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수필]개나리꽃을 아시나요 / 최 시 호
개나리꽃을 아시나요 / 최 시 호
얼마 전 우리 국민들은 “산(山)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 는 법어를 남기신 성철 스님의 입적을 애도하며 큰스님을 잃는 현생에서의 작별을 아쉬워했다.
작금의 사회상이 제자리를 잃고 혼돈해 보이 길래, 산은 산의 자리에 물은 물의 자리에 있듯이 제자리를 찾으라는 꾸지람일까? 아니면 계절에 따라 산이 변하고 계곡에 따라 물이 변하지만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듯이, 우주선이 날고 로봇이 인간의 역할을 대신하는 현대문명 속에서도 인간을 둘러싼 환경이 제 아무리 변해도 근본적인 인간의 속성을 벗어날 수 없으니 인간본성을 찾으라는 가르침일까? 나 같은 사람으로는 그 뜻이 어디에 있는지 아직도 잘 모른다.
친구들 몇몇이 모여 이야기 도중 사리 이야기도 나왔다. 사리가 어떻게 생기는지, 또 수양이 깊을수록 많이 생기는지 모두들 제 나름대로 이야기한다. 한 친구가 사리를 몇 개 얻어와 성분 분석을 하여 인체에 생기는 신장결석이나 담낭결석과 비교해 보면 수양에 의해 생기는지 생리적 과정에서 생기는지 알 수 있지 않겠느냐고 하니, 철학을 전공하는 한 친구가 세상 일 중 모르면 모르는 대로 신비롭게 두는 것이 인간의 행복일 수도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높은 지리산 꼭대기까지 차도를 닦아 놓으니 차를 타고 한 바퀴 휙 돌고는 산꼭대기까지 갔다 왔다고 한다. 험한 산길을 정상을 향해 땀을 흘리며 한 걸음 한 걸음 향하다 보면 자연의 힘과 무게를 느끼고 인간의 약함을 느껴 스스로 겸손해지는데, 차를 타고 간단히 돌아오면 지리산도 별것 아니라는 오만만 늘고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교육의 기회가 적어진다는 것이다. 편리함이 반드시 인간성을 향상시키는 것이 아니듯이, 아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 신비한 것은 신비롭게 간직하며 외경의 대상을 지니고 있는 것이 인간교육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내가 두 이야기 모두 맞는 말이고 “하지 말라고 하면 더욱 기를 쓰고 해 보려고 하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니, 그러니 산은 산이고 인간은 인간이 아니냐?” 고 하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지난봄에 친척어른 한 분이 입원을 하여 문병을 갔었다. 환갑을 넘긴 나이에도 평소 건강하고 사업도 잘 하시던 분인데, 오른쪽 가슴 아래가 한 번씩 아파 입원해 검사해 보니 간암이라 했다. 본인이 충격을 받을 까 봐 가족들 간에 병명을 알려줄지 말지 망설이다 여러 가지 본인이 정리해야 될 일들도 있고 하니 본인에게 알렸다고 했다.
그는 내가 의사이니 여러 가지 묻기도 했다. 간암인 경우 6개월 넘기기가 힘들다고 하는데 사실이냐고 물었다. 일률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며 암의 위치나 크기, 환자의 건강상태에 따라 많이 차이가 나니 용기를 가지라고 위로의 말은 했지만, 나 역시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또 한 가지 “개나리꽃을 아느냐?” 고 물었다. 그러면서 나이 환갑이 넘을 때까지도 그저 봄이 오면 담장 가까이에서 제일 먼저 노란 꽃을 피우는 봄꽃이라고 대강 알고 있었는데, 이번 봄에 보는 개나리꽃이 일생에서 마지막 보는 개나리꽃이라고 생각되니 그 꽃이 유심히 쳐다보이면서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고 했다.
노란 꽃잎이 4개인데 꽃잎의 끝 부분이 조금 갈라져 대칭을 이루고, 그 꽃 속에는 가는 실과 같은 서너 개의 꽃술이 황갈색의 머리를 가지고, 작은 붓뚜껑 같은 꽃받침대 위에서······ 등등. 마치 한 편의 시를 읊듯이 한참 이야기를 했다. 조용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서.
평소 친구도 많았고 사업도 잘되었고 술도 많이 먹으며 즐겁게 살아왔으니 후회는 없는데, 막상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은 지금에 와서 비로소 주위의 무심했던 사물들이 새롭게 보이면서 그렇게 존재의 의미가 깊어 보일 수 없더라고 했다. 진작 이런 것들을 깨달았으면 좀 더 인생을 깊게 살았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고도 했다.
지난 가을 경주 불국사에 갔었다. 가을 기온이 봄과 닮아서인지 개나리꽃이 몇몇 개 반쯤 피어 있었다. 이 겨울이 가고 새봄이 오면 또 개나리꽃은 피겠지. 무심한 사람은 무심할 것이고 유심한 사람은 유심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