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세상/좋은수필 5

[좋은수필]트라이앵글이 울리는 저녁 / 박금아

cabin1212 2022. 5. 20. 05:30

트라이앵글이 울리는 저녁 / 박금아

 

 

 

아이의 등을 부딪치고 튀어나온 물방울에서 !’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엄마가 끼얹는 물을 피해 달아나는 사내아이와 아들을 잡으러 달려가는 엄마의 웃음소리가 호숫가의 저녁을 푸르게 흔들었다. 여인은 자신의 몸에도 물을 끼얹었다. 속옷이 찰싹 달라붙은 강마른 몸매가 풀밭에 삐죽이 돋아난 오이풀꽃 같았다. 이번에는 아이가 엄마의 론지 자락을 당겨놓고 도망하느라 또 한바탕 웃음소리가 났다. 눈을 돌렸다가 보니 여인은 저녁 바람에 긴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빗어 내리고 있었다.

어디선가 가느다란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호수 한가운데에서 나는 소리였다. 사람 셋이 가슴께까지 물에 잠긴 채로 떠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서로 이십여 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한 사람의 노래가 끝나 가면 다른 사람이 부르고, 또 한 사람이 이어서 부르기를 하고 있었다. 어찌나 평온한지 땅 위에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것 같았다. 그물을 던져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으리. 세상에는 암만 내딛어도 닿을 수 없는 곳이 있다는 것을 깨우치게 하는 소리였다.

호숫가에서 그물을 손질하던 남자들의 입에서도 노래가 흘러나왔다. 아이도 노래를 흥얼거리며 땅바닥에 엎드린 채 무언가를 세고 있었다. 깡통 속을 들여다보며 손가락셈을 하다가 다시 세기를 반복하느라 노래는 자꾸 끊겼다. 꿈틀거리는 지렁이를 보며 아이는 한참을 설명했다. 고기잡이하는 아빠에게 주려고 자신이 잡았다고 하는 말인 듯했다.

노을이 지상에 떨구고 간 마지막 불꽃인 듯 화덕에 불을 피우는 여인의 입에서도 노래가 새어 나왔다.. 어느새 여인은 새 옷으로 갈아입고 단정히 틀어 올린 머리에 꽃을 꽂고 있었다. 사원 앞에서 많이 팔던 재스민이었다. 향기가 날아올 것 같았다. 그녀와 눈길이 마주쳤다. 얼떨결에 내가 “밍글라바!”하자, 사진을 찍는 자세를 취해주더니 움막으로 안내했다.

우기에는 잠겼다가 건기에만 나타나는 풀밭에 나뭇잎으로 얼기설기 지붕을 덮어 세운 집이었다. 방 가운데에 불전이 차려져 있었다. 세간이라고는 옷가지 몇 개와 담요 몇 채가 전부였다. 제단 위 꽃병에는 재스민이 한 묶음 담겨 있었다. 밥을 짓기 전, 그녀가 목욕을 한 정갈한 몸으로 올렸을 기도가 머물러 있을 것 같았다.

어느새 노을은 몸을 감추고 있었다. 호수에서 또 노래가 들려왔다. 타닥타닥, 돌화덕에서 나오는 불꽃 튀는 소리까지 더해 호수는 호숫가 사람들과 호수 속 어부들의 노랫소리로 공명하고 있었다. 하루의 수고를 안고 떠나는 노을에게 보내는 감사의 합창 같았다. 노을이 사라진다는 것은 안식을 알리는 것이니까. 노을은 말을 한 적 없지만,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노을에서 희망을 읽었다. 열심히 살아낸 하루가 결실 없이 지난다 할지라도 노을이 끌고 오는 밤을 보내고 나면 마술처럼 아름다운 아침이 열리리라는 믿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호수에서 노래를 부르던 남자들이 뭍으로 나왔다. 한 남자가 움막을 향해 걸어왔다. 어깨에 그물을 메고 한 손에는 통발을 들고 있었다. 사내아이가 달려가 통발을 받아 들었다. 움막 앞에 다다르자 남자는 아들에게 그물을 건넸다. 물고기 몇 마리가 그물코에 걸려 있었다. 아들의 눈이 반짝였다. 아들에게 아버지는 매일 매일의 기적을 이루어내는 사람이리라.

한 양동이의 물을 내왔다. 어부가 하루의 노동을 씻어내는 사이에 아들은 풀밭 위에 젖은 그물을 반듯하게 펼쳐 놓았다. 무릎을 꿇고 그물 위를 조심조심 기어 다니며 그물코에 걸린 물고기를 털어내는 소년의 손이 가느다랗게 떨렸다. 물풀을 뜯어내는 모습도 어찌나 경건하던지. 조금 전 천둥벌거숭이로 풀밭을 뛰어다니던 장난기라고는 찾을 수 없었다.

아내가 밥상을 들고 나왔다. 물고기 육수로 끓여낸 모힝가 국수와 열무김치 비슷한 친빳으로 차린 소박한 밥상이다. 풀밭에 세 가족이 둘러앉았다. “사그랑 사그랑.” 밥상 가로 풀잎들이 젖은 그물을 안고 몸을 뒤척이는 소리가 났다. 식사가 끝나자 부부는 찻잔을 사이에 두고 앉아서 또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애잔한 곡조가 어디선가 많이 들어 본 소리였다.

어린 날의 섬 집 마당이 떠올랐다. 저녁 밥상을 물리고 나면 아버지는 마당 가에 앉아 그물 일을 했다. 그때 대나무 바늘로 그물코를 꿰며 흥얼거리던 그 곡조였다. 호수를 바라보는 부부의 시선이 섬 집 앞바다를 서글피 바라보던 아버지의 눈빛과 닮아 있었다.

그때였다. 아이가 움막으로 들어가더니 반짝이는 무언가를 들고 나왔다. 아주 작은 트라이앵글이었다. 아이가 나를 보고 씩 웃더니 !”하고 한 번 쳤다. 내가 계속 치라는 시늉을 하자 빠르게 치기 시작했다.

! ! !”

어부의 노랫소리도 경쾌한 곡조로 변했다. 그조차 같았다. 아버지는 혼자 있을 때면 슬픈 노래를 흥얼거리다가도 우리들을 보면 금세 흥겨운 곡조로 바꾸어 부르곤 했다. 힘든 삶을 이어가던 아버지에게 우리 여섯 남매야말로 최고의 위안이었을 것이다.

미얀마 작은 호수 마을의 젊은 어부가 부르는 노랫소리가 대한민국 남해 바닷가 작은 섬에 살던 나의 젊은 아버지의 그것과 어찌 그리 닮았는지, 이상한 일이었다. 서울을 떠나 미얀마의 수도 양곤, 만달레이, 옛 수도 바간, 다시 만달레이, 다웅따만 호숫가, 그리고 그 풀밭에 닿기까지 먼 길을 걸은 줄 알았는데 나는 여전히 처음의 떠나온 길에 있었다.

 

하늘에 박나물 같은 달이 피어나고 있었다. 어부 부부가 짓는 흰 쌀밥 같은 미소가 트라이앵글 소리를 타고 호숫가에 은빛으로 퍼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