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수필]헛꽃 / 김희자
헛꽃 / 김희자
달구어진 유월의 태양은 인두처럼 뜨겁다. 형형색색의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이 따가운 볕을 피해 산으로 든다. 울긋불긋한 모자까지 쓴 모습들이 화려하다. 키 큰 소나무들이 드리운 그늘과 짙어진 숲이 만들어낸 신선함은 아침부터 시작된 무더위를 누르고 있다. 노송의 길이 이어진다. 숲 중에서도 특히 소나무의 향기는 정신을 살찌게 하는 묘약 같다. 출가자의 특권 같은 산사 생활. 자연의 품에 묻혀 나를 돌아보며 살아가는 삶을 늘 동경하며 산으로 들지 않는가.
앞서가는 사람들을 저만치 보내고 쉬엄쉬엄 걷는다. 인기척이 멀어져간 산길 위에 적막이 흐른다. 숲에 들어서면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오감이 생생해지고 생각은 깊어져 내 안에 머무는 고요를 볼 수 있다. 이럴 수가! 녹음이 하늘까지 치는 유월도 끝자락이다. 어영부영하다 보니 벌써 한 해의 반이 뭉텅 베어져 나갔다. 그동안 내가 무얼 하고 살았지? 문득 돌아본 하루하루는 텅 비어있다. 시간을 도둑맞은 것 같아 억울하다. 지난겨울부터 내가 아무것도 아님을, 바닥을 치고 있다며 자각하고 살았다. 부질없는 생각에 얽매여 시간을 허비해버렸다.
녹음이 짙어지며 꽃 보기가 힘든 계절이다. 하지만 길가 언덕배기에 소담하게 핀 꽃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산수국의 꽃이다. 하늘 닮은 남색 꽃이 발길을 붙든다. 남색 꽃인가 했더니 꽃 끝에 하얀 꽃까지 피우고 있다. 꽃이 작아 받침 위에 또 다른 꽃을 피워 유혹하고 있다. 꽃 위에 꽃대를 밀어 올려 숲의 적막을 깨고 있다. 화려한 꽃이 햇볕도, 바람도 아닌 허공에 몸을 벌리고 있다. 제 존재를 수정해 줄 나비와 벌을 기다리고 있다.
언제 날아든 것인가? 카메라를 꺼내니 꽃잎 위에 벌이 앉아 있다. 꿀벌 한 마리가 꽃을 빨고 있다. 숨을 죽이며 카메라 렌즈를 들이댔다. 가벼운 벌의 날갯짓이 숲의 정적을 깨고 산수국은 미소를 짓는다. 꿀벌은 꽃잎의 이곳저곳을 조심스레 날며 오직 꿀만 따고 있다. 순간, 법구경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어진 사람은 꽃잎 하나 향기 한 줌 훼손하지 않고 꿀만 따가는 꿀벌 같다는 말이……. 사람들은 가장 따뜻한 말을 종이에 남기지만 나는 가장 소중한 말 한마디를 유월의 하늘 끝에 걸어둔다.
화려하게 피어 벌을 유혹하는 이 꽃은 헛꽃이다. 눈부시게 하얀 꽃은 꽃받침이 변해서 꽃잎처럼 보인다. 꽃이 아닌 것을 꽃잎처럼 위장해서 허세를 부린다. 헛꽃은 씨를 만드는 진짜 꽃이 아니라 바람잡이 꽃이다.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진짜 꽃보다 더 화려함을 과시한다. 산수국의 본디 꽃은 아주 작다. 그래서 그보다 더 큰 헛꽃을 피워놓고 수정을 기다리고 있다. 헛꽃을 보고 있노라니 문득 가난 없이, 고통 없이, 기다림 없이 피는 꽃은 없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가난하고 가난하여 내 존재마저 잃고 사는 요즘. 허기를 달래며 침묵하고 살아도 기다림마저 잃은 것은 아니다.
가뭄으로 줄어든 저수지의 물 높이를 보며 말라버린 내 몸의 물줄기를 더듬는다. 쓰라린 현실은 나를 더 오그라들게 하고 느닷없이 밀려드는 두려움은 나의 몸과 생각을 은둔하게 몰아세운다. 그래서 어느 날은 한없이 가볍고 작아진 나를 발견한다. 그래도 살아가야 한다. 가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숲이 이렇게 살아있듯 나도 세상에 존재하는 한 어떤 수단으로든 살아남아야 한다. 헛꽃이라도 피워 내가 존재함을 알려야 한다.
오래전, 운장산에서도 헛꽃을 본 적이 있다. 산딸나무의 헛꽃이었다. 산딸나무 꽃은 연초록색이었다. 자연색 꽃이 화려하지 않아 꽃 위에 하얀 꽃을 또 피워 놓고 있었다. 나무의 몸속에 꽃이 들어 있는 게 아니고 가지가 꽃을 밀어 올려 피운 꽃이었다. 그때 나무는 우주를 향해 팔을 벌리고 있었다. 연초록보다 눈길을 끄는 흰색으로 제 존재를 수정해줄 벌과 나비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헛꽃의 의미를 길 위에서 다시금 되새겨본다.
어찌 자연 속의 꽃뿐이겠는가. 사람 역시 헛꽃을 피우고 산다. 누구나 감추고 사는 비밀이 있다. 내 존재와는 무관하다고 여기며 치부를 드러내지 않고 사는 경우가 많다. 구태여 세상에 자신의 전부를 드러낼 필요는 없지 않은가. 나 역시 드러내지 않고 사는 것이 있다. 지금의 지난함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속내를 감추고 산다. 세상으로 나오면 아무렇지 않은 듯 얼굴에는 미소를 띠우고 치장을 한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헛꽃처럼 살아가는 지혜요. 현명함이 아닐까.
오늘 아침에도 나는 멋지게 차려입고 분과 립스틱을 짙게 발랐다. 그런데도 그리움과 기다림은 허무로 건너간다. 희망과 기다림은 산산이 무너져 내리고 기약도 없이 세월만 간다. 슬픔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날에는 두려움까지 인다. 이대로 이름값도 못 하고 시들고 말 것인가? 부질없는 생각으로 허무해지면 내 적막 위에 헛꽃 하나 피우고 절망을 내던진다. 존재의 힘은 행위를 통해 효력을 발휘한다. 스콜라 철학자 사르트르는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고 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아무 이유 없이 태어나 연약함 속에 생존하다가 사라진다. 하지만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은 사라지기 전까지 자신의 존재를 맘껏 드러내고 싶어 한다.
헛꽃을 피우고 앞서간 사람들의 발자국을 따라 길을 걷는다. 산그늘이 조금만 쉬어가라고 발길을 붙들지만, 또 길을 가야 한다. 더는 주저하지 말고 매 순간을 생생히 살자고 걸음을 뗀다. 아무런 힘도 없이 환골탈태 할 수 있을까마는 생이 피처럼 내 몸 속속들이 돌게 나를 찾아야 한다. 오그라든 신심을 열어 나를 드러내야 한다. 허물어져 가는 자존 위에 헛꽃 하나 피워 놓고 내 존재를 수정해줄 벌을 기다려야 한다. 지절대는 새들의 전언을 몇 줄 언어로 옮겨 구름 위에 실어본다. 내 존재를 드러내는 것은 결국 문장밖에 없다고 중얼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