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수필]돼지고기 수육 / 곽명옥(소정)
돼지고기 수육 / 곽명옥(소정)
구수한 냄새가 온 집안 가득히 퍼진다. 방학이 되어 모처럼 3대가 모였다. 식구들이 돼지고기 수육이 먹고 싶다 하여 잘 아는 식육점에서 암퇘지 삼겹살을 구입하여 평소에 하던 대로 삶았다. 고기가 익을 동안 상추와 깻잎을 씻고 쌈장도 만들어놓고 싱싱한 풋고추와 양파도 곁 들여 한 소쿠리 담았다. 한 시간쯤 지나서 끓는 고기에 칼끝으로 쿡 찍어보니 하얀 물이 솟는 게 잘 익었다는 표시였다.
식탁에 식솔들을 불러 앉히고 보니 대를 이어 닮은 모습에 내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금방 건져낸 따끈따끈한 고기를 숭덩숭덩 썰어주니 모두 꿀맛 이라며 엄마도 함께 먹자고 성화를 해대었다.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난 좀 있다 먹겠다고 다른 일을 하는 척 밖으로 나왔다. 아이가 한 점 집어서 내 입에 넣어준 고기에 목구멍 까지 차 오른 슬음에 엉엉 울고 말았다.
작년 이맘때 엄마는 신장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구순 노인은 수술도, 항암도 하기에는 기력이 따라주지 않았다. 의사도 포기를 하고 약해진 부분을 보충하고 고통을 덜기위한 진통제를 쓰기로 하였다. 그 날부터 아침시간이 용이한 내가 엄마와 함께 꼭 아침식사를 하겠다고 다짐을 하였다. 집에 계실 때는 집으로, 병원에 입원하면 병원에서 함께 식사를 하였다. 처음에는 엄마가 손사래를 치셨지만 며칠 지니고부터는 오히려 기다리시는 것이다.
병원의 식사 시간은 빠르고 정확하다. 병실 문을 열고 들어 갈 때는 여유 있는 척 하지만 평소에 즐겨 드시는 반찬 몇 가지 장만해서 도착하는 시간은 매일 허겁지겁이다. 날이 갈수록 식욕이 떨어져가고 진통이 잦은 엄마를 보면 가슴이 아팠다. 아침을 드시고 난 후 엄마 턱밑에서 응석을 부리며 물어보았다.
“엄마 지금 제일 먹고 싶은 게 뭐예요”
“의사 선생님이 허락해 주실는지, 먹고 죽더라도 뜨건뜨건한 돼지고기 수육 한 접시가 제일 먹고 싶다.”
엄마는 평소에 우리에게 돼지고기 수육과 삶은 닭을 즐겨해 주셨다.
무엇이던 자식을 해 먹이고 이 자식, 저 자식 말을 모두 들어 주시던 엄마는 우리들의 든든한 울타리셨다. 그런 엄마가 지금 시한부라는 사실을 당신이 알면서 모르는 척하시는지 서로가 말 못 하고 아파 누워 계신다. 평소에도 천식기가 심하면 혼자 가까운 병원에 입원을 하시고는 목소리를 다듬어 서울 아들에게 먼저 전화를 하셨다.
“나는 경로당에서 사원하게 잘 지내고 있다.”
며 너스레를 떨다가도 한집에 사는 막내아들이 알게 되면 딸들에게 들키기도 하였다. 멀리 떨어져 사는 서울 아들이 마음 쓰일까 봐 미리 입조심을 시키는 것이다.
엄마가 아프고 난 후로 돼지고기가 해로울까봐 한참을 해 드리지 못하였고 우리들도 먹지 못했다. 쇠갈비도 아니고 청요리도 아닌 돼지고기 수육을 먹고 싶다 하시니 마음이 아프다.
언니가 금방 사온 따뜻하고 야들야들한 수육 한 접시를 아무도 없는 병원 휴게실에서 세 모녀가 머리를 맞대고 먹었다. 그날, 세상에서 제일 맛있고 가슴아픈 만찬을 즐겼다. 아이들에게는. 적신 눈물을 양파 때문이라고 하였지만 다시는 함께 할 수없는 그리운 내 엄마의 돼지고기 수육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