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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삶의 흔적 남기기 / 宣旿 노덕경

cabin1212 2022. 4. 26. 06:39

삶의 흔적 남기기 / 宣旿 노덕경

 

 

 

올 여름에는 유난히 변덕을 부렸다. 열대야로 잠을 설치게 했고, 태풍과 우박으로 농부들에 시름을 주었다. 푸르든 나무가 어느새 붉게 물들어 낙엽이 되어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가 흔들린다.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 서러움이 묻어나네. 매듭달이라 한 살 더 먹어감에 슬퍼서가 아닐까?

돌이켜보면 나에게도 학창시절이 있었다. 꿈도 사랑도 원대했다. 희망 속에 공부와 사랑과 우정에 매달렸었다. 한 때는 열심히 일했고, 때로는 잡기에 미쳐도 봤지만, 세월이 덧없이 흘렸다. 타고 온 인생열차가 “종착역 종착역에 도착했습니다. 손님께서는 잇은 물건이 없는지 찾아서 안녕히 가삽시오” 라고 스피커에서 환청이 되어 들립니다.

젊은 시절, 삼부(三富)를 쫓아 명예도 권력도 재물도 이루어 놓는데. 나의 삶을 뒤돌아보니 아무 것도 이루어 놓은 것이 없다. 너무나 허망하게 세월을 소비한 것 이 이제야 후회가 된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또는 “표사유피(豹死인사유명(人死)” 이라 했다. 고대 왕들은 산더미 같은 무덤을 남겼고, 선비들은 찬란한 예술품을 남겼다. 원이엄마의 편지 한 장, 이순신장군의 난중일기기 날이 갈수록 빛을 발하고 영원히 인류에 남듯이, 이제라도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며 마무리해야 할 시점이다. 이 세상에 왔다 간 흔적을 남기고 싶다.

 

*원이엄마의 편지.

1998년 안동의 정상동 택지개발에 사대부 고성이씨 무덤 속에 언문으로 된 편지 한통이 발견 되였다. 426년 전, (1586,병술년) 61일 조선 선조 19년에 이응태의 부인, 원이 엄마가 썼다.

한 여인이 사별한 남편을 그리워하며 애절하게 쓴 편지와 저승 갈 때 신으라고 삼() 껍질과 머리까락을 잘라 손수 만든 “미투리”가 “조선 판 사랑과 영혼” 이라는 제목으로 세계적인 고고학계의 저널인“앤티쿼티” 지 3월호 표지로 실렸다.

“여보 남도 우리같이 서로 어여삐 하며 사랑했을까요. 남도 우리 같을까요?” 남편을 그리는 절절한 이 편지가 큰 감동을 주었고, 당시의 가족관계와 부부애를 통해 당시 상황과 특히 시공을 초월한 사부곡이 세계의 학계의 큰 주목을 받은 것입니다.

 

*난중일기

420년 전 (1592) 선조 2551일부터 전사하기 전 ‘98107일까지 매일 쓴 7책 필사본 일기다. 조선 14대 선조실록에는 임진왜란이 끝난 뒤인 1604년에 전공심사에서 이순신, 원균, 권율이 나란히 선무공신 1등급에 책봉 되었다.

이순신은 해군 전술의 비상한 기술인 거북선을 건조했었고, 바다 물의 흐름을 이용하여 전술을 펼쳐 승리로 이끈 불굴의 공격에 있다.

전쟁 중에 하루의 전황을 낱낱이 기록했고, 한 가정의 가장으로 어머니를 걱정했고, 아내를 그리워했고, 자식을 보고 싶은 마음이 오롯이 담겨있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했다. 그 당시 장수의 심정과 감정을 담은 사실에 대해 글을 남기지 않았다면 오늘의 영웅이 없었을 것이다. 시대의 격변기마다 그를 성웅시하여 그가 태어난 고향, 전황이 있었던 곳곳마다 기념관과 동상이 세워 기리고 있다. 반면에 원균, 권율 장군은 기록이 없어 국민들로부터 차차 잊어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한 시대의 역사를 주름잡던 영웅도 한 가정의 소시민인 가장도 세월의 뒤안길에서 그 빛은 퇴색되고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사이고, 가야할 길목에서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며 무엇인가 삶의 흔적이 필요하다.

요즘, 재벌 2세들이 부모의 재산을 지키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건들이 보도되고 있다. 아무리 많은 재물을 물려준다 해도 “3대 부자 없고 3대 거지 없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떠오른다.

이제라도 이 땅에 태어난 삶의 발자취를 남기고 가야하지 않을까? 문화유산가운데도 조상들이 남긴 건물, 조각, 그림, 도예, 공예품, 서적, 서예 등등이 있어나 자신의 적성에 맞는 것을 선택하여 일기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생각하는 것을 글로 남기고, 서예를 배워 자녀들에게 가훈이라도 한 장 남기고 떠나야 하지 싶다.

사랑하는 자녀와 친지 이웃에게 무엇을 남기고 떠날까? 장고(長考)에 장고를 거듭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