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세상/좋은수필 5

[좋은수필]매듭 / 조이섭

cabin1212 2022. 1. 18. 06:01

매듭 / 조이섭

 

 

 

겨울나기가 수월해졌다. 기온이 뚝 떨어져도 패딩 점프를 비롯한 방한복 덕분이다. 예전에는 부실한 겉옷보다 털실로 짠 내복이 차가운 겨울바람을 막아주는 역할을 감당했다. 뜨개실마저 귀했던지라 아이가 자라면 작아서 못 입게 된 옷을 풀어 다시 옷을 짓거나, 푼 실에다 새 털실을 합해서 뜨기도 했다. 그도 양이 모자라면 조끼나 장갑을 떴다.

스웨터 같은 편직물의 매듭은 서로 얼키설키 맺혀 있어 단단해 보여도 그렇지 않다. 서로 껴안듯 연결된 많은 매듭이지만, 푸는 열쇠는 단 한 군데뿐이다. 마지막 한 코의 매듭이 옷 전체를 붙잡고 있다. 노련한 직녀, 엄마나 누나는 어디를 손대면 실이 솔솔 풀려 나오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알렉산더 대왕처럼 매듭을 단칼에 베어 버리면 뜨개실을 재활용하는 것은 물 건너간다.

실이나 끈 따위를 묶어 마디를 맺은 자리를 뜻하는 매듭은 많은 뜻을 품고 있다.어떤 일과 일 사이의 마무리를 뜻하는가 하면,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나 어려운 고비를 의미하기도 한다.

어찌 보면, 인생이란 매듭을 엮고 푸는 일의 연속이다.올해도 종전과 다름없이 이웃과 많은 매듭을 짓고 또 풀며 살아왔다. 매듭을 짓지 않고 세상을 살기란 생각보다 어렵다. 하지만 유익한 매듭보다 남에게 상처를 남긴 매듭이 훨씬 많으니 문제다. 어디 매듭을 맺기만 했으랴. 멀쩡한 매듭을 갈라쳐 나누고, 생채기를 내어 가늘고 약하게 한 적도 많았다.

아직 풀지 못하고 해를 넘기는 매듭이 있는지 살펴본다. 나 때문에 잘려 나간 매듭이 없는지도 둘러봐야 한다. 섣부른 말 한마디가, 사소한 욕심 하나가, 알량한 허명 때문에 상처만 남아 너덜너덜해져 버린 매듭은 또 얼마일지 겸허하게 돌이켜볼 일이다.

말끔하게 풀었다고 생각했지만, 이삼십 년 후에도 꽉 맺힌 그대로 불쑥불쑥 불거지는 매듭이 있다. 그 매듭은 아내의 가슴 깊숙한 곳에 숨어 있어서 잘 보이지도 않는다. 이래저래 매듭을 엮고 푸는 것은 여전히 난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