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수필]종이책 이야기 / 김애자
종이책 이야기 / 김애자
산촌의 한낮은 우물 속처럼 고요하다. 밤새 어미 품이 그리워 고시랑거리던 새끼 고양이조차 낮잠이 곤하다.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권태롭지 않은 것이 없다.
이 평화스러운 권태를 즐기는 방법은 책 읽기가 제일이다. 창으로 비쳐드는 초가을 볕이 부시어 옥양목 주련을 내렸다. 이 가운데 책을 손에 들고 정물처럼 앉아 있으면 세상사가 아득하다.
지난 해 여름에는 1981년 1월에 산 『열하일기』와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을 잼처 읽었다. 좋은 책을 다시 읽으면 적조했던 스승을 찾아뵙는 듯 반가움과 함께 미처 깨닫지 못한 부분을 발견하게 된다.
올 여름엔 『연암집(燕巖集)』을 피서지로 삼았다. 세 권이나 되는 이 책은 권당 400 쪽이 넘는다. 겨울까지 읽을 셈치고 산 것이다. 가능한 건 넘기지 않고 차근차근 읽으며 선생이 남긴 지적유산을 속속들이 챙길 요량이다.
나는 지금도 책을 들면 선생이 제자 황상에게 일러준 '삼근계(三勤戒)'를 생각한다. 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또 부지런히 읽기를 채근했던 어록이다. 이와 같이 부지런히 읽다보면 책 읽는 진진한 재미가 생기고, 학문이 자연스럽게 몸에 밴다고 황상에게 누누이 일러주던 지극한 가르침을 잊을 수가 없어서이다. 따라서 '삼근계'는 나에게도 읽고 배우는 즐거움을 안겨주었고, 끝내는 글을 쓰게 했다.
그러나 글로벌 시대가 도래하면서 현대인들은 웨어러블(Wearlable) 컴퓨터와 줌 안에 드는 스마트워크와 온라인 무료 정보를 통해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든다. 책읽기는 물론 결재도 송금도 손안에 든 기기 하나면 해결된다. 신종 기기가 무소불능인 시대에 종이 책의 운명은 오래지 않아 종식될 것이라고 예측하는 사람들도 적잖다.
하지만 나는 낙관적이다. 10년 전에도 종이책이 곧 사라질 것이라고 설왕설래 했었다. 2017년이면 신문마저 사라질 것이라 입방아를 찧었으나 종이신문은 여전히 이 산골까지 배달되고 있으며, 나 또한 10년 전 그대로 신문에서 소개되는 신간 중에 읽을 만한 책이 눈에 띄면 곧바로 교보문고로 주문을 한다.
다산선생이 쓴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는 30년 동안 꾸준히 독자층을 늘려 28쇄를 찍었다. 정민 선생인 쓴 『삶을 바꾼 만남』도 출간 6년 동안 16쇄를 찍었고 『열하일기』도 마찬가지다. 2백 년 전에도 젊은 유생들이 열광했던 이 책은 2백 년이 지나간 지금도 책을 볼 줄 아는 지성인들에게는 파워 클래식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열하일기는 연암 박지원 선생이 육촌 형인 박명원을 따라 청나라 건륭제의 칠순연七旬宴에 가는 사절단에 끼어들어 청나라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사진을 스캔하듯 치밀하면서도 유려한 문체로 기록한 견문기다. 이 견문기엔 시는 물론 수필과 소설과 일기까지 포함되었다. 유교적인 규범에 매이지 않고 여러 장르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기록한 다양한 형식과 풍부한 내용에 당시 유교사상에 묶여 있던 서생들은 반하였다. 마침내 정조대왕은 불온서적으로 낙인찍어 금서로 묶어놓았으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젊은 지식인들의 도저한 흐름을 막을 수 없었다.
이게 좋은 책이 가지고 있는 생명력이다. 이 생명력의 저력은 앞으로도 종이책의 명줄을 지켜낼 것이다. 그리고 더 희망적인 것은 한국문인협회에 등록된 시인과 소설가와 수필가와 인문학자들이 수만 명에 이른다. 이들은 종이책을 애독하는 진짜 선비들이고 작가들이다. 이들은 밤잠을 줄여가면서 책을 손에 들고 천천히 내용을 충분하게 음미하면서 읽을 줄 안다. 나도 그들 중 한 사람이다. 그리곤 책을 읽다가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을 만나면 붉은 볼펜으로 언더 라인을 친다. 이 조용한 기쁨을 나는 시력이 허락할 때까지 누릴 것이다.
사람들은 내적 전실함을 밖으로 표출하고 싶은 본성을 지니고 있다. 과학이 고도로 발달할수록 내면에 잠재하고 있는 전실함을 자신의 능력으로 채우지 못할 때는 무엇인가로 대체하고 싶어 한다. 인문학은 바로 그런 이들을 연금술적으로 감싸 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전자매체가 아무리 판을 쳐도 종이 책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어느덧 산그늘이 마당으로 내리고, 추녀 끝에서 울리는 풍경소리가 소슬하다. 초가을 하루가 책 이야기로 조촐히 저물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