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세상/좋은수필 5

[좋은수필]못 / 박방희

cabin1212 2022. 8. 16. 06:16

/ 박방희

 

 

 

우리는 못을 박으면서 살아간다. 집이나 창고, 사무실은 물론 무슨 행사장이나 점포 등 곳곳에서 못을 박는다. 못의 종류만 해도 수없이 많다. 나무못 대나무못 쇠못 돌못, 큰못 잔못 대갈못 고리못 비녀못 정자(丁字)못 무두정(無頭釘)에 나사못까지 소재나 크기, 용도와 모양에 따라 여러 종류의 못이 있다.

옛집에 돌아와 집을 수리하면서 느낀 바는 집에는 셀 수도 없이 많은 못이 박혀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은 이 집을 짓고 사신 아버지가 박은 못이다. 한때 세를 준 적이 있는 아래채에는 세든 사람이 생활하며 박은 못도 있을 것이다. 대부분 오래 방치되어 때 묻고 녹슨 못들이라 뽑아내고 새로 박아야 하지만, 그 못들은 못을 박을 당시 이 집에서 살던 사람들의 생활을 보여준다.

나는 새 필요에 따라 새 위치를 잡아 못을 박는다. 이 집도 이제 새 주인과 함께 새 삶을 시작하는 것이다. 사실 오래된 집일수록 많은 못들이 박혀 있기 마련이다. 수십 년 동안 여러 손에 의해 박힌 못들이 곳곳에서 녹슬고 있고 또 못 자국들도 군데군데 눈에 띈다. 박을 때에야 무언가 용처나 필요에 의해서겠지만 지금은 전혀 필요가 없는, 무슨 소용이 있었을까 싶은 못들도 많다. 그런 못들을 과감하게 때로는 혀를 끌끌 차면서 뽑아낸다.

못을 박을 때는 바로 잡고 박던 노루발장도리를, 뺄 때는 뒤집어 노루발을 못의 대가리 밑으로 넣어 재껴 뽑아낸다. 깊숙이 박힌 못들은 치과의사가 상한 치아를 뽑아내듯 조심스레 다루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집이 다치거나 상하기 때문이다. 나는 낡아 못 쓰거나 용도가 폐기된 못들을 뽑아내며 집이 비로소 편안해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못은 생활 속에서만 박는 것도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비롯하여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도 했다. 사람도 못에 박힐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남의 가슴에 못을 박는 일도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사람의 가슴에 못을 박기도 한다. 가슴에 박힌 못은 빼내기도 어렵거니와 그 후유증 또한 오래간다. 그러므로 남의 가슴에 못 박는 일은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일반적으로 목재로 지은 집은 못질하기가 쉽다. 송진 냄새와 함께 재질의 독특한 향이 배어나는 나무에 한 뼘 대못을 박는 일도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는 대목(大木)을 붙여 손수 지으신 이 집에 군데군데 못을 박으며 생활을 주렁주렁 매달고 봄여름 가을 겨울 사철을 걸며 삶을 못 박아 나갔으리라.

새 집에 못을 박는 일은 어쩌면 사랑의 행위인지도 모른다. 부드럽게 밀어 넣고 받아들여 서로 한 몸이 되어 사람의 생활에 이바지하였으니..... 그러던 것이 시간이 흐르면서 목재도 딱딱하게 굳고 나무의 심저에 뿌리내린 못들도 차갑게 식어 오래 산 부부처럼 변해 갔으리라. 다만 서로를 물고 물리며 오랜 기간 동고동락하다보니 그걸 떼놓는 것도 그만큼 어렵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더러 부러지기도 하고 구부러진 채 간신히 뽑혀져 나온 못도 주변에 상처를 입히고 메우기 어려운 흉터를 남기기도 한다. 못이란 박기보다 뽑아내기가 훨씬 어렵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으며 사람의 일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의 인연이라는 못이나 정()이라는 못, 미련이라는 못, 습관이란 못 모두 그러할 것이다.

처마 쪽 서까래들에 길게 박힌 대못이 여럿 눈에 띈다. 이들은 전부 메주를 매달던 못들이다. 우리 식구들의 된장과 간장을 해결했던 메주는 오래 그곳에 매달려 서서히 숙성되어 갔을 것이다. 그 못들은 물론 아버지가 박은 못이지만 나와 무관한 못도 아니다. 내가 집을 떠나 도회에서 살아갈 때도 이 못에 걸려 숙성되던 메주로 담근 된장과 간장으로 생활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렇다면 옛집 곳곳에 박혀 있는 아버지의 흔적 같은 못들을 굳이 다 뽑아내려고 애쓸 필요가 있을까. 서까래에 박힌 대못처럼 내 존재와 삶에 은연 중 뿌리내리신 아버지, 그리고 옛집이 견뎌온 세월을 생각하며 차라리 묵은 못을 뽑아내기보다는 용도에 맞게 재활용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박은 못이 없을진대 오랜 세월 방치되어 온 못이 제 자리에서 제 구실을 할 수 있도록 손봐 놓는 것으로 일을 줄이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을 고쳐먹기로 한다.

정 다시 쳐야 할 못이 있거나, 너무 깊이 박혀 도저히 뽑아내기 힘들거나 용처가 없는 못일 때는 뽑아내는 대신 못을 끝까지 박아 그 자리에 묻어 버리는 방법을 택했다. 그건 일종의 매장이 되는데 오래도록 함께한 사물의 정리(情理)로 보나 집의 보존을 위해서나 그게 더 낫지 않겠는가. 못은 이제 임무를 마치고 미운 정 고운 정 다 든 집의 몸속으로 영원히 들어가 안식할 수 있을 것이다.

못 박기가 끝난 집, 이제 나도 오래전 아버지처럼 내 가족들의 생활을 하나 둘 걸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