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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덕유산(德裕山) 그 낭만(浪漫) / 동진(同塵) 김재형

cabin1212 2022. 1. 21. 06:05

덕유산(德裕山) 그 낭만(浪漫) / 동진(同塵) 김재형

 

 

 

덕유산(德裕山)!

이름만 들어도 산세(山勢)며, 산경(山景)이며, 산정(山情)을 헤아리고도 남는다.

멀리서 바라보면 어머니의 품 안처럼 아늑하고 포근함은 나 혼자만의 느낌일까?

가까이 다가서면 유연히 흐르는 능선은 물결처럼 부드럽고, 옹기옹기 이어진 봉우리는 모나지 않아 더 친근감이 간다.

여유롭고 넉넉한 덕유산이여!

곳곳에 숨어 있는 구천동 33경(景)을 일러 무엇 하리. 사시사철 맑은 물 소리와 울창한 숲은 기암과 함께 선경을 이루고, 오르는 길은 구절양장(九折羊腸)으로 굽이치는 오솔길이다. 그야말로 구중 천엽(九重 千葉)에 계곡마다 절경으로 탄성이 절로 난다.

구천동의 청량함과, 끝없이 이어지는 계곡의 유려함과, 장쾌함을 어디에 비하랴. 정상에서 내려 뻗은 능선은 전형적인 육산(肉山)의 아름다움이다. 여인의 치맛자락 인양 타원형으로 이어지는 넓은 산자락과 싫지 않은 산고(山高)는 어찌 뭇 산인들이 오르지 않을 수 있으랴.

계절은 분명 봄이다, 오는 봄을 누가 막을 수 있으랴. 온 산하가 푸르게 물들어야 봄임을 깨닫고, 산중에 푸른 잎 새가 청홍으로 한 잎 두 잎 물들어야 가을임을 깨닫게 되니 고달픈 삶에 지친 세인들은 계절의 오고 감도 체념이나 한 듯 왜 이리도 둔감해졌을까?

잠시 생각에 잠긴다. 눈을 감고 명상에 젖어 석고상인 양 바위에 걸터앉아 본다. 구천동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가 환청 인양 들리어온다. 흐르는 물은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힘찬 기운으로 내려 쏟는다. 그건 마치 은빛 비단이 햇빛을 받아 아름다운 영상으로 생동감 있게 움직이는 한 폭의 그림 같다.

골골이 이어진 계곡은 연녹색으로 채색되어 그 뛰어난 풍치는 탐춘객(探春客)을 경(景)으로 색(色)으로 아연 실색해 한다. 주변의 풍광과 산자락의 절묘한 미색은 조화로운 구성과 더불어 아름다움의 극치로 보는 이를 압도하고도 남는다.

장엄 위대한 덕유산이여!

이토록 아름다운 절경(絶景)을 어찌 붓으로 그려내고 입으로 설하랴. 덕유산의 풍치는 묘사가 있을 수 없고 다만 감탄과 찬양만이 있을 뿐이다.

덕유산은 철쭉꽃이 핏빛 융단을 펼쳐 놓은 듯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특히 능선 일원에는 철쭉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 “봄철 덕유산은 철쭉 꽃밭에서 해가 뜨고, 철쭉 꽃밭에서 해가 진다”라는 말로 그 장관을 대신하고 있다.

덕유산은 능선 길이만 100여 리에 이르는 큰 산으로, 구천동은 그 기슭을 타고 흘러내리는 700리 계곡이다.

봄의 철쭉, 여름의 시원스러운 계곡, 가을의 단풍, 겨울의 설경으로 사시사철 아름답다.

구천동 계곡은 백담사 계곡이나 설악산 계곡처럼 골이 깊고 큰 계곡은 아니다. 그러나 울창한 숲 사이를 흘러내리는 계곡의 자태는 변화무쌍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첩첩산중으로 이어진 능선의 울창한 나무 사이로 끝 없이 이어지는 파노라마(panorama)는 내 스스로 피안(彼岸)에서 모든 것을 잊어 버리고 구천동에 몸을 던지고 싶다.

마침 구천동에 철쭉제가 열려 많은 관광객이 몰려왔다. 축제 장소인 삼공 삼거리는 온통 노래자랑으로 한결 찾는 이의 흥을 돋우고 있다. 우리 일행 모두는 백련사(白蓮寺)를 향해 떠났다. 백련사는 구천동 계곡의 하나뿐인 사찰로 신라 신문왕(神文王) 때 백련 선사(白蓮 禪師)가 숨어 살던 곳에 흰 연꽃이 솟아 나와 절을 지었다 하여 백련사란 이름으로 불린다고 전해지고 있단다.

6.25 전란(戰亂) 때 소실되었으나 1961 년 이래 불사를 일으켜 새로 지은 절이다. 백련사까지는 왕복 4시간 거리라, 나와 배 선생은 다리가 불편하여 축제장 가까이에 마련된 소공원 후미진 곳에 앉아 담소로 즐긴다.

배 선생과는 한 학교에 근무한 인연뿐 아니라, 문학 활동을 함께하는 동인으로 많은 독서를 통한 문학 일반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식견, 그리고 종교와 철학에도 일가견을 가진 우리 문학동인 회의 보배로운 존재다. 항상 문학에 종교와 효용 미학을 강할 땐 나로선 지식이 얕고 부족하여, 생경한 소리로만 들리나 그의 열강에 감복하지 않을 수 없다. 그날도 둘은 오랜만에 지난날 추억을 반추하며 온갖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아침보다 기온이 올라 따가운 햇살을 피하고 싶다. 꽤 많은 시간이 흘렀나 보다. 둘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축제장 옆에 마련된 식당으로 향한다. 아침 식사를 한 식당 아주머니가 축제날엔 점심을 모든 분께 공짜로 준다기에 배식하는 곳에서 점심을 받았다. 생각보다는 성찬이다. 배 선생은 아침 식사보다. 정말 맛깔스럽다고 한다. 가끔 여행을 하면서 전라도의 음식 맛을 경험할 때마다 특별한 진미를 느낌도 전라도의 후한 인심이 아닌가 생각한다.

오후 2 시가지나 일행은 당도했다. 축제장 음식은 파했기에 어쩔 수없이 아침 식사를 한 식당에 점심을 푸짐하게 하고는 귀로에 오른다.

우리는 도라오는 길에 덕유산의 싱싱한 신록의 향기며, 수련원 조 실장의 애틋한 정이며, 백련사 답사에 얽힌 이야기며, 구천동의 수려한 경관과, 최 원장이 제공한 삼산이수(三山二水)의 갈비 집 맛 자랑이며, 최 교장의 헌신적인 지원과 배려 그리고 호탕한 유머가 오래도록 눈앞을 맴돌듯하다.

어느 시인이 말하기를 여정(旅情)은 분명히 연정(戀情)이라 했다.

아마도 이번 문학기행은 오래도록 연정으로 기억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