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수필]도둑들 / 마순연
도둑들 / 마순연
“에미야, 요새 도둑은 사람을 빤히 보면서 물건을 훔쳐 간다. 내가 거실에 앉아 있는데도 안방에서 뭘 들고나간다.. 이게 기가 찰 노릇 아이가.”
“엄마, 시골 살림 뭘 훔쳐 갈 게 있다고 도둑이 들었다고 그러세요.”
“야가 뭘 몰라도 한참을 모르네. 낼 아침 땟거리가 없어도 도둑이 훔쳐 갈 것은 있다고 했다”
“엄마 도대체 왜 이러세요..”
얼마 전부터 엄마는 집에 도둑이 들어서 간장이며 된장, 고추장을 퍼 간다고 했다. 집 구석구석에 CCTV를 설치했다. 그리고 주말마다 시골 가는 자식들은 그 카메라를 돌려보았다. 낯선 사람의 출입은 없었다, 평소 드나드는 이웃이나 부모님의 친구들뿐이었다.
여전히 전화하면 엄마는 도둑이 와서 아래채 창고에서 뭘 훔쳐 갔다고 했다. 그때마다 일하느라 기운 빠져 그러니 일하지 말라며 전화기에 대고 짜증만 냈다.
철마다 농사지은 걸 보내주고 간장이며 된장, 고추장도 담아줘서 엄마가 병이 난 걸 몰랐다. 가끔 힘들다고 말할 때면 농사일 그만하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 그러면 엄마는 시골에서 손 놓고 놀면 심심하고 병난다며 텃밭만 조금 해서 가족들 먹거리만 할 거라고 했다. 시간이 갈수록 엄마는 텃밭에 애착을 가졌다. 가끔은 일 하느라 식사 시간이 훨씬 넘도록 배고픈 것도 잊은 것 같았다.
코로나19 때문에 부모님 댁에 자주 가지 못했다. 전화로만 안부를 묻곤 했는데 도둑이 들었다고 말하는 빈도가 잦아졌다. 아버지가 네 엄마 치매 검사를 해 보자고 했다. 의사는 이미 치매가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나이가 들면 올 수도 있다는 생각은 했지만, 우리 엄마가 치매라니. 가슴에 돌덩이를 얹은 것 같았다. 엄마가 이렇게 되도록 몰랐다는 것에 화가 났다. 그리고 한없이 죄스러웠다.
봄꽃처럼 곱던 엄마 얼굴에는 낮달 같이 희멀겋한 마른버짐이 검버섯 사이로 솟아올랐다. 머리숱이 많아 정갈하게 땋아 올린 머리가 까맣고 반들반들했는데,, 이제는 윤기라곤 찾을 수 없는 푸석푸석한 머리숱이 듬성듬성하고 정수리 부위는 허옇게 머리 밑이 드러난다. 긴 세월을 고스란히 굽은 등에 매달고서 정신없이 오르내렸던 생의 파란만장이 얼마나 힘겨웠을까. 살아온 세월이 녹록지 않았음을 구부러지고 툭 튀어 오른 등이 말해주고 있다. 아무 위안도 되지 않는 내리사랑만 줄곧 하느라 엄마의 생은 없었다. 자식들은 제 자식 챙기느라 전화 한 통화로 안부를 묻는 것이 고작이고, 가끔 휙 스치고 가는 바람처럼 다녀가곤 했다. 그러는 동안 엄마는 비바람을 온몸으로 받아 굽은 등에 차곡차곡 채웠다.
“엄마, 미안해요. 엄마의 인생을 다 훔친 도둑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