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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닭장 / 이명

cabin1212 2022. 3. 4. 05:49

닭장 / 이명

 

 

 

내가 있는 산 중턱 아랫마을은 주로 바다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사는 작은 어촌 마을이다. 마을과 떨어진 이곳에 몇 년 살다 보니 선장과 가까이 지낸다. 이들이 산중에 있는 나를 생각하는 마음은 때로 상상을 초월할 때가 있다.

어느 날 새벽에 바다 나갔다 돌아와 부두에서 그물 일을 하던 최 선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닭장을 다 지었느냐고 한다. 지금 짓고 있는데 며칠 좀 걸리겠다고 하니 그럼 안 되겠네 한다. 무슨 일이냐고 하니까 누군가 아는 사람이 키우라고 부두로 중닭 세 마리를 가져다 놓았는데 집이 안 됐다니 안 되겠다는 것이다. 그럼 어차피 가져오려면 바다 일 끝난 오후가 될 터이니 그때까지 울타리와 집을 지어 놓겠다고 하고 오후에 가져오라 했다.

사실 닭장을 짓게 된 연유는 이렇다. 산중에 혼자 있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는지 병아리 몇 마리 키워보라고 그러면 적적함이 좀 덜할 거라고 한 달포쯤 전부터 만날 때마다 이야기해 오던 터라 졸리다 못해 그러마고 한 것이 화근이 됐다. 병아리는 옆 동네에서 부화하면 가져가라고 한다니 키워보란다. 누가 적적하다고 한 적도 없는데 자기들이 보기에 그냥 무료히 있는 줄 생각한 모양이다.

사실 나는 혼자 있지만 나름대로 무척 바쁘고 시간이 언제 갔는지 모르게 하루가 후딱 지나간다. 사람과 더불어 사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할 일이 많고 친구도 많고 우수마발과 모두 한 마디씩 나누다 보면 하루해가 짧은 것이 사실이다. 새벽에 일어나 수평선으로 얼굴을 내미는 태양에게 인사부터 하고 간단한 운동을 한 후 장화를 신고 밭을 둘러보고 산을 오른다. 지나치는 산소들마다 마음속으로 문안 인사를 하고 고사리를 뜯고 나무들과 풀들과 꽃들을 보며 밤새 그들의 안녕을 확인한다. 꿩들이 날고 딱따구리의 부지런함을 배우며 돌아와 샤워를 하고 청소를 하고 아침을 먹는다.

오전에는 글을 읽고 쓰고 하는 습관에 젖어 다락방에 앉아 온갖 상상 속에 반나절을 보낸다. 점심 후 밖에 나오면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다. 텃밭에 자라는 온갖 채소들이다. 올해는 아내가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도시에 나가 있어 주말에 오기 때문에 그리 많은 작물을 심은 것은 아니지만 이것저것 심다보니 그래도 제법 많다. 고구마 감자 땅콩 양대 파 마늘 양파 토마토 상치 쑥갓 오이 고추 수박 참외 도라지 부추 등 웬만한 작물은 다 가꾸고 있다. 지금은 들깨 모종을 준비 중이다. 아내에게서 매번 듣는 이야기지만 농사를 지으려면 제대로 지으란다. 풀과 농약 때문이다. 풀을 제대로 뽑고 농약도 치란다. 아직까지는 그런 것들에 소홀한 건달 농사꾼이지만 아무튼 이들을 돌보는 것도 정신없는데 병아리라니.

선장들은 자기들이 쉬는 오후쯤이면 올라온다. 내 외로움을 달래준다는 명목으로 올라오는데 올 때마다 내가 상대를 해 주니까 아예 자기들 없으면 내가 외로워 못 견디는 사람으로 치부하는 것 같다. 나는 그것이 아닌데 최 선장의 집요한 권유에 그렇게 하겠다고 하고 병아리 집을 짓고 있었던 것이다. 언제 올지도 모르고 해서 쉬엄쉬엄 짓고 있는데 느닷없이 중닭 세 마리가 생겼다고 하니 서둘러 닭장을 지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닭은 예로부터 귀한 날짐승이라 기술은 없지만 그래도 정성스레 집을 짓고 운동장을 넓게 만들었다. 매로부터 공격당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지붕도 철망으로 덮었다. 그러나 솜씨 좋은 임 선장이 가만히 보고 있을 리 없었다. 아닌 게 아니라 지어놓은 닭장을 보고 마음에 들지 않아 울타리를 걷어내고 묵혀두었던 자기네 닭장을 가져오고 대나무를 구해 울타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중닭 세 마리가 너무 외로울 것 같아 장날 12마리를 더 사서 넣었다. 최 선장이 들고온 병아리는 26마리로 모두 청계닭 병아리였다. 닭과 병아리를 넣고 보니 닭장이 그득했다.

조석으로 들여다보며 이것저것 챙기고 그렇지 않을 때는 한참을 들여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병아리들은 날아다녔다. 날이 갈수록 수탉은 품위가 있었다. 닭은 가장 많이 사육되고 사랑받는 가금家禽이라 예로부터 촉야燭也 벽치䴙鴟 추후자秋候子 대관랑戴冠郎이라는 품격 높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촉야는 어둠을 밝힌다는 의미로 닭의 울음으로 인하여 비로소 어둠이 사라지고 새벽이 열림을 알린다는 것에서 비롯되었고 특히 대관랑은 머리에 벼슬을 쓰고 있는 젊은 남자란 뜻의 이름이었다.

우리 조상들로부터 닭은 오덕을 지닌 동물로 사랑 받아 왔지만 닭을 들여다 놓고 자세히 관찰해 보니 그럴 것 같았다. 벼슬은 문, 발톱은 무, 적을 앞에 두고 용감히 싸우는 것을 용이라 한다. 먹이를 보고 꼭꼭거리며 무리를 부르는 것은 인이라 하고 때를 맞춰 울어 새벽이 왔음을 알리는 것은 신이라 한다. 어느 때는 신화가 되었고 국호로도 쓰였으며 설화에도 등장하는 닭, 벽화에도 올랐으며 보약은 물론 병을 치료하는데도 요긴하게 쓰였다. 닭의 목을 먹으면 목청이 좋아진다고 하며 닭이 감나무에 올라가면 재수가 좋다고 한다. 닭이 쌍알을 낳으면 집안이 흥한다고 하고 닭이 항상 나무 밑에 있으면 그 집안에서 벼슬할 사람이 나온다고 한다.

아랫동네 선장들은 복날을 기다리고 있겠지만 덕분에 조상 대대로 이렇게 귀한 대접을 받은 닭을 돌보며 키우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