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수필]아마라푸라의 나무다리를 걷다 / 박금아
아마라푸라의 나무다리를 걷다 / 박금아
잠포록한 호수 위를 노랑 날개 새 한 마리가 포롱거리고 있었다. 사프란이 피어날 것만 같던 비구니들의 분홍 가사 자락, 망고 바구니를 이고 무표정한 얼굴로 다리를 걸어오던 젊은 여인의 얼굴에 일렁이던 우수,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발밑에서 들려오던 나무다리의 울림은 신비스러운 느낌을 자아냈다.
우베인 다리라고 했다. 며칠이고 머물고 싶었다. 그런데 단체 일정 탓에 서둘러 떠나야 했다. 일행과 헤어져 다른 지역을 여행하는 내내 그 다리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여행코스는 남쪽을 향하고 있었기에 날이 갈수록 다리에서 멀어진다는 사실이 아쉽기만 했다. 그대로라면 후회할 것 같았다. 옛 수도였던 바간에서의 여정이 끝나갈 무렵, 남은 일정을 취소하고 길을 돌렸다.
버스로 다섯 시간을 달려 도착한 만달레이는 밤을 맞고 있었다. 나무다리가 있는 아마라푸라까지는 택시로 삼십여 분을 더 가야 한다고 했다. 숙소 맞은편에서 만달레이 궁이 밤하늘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두꺼운 성벽에 둘러싸인 채 해자(垓字)에 몸을 드리운 모습이 슬픈 역사를 반추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다시 찾은 다리는 한적했던 처음과는 달리 관광객들로 붐볐다. 앞에서 긴 황금 장식 옷을 입고 화장을 곱게 한 남자아이가 말을 타고 가고 있었다. 전통의상을 입은 여인들이 양산을 받쳐 들고 뒤를 따랐다. 첫 출가(出家)를 하는 길이라고 했다. 미얀마의 사내아이는 일생에 한 번은 집을 떠나 승려 생활을 체험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아무리 가난한 집의 아이라도 그날만큼은 화려하게 차려입는데 왕자로 태어나 출가한 부처님을 재현하는 것이란다. 출가 후에는 가사 한 벌과 발우만 지닌다니 ‘성인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라는 의미가 각별하게 다가왔다.
그날 아침, 호텔 방에서 보았던 거리 풍경이 떠올랐다. 길가에 사람들 몇이 줄을 지어 서 있었다. 희붐한 안개 속으로 자주 가사 행렬이 나타나자 다가가 스님들이 든 발우 위에 밥과 돈을 올려주었다. 아기를 업은 한 여인은 행렬이 사라진 뒤에도 합장한 채로 한참을 길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등 뒤에서 눈을 꼭 감고 꼬막손을 모은 아기의 모습이 무성 영화의 한 장면처럼 고요했다.
우베인 다리로 가는 길에 들렀던 마하간다용 수도원의 탁발 행렬도 큰 여운을 남겼다. 미얀마 최대의 수도원이라고 했다. 일천오백여 명의 수도승들이 한 끼 밥 앞에 발을 벗고 고개를 숙이며 침묵 속으로 걸어 드는 몸짓이라니. 그만으로도 깨우침이었다. 수도원 입구에서 배고픈 사람들이 먹을 것을 구하고 있었다. 한 동자승이 사원 밖으로 나오더니 또래 아이가 내민 양푼에 금방 받은 자신의 공양을 다 부어 주었다. 하루 두 끼만 허락된다는 밥이었다. '저를 어쩌나….' 눈이라도 마주치면 뭐라도 내밀고 싶었지만, 어린 수도승은 눈길 하나 남기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사원 안으로 들어 가버렸다. 흰 가사 자락 아래로 드러난 작은 맨발이 빈 발우처럼 애잔했다.
헐벗은 발로 걸어오기는 우베인 다리의 나무 기둥들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잉와 왕국에서 아마라푸라로 수도를 옮길 때 옛 궁전의 티크 목을 해체해서 새 왕궁을 짓고, 남은 나무로 그 다리를 지었다고 하니 나무 기둥의 태생은 왕궁인 셈이다. 그런데 오래지 않아 궁은 파괴되었고, 나무 기둥은 호수에 박혀 맨발로 160여 년 동안 다리를 받쳐왔으니 미얀마에서는 나무 기둥도 출가를 하는가. 필시, 부귀영화를 버리고 사바세계로 떠난 부처님을 따랐음이다. 속내가 궁금했다. 나무 기둥을 두드려보았다. “통! 통!” 맑은 소리가 해탈에 이른 ‘참 수행속’ 같았다.
할머니 한 분이 다리에 기대어 염주를 돌리고 있었다. 앙상하게 접힌 무릎 다리가 세월에 풍화된 나무다리인 듯 서러웠다. 거친 물길을 헤치며 얼마나 먼 길을 걸어왔을까. 다리 위에서는 모두가 한 권의 경전이었다. 사원에 들 때처럼, 우베인 다리 위에서도 신발을 벗어야 할 것 같았다.
1,086개의 나무 기둥만큼이나 많은 사연이 있었을 것이다. 어떤 이는 첫 탁발의 시간을 거쳐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고, 어떤 이는 그 길로 먼 수행의 길을 떠났을 것이다. 돌아오지 못할 길로 떠난 이들도 있으리. 군인이 되어 전쟁터로, 피안의 세상으로…. 그 이별은 지금쯤에는 어디만큼 가고 있을까? 또 사랑은?
나무 기둥에 기대어보았다. 나의 시간도 분명 그 어디쯤 새겨져 있었던 게다. 첫 만남 때부터 강렬하게 다가오던 노란 태양, 호수의 어부들과 허공 속으로 날아오르던 그물의 포물선, 특히 다리를 걸을 때 발밑에서 들려오던 맑은 삐거덕거림. 그것은 어린 날, 내가 고향 집 나무 대문을 닫고 떠나온 뒤로 집요하게 나를 쫓아다니며 발목을 잡곤 하던 소리였다. 먹잇감을 향해 달리는 짐승처럼 질주하다가도 그 소리를 떠올리면 멈출 수 있었다. 나를 무조건 지지해주는 내 어머니를 기억하게 해 주고, 길을 걷느라 상처받은 나를 치료해주고 다독이는 소리였다. 천천히 걸으니 지나온 시간이 말을 걸어왔다.
호수가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다리는 일몰을 구경하러 몰려든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호수 왼쪽에서 키가 큰 남자가 장대를 메고 걸어가고 있었다. 긴 다리가 하늘에 맞닿은 장대와 묘한 실루엣을 이루며 서편 노을 속으로 사라져 갔다.. 수백 마리의 오리 떼가 울음으로 부리를 맞대며 사내 뒤를 따랐다. 어디서 왔는지 작은 새떼도 푸릉푸릉 노을을 날아갔다. 많은 걸음이 지나갔다. 그 걸음들이 모여서 새 길이 될 것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1.2㎞를 다 걸었다. 우베인 다리에서는 시름마저도 오랜 거처를 떠나 출가를 하는 모양이었다. 난간 하나 없는 삭아 내릴 듯한 나무다리를 겁 없이 걸었다. 마지막 나무 기둥에서 결혼식을 끝낸 신혼부부가 기념 촬영을 하며 새로운 길을 떠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그 기둥은 마지막이 아니라 첫 번째인 셈이었다. ‘불멸의 도시’라고 했던가. 아마라푸라의 나무다리 위에서는 발 디딘 모든 자리가 종착지이고 출발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