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수필]아름다운 것들 / 김정실
아름다운 것들 / 김정실
계속되는 비에 모든 것이 눅눅하다.
몸이 무겁고 맥이 빠진다. 꼭 날씨의 눅눅함 때문만은 아니다. 아픈 곳을 두고 미적미적 하는 것은 바보짓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행동을 굼뜨게 한 것도 한원이이다.
문을 들어서자 아늑하고 깔끔한 실내장식이 눈에 들어왔다. 다만 향기보다는 알코올의 특이한 냄새가 후각을 자극했다. 접수창구를 거쳐서 대기실에 자리를 잡아 앉았다. 잔잔히 흐르는 음악보다 안쪽에서 들려오는 기계음 소리에 신경이 더 쓰였다. 그 소리가 긴장감을 주었다. 심장이 크게 뛰고 있음을 느꼈다. 스스로가 마음을 무장하고 있었다.
간호사의 안내로 진료 침대에 편안한 자세로 몸을 눕혔다. 의사의 손놀림에 따라서 자꾸 근육이 경직 되어갔다 작은 금속망치는 어떤 제지도 받지 않고 위, 아래, 오른쪽, 왼쪽으로 바쁘게 움직였다.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명령에 따르는 사람이 되어 긍정과 부정을 손짓으로 할 뿐이었다. 의사는 오른쪽 부분을 마취해야 한다고 했다. 대답대신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 마인드 컨트롤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몸을 맡긴 채 숫자를 거꾸로 세어 가면서 뇌파 수를 내려 평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두 번의 따끔함에 몸을 움칠했다. 오른쪽이 무감각이 되었다. 모든 움직임과 소리는 들을 수 있었고 생각을 정확하게 읽고 있었다.
오래전 마당에 널린 빨간 고추가 따갑게 내리는 햇볕을 받아내고 있었다. 실타래를 들고 할머니와 엄마는 아이를 달래고 있었다. 가는 실로 앞 이를 살짝 매어 흔들면 아프지 않고 이가 금방 뽑히고 그 다음에는 예쁜 새 이가 올라온다고 했다. 아이는 무서움에 머리를 도래질 만 할 뿐이었다.
까치가 너의 헌 이를 가지고 가야 새 이를 준다고 엄마는 말했다. 내일 아침 까치가 올 때까지는 흔들거리는 앞니를 지붕에 던져야 한다고 그들은 열심히 아이를 설득했다. 아이는 까치가 이를 물고 가는 것이 보고 싶어졌다. 호기심에 잠시의 두려움이 사라져 실에 이를 묶었다. 입안에 피가 고임과 동시에 아이는 이런 소리를 들었다.
“까치야, 까치야, 우리아기 새 이 줘라.”
아이는 긴장감에서 풀려났다. 한밤을 자고 나면 까치가 벌써 이를 물고 간다는 엄마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그렇게 아이는 앞니 네 개를 갈 때마다 무서워했고 그들이 엮어내는 이야기에 마음을 빼앗겼다. 돋아나는 이를 위해 헌 이를 뽑지 않으면 도깨비처럼 이가 두 개씩 삐쭉이 튀어나와 도깨비 귀신이 된다고 어린 마음에 한껏 겁을 주었던 것도 여러 번이었다. 그래서인지 앞니 한쪽은 왼쪽으로 한쪽은 오른쪽으로 조금 빗겨났다. 허지만 그 때는 어리광에 달램을 받아주는 것이 있기에 근육의 경직은 없었다. 까끌까끌하게 올라오는 새 이가 옆으로 날까봐 자꾸 혀로 밀어내라는 말을 하루에 한두 번 들었을 뿐 시원했다. 또한 도깨비 귀신이라는 놀림을 받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안도감이 더욱 마음을 편안하고 가볍게 했다.
고추잠자리가 마음의 텃밭을 날고 있는데 의사의 말이 들렸다.
“잘 참았습니다.”
오른쪽 턱과 얼굴 반면에 느낌이 없다. 묶였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으니 임플란트를 해야 한다고 했다. 문득 지붕에 던졌으면 새 이가 돋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순간 뽑혀진 쓸모없는 이가 보고 싶어졌다. 이를 달라고 했다. 간호사가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우물쭈물 하더니 버린 이를 가져왔다. 잔잔한 음악 대신 기계 소음뿐이다. 어떤 말도 없이 휴지에 싸 가지고 문을 나섰다.
밖에는 여전히 비는 내리고 있었다. 왼쪽 비옷 주머니에 똘똘 뭉쳐있는 이를 만지면서 몇 정류장을 걸었다. 마음이 이상했다.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깎아 내는 손톱과 발톱에는 내 분신의 일부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헌데 이번만은 마음이 허전하면서 이상했다. 순간 마음에 와 닿는 것이 있었다. 자신과 함께 했던 모든 것들은 아름다운 것이라는 것을. 그러기에 자신의 한 부분이 떨어져 나가니 서운함이 드는 것이라는 것을 느꼈다. 아니 이제는 까치가 새 것을 주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
이제 새 것은 없다. 주위의 모든 것들, 사람이나 물건이나 다 함께 했던 것들이다. 그러기에 더욱 아름다운 것들이고 마음이 가는 것들이다. 떨어져 나간 것이지만 지금 것 나를 지탱해 준 것이기에 소중하면서도 아름다운 것이다. 주머니 속에 뭉쳐있는 쓸모없는 조그만 돌멩이 같은 물건을 다시 힘주어 만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