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수필]그 집 / 박명희
그 집 / 박명희
친정집을 스님에게 팔았다고 하였을 때 가끔 그 집을 드나들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마침 그 집을 지나치게 되어 문을 두드렸더니 스님이 집 안내를 하였다.
차벽이 없었다. 차벽은 대문에 들어섰을 때 마당 안쪽이 보이지 않게 만드는 간이 담장이다. 그 위에 기와를 얹고 이끼를 놓으면 비와 흙바람으로 이끼가 정착되어 집과 어우러져 정감 있는 풍경으로 보인다. 우리는 그 차벽 부근에서 꽃나무를 살피고 이끼를 만져보며 많은 이야기를 하였었다. 차벽을 설치할까 말까하며 분분한 의견을 나누던 동생들의 모습이 스쳐 지나가고 종교에 귀의한 수녀 동생의 모습도 떠올랐다. 스님에게 물어보니 차벽은 대문을 들어서는 손님을 경계하고 좋은 기운을 막으므로 부수어 버렸다고 하였다. 그런 탓일까. 이곳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며 전원생활을 고집하던 어머니도 곧 이곳을 떠나 서울로 이사 가셨다.
간이 대문 쪽으로 걸어갔다. 저 문을 드나들며 우리는 고추와 가지를 따고 호박잎도 땄다. 아버지의 유품을 태웠던 곳, 단감나무가 있었던 곳, 고구마 밭이 있었던 곳으로 문을 밀치고 가보고 싶었으나 나무를 덧대어서 못으로 쳐 놓은 문이 열릴 것 같지 않았다. 차벽을 설치하면 운치가 있는 것, 너른 잔디밭을 만들어 아이들이 오면 공놀이를 할 수 있게 하는 것, 집 뒤에 대나무 숲을 만드는 것, 이런저런 궁리와 계획을 세우며 우리들은 집을 다듬었다. 그렇게 시끄러이 운운하며 생각을 제안하고 천만년을 살 것 같은 계획으로 우리들은 집짓기 고민을 하였었다. 전원생활의 여유와 낭만을 꿈꾸며 이것저것 건축사에게 주문을 한 것이다. 지금 그 모든 것들은 멀어지고 그때의 욕심과 야단스러움이 부질없는 것으로 생각되어 허허롭다.
안방에서 남산을 바라보는 것이 친정에 오는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낮게 앉은 남산은 누워서도 보이었고 앉아서도 보이었다. 하늘과 맞닿은 산 능선을 눈빛으로 그리며 고요함에 젖기도 하였는데 지금은 스님이 안방에서 남산을 바라보시며 생활하고 계신다. 아버지가 안방에서 숨을 거두실 때의 모습이 되살아난다. 왜 그렇게 하지 못하였을까. 임종의 순간에 손가락을 베어 한 점 피를 내어 목을 축여 드렸더라면 아버지와 마지막 이야기라도 할 수 있었을 텐데. 어머니의 울음소리와 함께 염이 시작되고 며칠 후 나는 그 생각을 하게 되었으며 아쉽고 답답하여 가슴을 쳐 보았지만 아버지는 이미 이 세상을 하직하셨다. 외손이라고 부르던 우리 아이들을 아버지가 이곳에서 친손으로 인정하시었다. “경석이, 경은이, 우리 건구다.” 라고 말씀하시며 노환의 고통을 참으시며 앉아 계시었다. 그 모습을 뵌 지 몇 년이 지났을까. 그립다. 금방 동영상으로 눈앞에 펼쳐질 것 같은 그때의 정경을 생각하며 나는 풀과 나무를 흔들어본다. 담 벽에 손도 대어보고 흙도 만져본다.
안방 앞을 지나 뒷마당으로 갔다. 스님은 자신이 변경시키고 손 댄 곳을 계속 설명하고 안내하신다. 이야기를 하는 목소리에 낭랑함과 힘이 흘렀으며 믿음이 실려 있었다. 매실나무와 감나무도 베어내었다. 나는 우리가 좋아하던 흔적이 사라진 것이 섭섭하여 잠시 고개를 돌려 들판을 바라보았다. 바람 한줄기가 불어오며 무언의 이야기를 한다. 마당을 한 바퀴 돌 즈음 뒤돌아보니 키 큰 나무들은 모두 제거되고 풀과 낮은 나무들만 제자리를 지키며 예전의 향취를 품어내고 있다.
스님이 내어준 물 한잔을 마시고 그 집을 나왔다. 회색 적삼을 입은 스님의 고운 모습을 뒤로하며 우리는 집으로 향하였다. 나무들이 휙휙 지나가고 청정한 바람이 코끝을 스치었다. 나는 넓은 들판과 가로수를 바라보며 보리가 익고 벼이삭이 피는 것을 보며 친정을 드나들었다. 여러 날 묵을 수는 없었지만 이곳을 다녀가면 식어 가는 삶의 열정이 되살아났으며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용기가 생겨나곤 하였다.
잃어버린 친정집에 대한 내 그리움을 스님도 짐작하고 있는 것일까.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며 항상 방문하라고 말씀하신다. 스님도 어느 날 훌쩍 떠나온 전주의 집이 그리워서 나에게 그렇게 말하였을 것이다. 여성으로 수행의 길에 접어든 이유와 이곳으로 흘러와 정착하게 된 경위를 이야기하였을 때 스님도 출가하기 전의 고향집을 그리워하는 눈빛이었다.
통일원을 지나자 남편은 속력을 내어 달리기 시작한다. 그 집이 차츰 멀어져 간다. 나는 스님이 건네 준 전화번호를 주머니 속에 깊이 넣었다. 또 오리라. 남산의 바람소리가 그리울 때, 아버지가 보고 싶을 때, 나는 또 찾아오리라. 그 집을 찾아가 문을 두드리고 마당을 서성이며 불상을 놓아둔 곳을 지나 스님이 주는 물을 마신 후 오늘처럼 이렇게 돌아갈 것이리라. 사라진 차벽 근처를 서성이다 돌아갈 것이다. 한마당 놀이 같았던 지난 일을 떠올리며 살아보고 싶은 욕망을 충전받으리라.. 풀과 나무를 흔들어 보며 참은 그리움을 달래볼 것이리라.
고향이 될 수 없는 아파트를 향하여 가고 있는 나는 언제인가 또 그 집을 찾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