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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내 인생은 쩜쩜쩜1 / 권이나

cabin1212 2022. 5. 6. 13:55

내 인생은 쩜쩜쩜1 / 권이나

 

 

 

점이 조금 많은데요. 그리고 너무 반복이 되는 듯합니다. 또 점의 길이도 너무 깁니다. 조금 줄이셔야겠습니다. 더 짧게요.” “짧게라면 어느 정도를?그럼 한 번에 몇 개인데요?”

표준치는 원래 세 개입니다.”

세 개네 알겠습니다.”

내가 쓴 글을 처음으로 옮겨 싣데 된 날, 편집장님과 주고받는 대사이다.

표준치’. 나는 원고를 다시 한 번 펴놓고서 텍스트의 끄트머리 여기저기에 내 맘대로 찍어 놓은 쩜들을 조심스레 가려냈다. 왜 히필 세 개일까? 네 개도 두 개도 아닌 세 계. 그게 표준어의 기본수친가보지? 헷갈리는군! 날 보러 표준어를 쓰라니! 사람이 표준이어야 표준얼 쓰지! 나는 쩜 세 개를 우선 옆에다 꼬불쳐 놓은 다음 나머지 ‘,’을 하나씩 차례로 지워나갔다. 지우고 나니 글의 인상이 달라진다. 글은 쓰는 사람의 생각이 기본 아니었나? 생각, 그 누구도 모르는 미지의 뭐를 표준에 입각시키라-거기다 쩜은 반드시 세 개라니 그건 도대체 누구의 명인가? 세종대왕님? 주시경 스승? 그럴 리 없다. 한글에 쩜이 언제부터 생겼는데? 두 개면 모라라고 네 개면 넘는다 오산했단 경친다 그 말인가? 안 돼지. 세 개만으론 모자르지! 하면서도 나는 묵묵히 내 텍스트 곳곳에 아낌없이 찍어놓은 쩜들의 교정에 들어갔다. 내 머릿속 저 까닭 모를 불안을, 시시각각, 아니 초마다 변하는 나의생각, 그 주저와 머뭇거림을 어법에 따라 쩜 셋으로 압축하라 측량을 하라...하긴 이런 사소한 디테일들을 갖고 마음을 썩히는 내가 Over인지도 모르지아니면 비정상...'정상'(正常)의 기준은 뭔가? ‘비정상만 아니면 정상 아닌가. 그럼 비정상의 기준은? 여기서 표준이무언지 다 아는 사람 한 번 손들어보소! 한다면?

모든 것이 획일화된 사회, 다행히도 나 같은 비정상이 아직은 살아있어 비표준의 무언가를 표현한다 몸부림칠 제, 이 약간 돈 영혼들에게 적어도 점 찍는 자유만은 달라! 한글은 소리글자이다. 여기에 표준어로 시를 쓰고 표준어로 판소리를 불러보라. 씻김굿에도 도레미를 우길 건가? 젊은 피들의 랩은 그럼? 아는가? 판소리, , 그 장단과 어휘의 기똥찬 어우러짐에 진정한 우리말의 예술이, 한글의 진()멋이 있다는 것을? 그 속에 우리 소생들의 반항이, 우리의 모든 것이 다 들어있다는 걸? 그 대사 어디에다 점을 찍겠는가? 무슨 염치로 그들의 울분을 붙들어 맬 건가? 언어의 그 의미와 기준도 시대와 함께 하는 것. 나는 지금 이 금쪽같은 시간에 기준에 묶여, 돋보기를 코에 걸고 쩜의 수를 헤아리고 있다싫다! 내 넋두리 내 꿈 내 잠꼬대 내 노래 내 감정의 나래를 표준어로 쓰라고 보채는 아! 나는 이 세상이 싫다. 기호의 분량까지 자로 재라니 그건 더 싫다. 나는 그럴 수 없다. 우리 그러면 안 된다! 그래도 일단 말은 들었다. 우선 모두의 눈에 가급적 정상으로 보여야 한다, ‘이란 나에게 의문보다 의혹, 잠시 혼자 생각할 수 있는 공간, 나는 어떤 땐 의문이 의문인지조차 몰라 ‘?’찍는 것에 자신이 없을 때에도을 붙인다. 그 쩜은 아침에 보면 커 보이고 저녁땐 잘 뵈지도 않는다. 그게 어디 셋만 되겠는가? 나오는 대로 갈겨 적은 불분명하고 허벌난 내 생각의 파편들을 모두 주워서 체에 걸러 덜도 더도 아닌 쩜 세 개로 해결하라...저들의 삶은 얼마나 간단명료하길래. 하여튼 그 일후, 쩜쩜쩜 찍기가 왠지 꺼려, 그 자리에 대신 쉼표를 찍어 보냈더니 이번에 쉼표가 작렬한다던가. 그래서 또 눈치 보며 쉼표도 마저 걸러내 가다 솔직히 헷갈려 나중엔 기호대신 어미와 어미의 사이를 약간 떼어놓고 나니 심신이 가뿐해지는 게 그 동안 쩜에 내가 너무 과했었나. 그러길래 저들은 야단이었지좀 겸손하게 또 한 번 텍스트를 마무리 지어 편집장에게 보냈더니 며칠 후 내가 슬쩍 벌려 놓았던 쩜 자리 공간에 새로 쉼표가 단정히 찍혀 돌아왔다. 솔직히 나는 그때 편집측보다 나한테 -어느 미친놈인지가 정해 놓은 쩜 세 개의 공갈에 영문도 모르고 말려들어 모든 감정을 억제하며 충성스레 하나둘 쩜을 세서 찍고 있는 나 자신에 더 화가 났다. -해도 숨을 가다듬고서 요변엔 너무 ‘.’으로 끊지 않고 너무‘!!’로 흥분하지 않으며 무엇보다 으로 늘이지 않고, 기준에 안 어긋나는 정상적인 사고를 표준어로 또렷이 표기한 다음, 적당량의 기호를 새로 정확히 측량하여 끝부분 저쯤에 마침표를 따악 찍어(왠지 마침표는 못할게 안 한다.) 거의 완벽에 가까운 새 원고를 만들어 보냈다. 오 분후 답이 왔다. 첨으로 교정 대신 문자, ‘이나 선생님 저는 기권했습니다.’ 이건 또 무슨 뜻인가. 아마도 고칠 것 밖에 안 보이는 글을 차라리 내버려두는 게 골이 덜 아플거라 생각한 거겠지? 진즉에 그러시잖고그런데 왠지 김이 빠지는 게 서운하기까지 하다. 그래선지 계속 내 문법이 엉망이라는 말만 들려온다. 관 둬버릴까이상한 건, 힐난의 소리가 아무리 들려와도 내 골수에까지 와서 박히지는 않는다는 거다. 그 말은 결국 저놈의 틀에 나를 박던지 아니면 튀어 나오던지 뭣도 죽을 땐 짹한다고 욕도 듣다보면 나중에는 오히려 오기가 나 그 담에는 아예 듣고도 흘려버리기로 작정을 했던가. 아무튼그래봤자 원고를 보내는 일은 매번 고문이었지만 그리고 여태까지도.

혹 아시는가, 공잣님께서 하신 말씀? 말은 통해면 그뿐이라는? 그 분이 내 마음을 아셨다. 간단하다. 즉 이해가 안 가는 글은 안 읽으면 되며 모르겠는 그림 앞엔 안 서면 된다.-몰라도 산다.

사지가 흙으로 덮힌 후에도 은 계속될, 마침보다 쉼이 더 많은 삶, 좋아도 굿어도 내 인생, 이 내 인생은 ‘.’‘,’도 아닌 아마도 열 개 아닌 스무 개 어쩌면 글자 수보다 더 많을 ‘.'의 연속, 언제 생을 마감하는 날이 오면 나는 더더욱 몰라, 허발난 의문들의 답도 못찾고, 마침푠커녕 몇만 개 점이 되어 몇 겁을 허공에서, 저 하늘 별 처럼 떠다닐 것을. 그 사이 어디에 끼어 있을나,

나의 삶은 분명 그런 기인 긴 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