄 알았다면

새를 통째로 다 먹어 치워 버릴 걸

그런 다음 얘기해 줄 걸

새가 훨훨 날아가는 걸 봤다고

세상 끝까지 훨훨 날아가더라고

-자크 프레베르(Jacques Prevert)고양이와 새중에서

하지만 돌이킬 수 없어. 그래, 그건 슬픈 이야기듯이 차가 늙은 고양이를 잡아먹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르지.

 

열흘 전쯤, 퇴근하던 길이었다. 전조등에 녀석의 죽음이 비쳤다. 순간적으로 핸들을 꺾어 가까스로 그 주검과 부닥뜨림은 피할 수 있었다. 그 현장에서 불과 삼십 미터 앞에는 군부대 정문이 있다. 부대 정문의 위병은 감시에 소홀함이 전혀 없다는 듯 철통 같은 눈초리로 오가는 차를 응시하는 것 같았다. 유일한 목격자일 수 있지만, 무슨 일이라도 있었느냐는 표정으로 근무에 만전을 기하는 듯했다. 별로 대수로운 일도 아닐뿐더러 프레베르의 시구처럼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고양이가 새를 잡아먹는 것이나 차가 고양이를 잡아먹는 것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 그래, 모두 어쩔 수 없고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다음날 아침, 황색 실선 너머에서 낭자한 황갈색 얼룩 고양이의 한뎃장사가 엄숙하게 치러지고 있었다. 간밤에 많은 차량이 조등을 밝히고 빈소를 다녀간 모양이다. 큰 트럭에서부터 승용차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문상객들이 추도의 뜻을 남겼다. 크고 작은 타이어가 엄청난 마찰계수를 일으켰다. 타이어 단면폭의 특수 고무는 내마모성과 내충격성을 자랑한다. 그 타이어의 두꺼운 고무층이 아주 잘게 짓이긴다. 갈지자형으로 패인 무늬가 그렇게 총총 다지고 있었다. 군부대 울타리 너머에 정정한 서너 그루의 미루나무가 상주처럼 슬픈 몸짓으로 조문을 받는 듯하다. 그 물오른 미루나무 애채에서 뭇 까마귀들이 어른댄다.

우감이 스친다. 불현듯 티베트의 장례풍속인 천장天葬이 솝뜬다. 천장은 가장 깨끗하게 마지막을 정리하는 것으로, 불교에서 말하는 근원적 물질인 땅, , , 바람으로 시신을 회귀시키는 의식이다. 천장 터에 운반된 유체를 천장사가 잘게 부수듯, 육중한 바퀴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 보시한 유체는 장례를 담당한 타이어가 날사이 잘게 부순다. 아주 잘게, 그렇게 잗다랗게 다진다. 삶이란 낱말을 완전히 지워낸 얼굴 고양이는 천국의 사자에게 바쳐질 제물일 뿐이다. 외지인에게 충격적인 천장이 티베트인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일상적이듯, 아스팔트에서의 삼연한 의식을 누구도 꺼림하게 생각지 않는다. 무덤덤하게 거행된다. 어디에도 충격 때문인 공명선은 감지되지 않는다. 남는 것은 털 부티뿐이다. 보릿가루로 만든 짬바로 버무린 분골은 영혼의 흔적을 하늘로 운반해주는 메신저인 독수리가 아낌없이 먹어치우듯, 뭇까마귀들은 한적한 틈을 노릴 것이다.

이어는 바로 이다. 그 구르는 바퀴를 윤회라고 한다. 이제 그 윤회의 몸서리나는 수레바퀴에서 벗어나려는 걸까. 아스팔트 위에는 질겅질겅 씹다 버린 껌처럼 나부랑납작해진 털붙이만 남아있다. 그 털붙이가 눅눅한 밤바람에 마치 헛구역질을 하며 게워낸 헤어볼같이 엉겼다. 지금쯤 얼룩 고양이의 영혼은 하계下界를 내려다보며 바람이 개킨 털붙이를 다시 그 바람이 온전히 데려가기를 바랄 것이다

멀리 쌍심지를 켠 불빛이 다가오고 있었다. 고양이는 타고난 민첩성을 가졌다. 최고 시속 48km로 질주할 수 있을 만큼 놀라운 운동신경을 갖췄다. 동공이 점차 커진다. 고양이의 눈은 어둠 속에서 능력을 십분 발위하지만, 빛을 받아들이는 수정체가 크기 때문에 곡륭의 조절이 또렷하지가 않다. 달려드는 헤드라이트가 흐릿하다. 노화로 백내장이 생긴 걸까. 귀를 쫑긋거려본다. 고양이의 귀는 12개 이상의 근육으로 형성되어 5만 헤르츠(Hz)의 초음파까지도 듣는다. 귀를 뒤로 돌릴 수 있기에 후방의 소리에도 민감하다. 더구나 사물과 자신의 거리까지 파악할 수 있는 고성능의 귀를 가졌다. 소리 때문인 공기압의 파동을 뇌로 전달하여 해석한다.

모든 동물에겐 '6'이 있다. 그 감으로 마음을 읽거나, 적의나 공포가 느껴지는 상대방에게 공격을 감행하기도 한다. 전방에서 사납게 달려드는 불빛을 주시하며 강하게 스크래치 한다. 발톱을 날카롭게 가는 것은 자신의 냄새를 묻혀 영역을 선언하려는 표시이기도 하지만, 행동개시를 할 때도 발톱을 간다. 땅이 깊이 파일수록 자신의 힘을 과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발에 달린 다섯 개의 발톱으로 땅을 세차게 긁는다.

, 고양이에게는 안테나 역할을 하는 감각털이 있다. 입 주위, 눈 위, , , 앞발 뒤의 장식 털에도 있지만, 수염만큼 발달하여 있지는 않다. 고양이는 수염의 끝 부분을 연결하여 그려지는 동그라미 정도의 범위를 충분히 통과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비좁은 곳을 지날 때도 자기 몸집으로 지나갈 수 있는지를 눈으로 확인하는 게 아니라 수염이라는 레이더로 미리 확인한다. 고양이의 수염은 움직이는 대상의 속도와 방향을 감지한다. 그 수염의 뿌리에 신경이 집중되어 있어 풍향과 기압의 변화를 감지하고 공기의 움직임에 따라 대상물의 크기를 알아차린다.

고양이가 눈을 커다랗게 뜨고 '가르릉' 소리를 낸다. 대개 밥을 먹고 나서 만족감을 나타내거나 상대방을 안심시킬 때 가르랑거리지만, 당황함을 느끼면 스스로 위안을 삼고자 내는 소리이기도 하다. 눈을 가늘게 뜨거나 크게 뜨는 것은 분노 혹은 공포심을 느낀다는 의미이다. 삼손의 머리칼 같은 수염을 뒤로 젖힌다. 공격을 할 때도 수염이 뒤로 젖혀지지만 위험을 느끼거나 두려울 때도 그런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관자놀이의 맥박이 빨라진다. 찡그린 표정을 지으며 입술을 말아 올린다. 입천장으로 공기를 빨아들여 보지만 썩 달콤하지가 않다. 밤공기가 음산스럽다. 슬그미 몸을 핥는다. 불안감을 표현하는 몸짓이다. 다시 오돌토돌한 돌기가 나 있는 껄끄러운 혀로 털을 다듬어본다. 서늘해진 담을 추슬러 보려는 걸까.

긴장감이 잔뜩 죈 기타 줄처럼 켕긴다. 너무 늙어버린 걸까. 예전의 힘찬 뒷다리와 유연한 등골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둔한 감각을 숨기고 싶은 자존심 또한 강하다. 몸을 크게 보이려고 털을 빳빳이 곤두세우고 꼬리를 부풀린다. 달려드는 적을 박지르고 싶은 마음에 꽁무니뼈에 어색할 정도로 힘이 들어간다. 그러나 이미 잃어버린 근육의 탄력을 숨기기 위한 헛발악으로 비친다. 예민한 후각으로 냄새를 맡아보지만 그리 입맛 다실만 한 먹잇감은 아니다. 그러나 발톱에 힘을 싣고 다시 사냥감을 탐지한다. 타고난 본능일 게다.

횅한 두 개의 불빛이 격하게 부딪친다. 하지만 반발계수가 극심한 도표를 긋는다. 난란한 불빛에 홍채의 신축이 흐트러진다. 눈이 부셔 차마 눈을 뜰 수가 없다. '마누의 법전'에 고양이를 '달의 상징'이라 부르며 소중히 여겼다는 기록이 있듯, 고양이의 눈이 둥그스름한 달처럼 커진다. 고양이는 그 보름달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간다. 그 통로는 마치 산도産道를 닮았다.

진통이 시작된다. 양수가 터지고 산도가 열린다. 열린 산토를 통해 피가 섞은 붉은 덩어리가 나온다. 얇은 태막에 쌓인 핏덩이가 빛을 쐰다. 어미는 그 태막을 핥으며 탯줄을 씹어 끊는다. 어미는 어지간하게 젖은 새끼의 몸을 핥아 자극한다. 숨통을 트이게 하여 울음소리를 내게 한다. 조금 지나 거무스름한 태반이 나오면 어미는 이것을 먹는다. 태반에는 어미에게 필요한 영양이 모두 포함되어 먹는 것은 본능이다. 새끼는 어미 품에 안겨 목구멍을 골골댄다. '골골'은 기분이 좋다는 표현이기도 하고 어미젖을 먹을 때의 호흡음이기도 하다. 새끼는 아주 편안한 표정을 지으며 스르르 잠이 든다. 그 보름달 속에서 아주 평온한 잠에 빠져든다.

퇴근길에 그 천장터를 다시 지난다. 낮 동안에 많은 차량이 지나치며 바람을 일으켰는지, 아니면 털붙이를 개킨 바람이 데려갔는지 중앙선을 넘어 팔락이던 그것이 더는 보이지 않는다. 어디서 기도깃발 *타루초經幡처럼 나부끼는 것은 아닐까. 모든 생명이 깨달음을 얻기를 기도하는 그 타루초의 날개처럼, 그렇게….,그렇게….

 

*헤어볼(Hair ball): 고양이가 삼킨 털이 소화기관 내에서 뭉치는 증세.

*타루초(經幡): 다섯 가지 천에 경문을 새긴 티베트의 깃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