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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오래된 멍에 / 박경대

cabin1212 2022. 10. 28. 06:15

오래된 멍에 / 박경대

 

 

 

남루해 보이는 노인이 역 사무실로 들어섰다. 그는 무임승차했던 사십여 년 전의 차비라면서 봉투 하나를 내려놓았는데 그 속에는 백만 원이 들어있었다. 역장은 형편이 넉넉지 않게 보이고 몸까지 불편한 노인에게 갚지 않아도 된다며 돌려주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늘 부끄러웠다며 한사코 돌려받지 않고 이름도 밝히지 않은 채 가버렸다는 것이다.

화면을 보면서 돈이 없어 저지른 행동이 얼마나 가슴속에 멍으로 자리 잡고 있었으면 저럴까 싶어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묵직한 근심을 내려놓아 마음은 편해졌을 것 같았다. 사연을 듣고 나니 오십 년 동안 갚지 못한 빚이 생각났다.

초등학교 오학년 무렵이었다. 그때는 학교에서 급식을 하지 않아 도시락을 가지고 다녔다. 모두가 양은도시락을 사용했는데 한쪽에 조그마한 반찬통이 들어가는 형태였다. 반찬을 별도로 덮는 뚜껑이 없었기에 국물이 흘러 책을 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드물게 뚜껑이 있는 반찬 통도 있었지만 그것 역시 밀폐가 되지 않아 밥의 한쪽은 항상 반찬국물에 젖어 있었다. 너나없이 책가방에는 반찬 냄새가 배여 있었고, 김칫국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깔끔한 여학생들은 도시락을 보자기에 싸서 들고 다녔다. 하지만 남학생은 대부분 가방에 세워서 넣어 다녔다. 그러다 보니 마른반찬이 아니면 국물을 따르고 넣더라도 조금씩은 꼭 흘러 내렸다. 더구나 등굣길에 친구들과 가방을 휘두르는 장난을 무시로 했으니 도시락이 무사할 리 없었다.

어느 날, 시장에 다녀오신 어머니께서 플라스틱으로 만든 반찬 통을 사 오셨다. 생전 처음 보는 통이었다. 그릇가게 주인이 물을 넣어둔 견본을 보여 주면서 새로 나온 반찬 통인데 국물이 절대로 새지 않는다하여 구입해 오신 것이었다.

다음날 플라스틱 통에 반찬을 넣어 학교에 갔다. 점심시간이 되자 친구들 앞에서 그 통을 보여주며 흔들어도 국물이 새지 않는다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투명한 플라스틱 통을 처음 본 친구들이 몰려들어 구경하며 신기해하였다. 부러워하는 모습을 보자 점심을 먹는 내내 괜히 으쓱하였다.

점심을 먹고 난 뒤였다. 쉬는 시간이 되면 늘 친구와 장난을 치고 놀았지만, 그날은 장난이 심하였다. 가방을 방패삼아 친구의 컴퍼스를 막다가 가방 속에 있던 플라스틱 통이 뚫어지고 말았다. 깜짝 놀란 내가 물을 넣어 기울어 보았더니 물이 한 방울씩 흘러 내렸다. 오후의 수업시간은 반찬 통 걱정에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항상 멀다고 느꼈던 집까지의 거리가 그날은 무척 짧게 느껴졌다. 도시락을 내어 놓으며 어머니에게 꾸중들을 일이 겁이나 장난친 이야기는 쏙 빼 버리고 반찬 통이 새더라고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어머니는 통 뚜껑을 이리저리 살펴보시곤 나를 데리고 그릇가게에 가서 물이 샌다며 돌려주고 말았다. 나의 잘못으로 인하여 망가뜨린 반찬 통을 거짓말을 하고 반품을 하였던 것이다. 내 심장은 두근거렸지만 그 일은 금세 잊혀버렸다.

군대를 제대하고 시장을 지나치다 불현듯 까맣게 잊었던 그때의 일이 떠올랐다. 그 뒤로는 근처를 지날 때마다 구멍을 내었던 반찬통이 생각나 우울하였다. 그것을 해결하지 않고는 앞으로의 일이 잘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언젠가는 한번 찾아가보아야 되겠다고 생각은 했으나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었다.

그러고도 몇 년이 지나서였다. 세월이 가도 잊히지 않고 늘 마음 한 편에 남아있는 짐을 내려놓기 위해 시장을 향했다. 그러나 기억을 더듬어 가게를 찾아보았지만 그곳에는 이미 다른 큰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건물을 보는 순간 너무 늦게 왔다는 생각과 이제는 갚을 수 없는 빚이 되었다는 낭패감이 들었던 기억이 있다.

저녁을 먹던 중 유명인사가 오래된 추징금을 갚았다는 뉴스가 나왔다. 그는 건강이 좋지 않아 병원의 입, 퇴원을 반복하고 있는 형편으로 국가에 큰 빚이 있었지만 내지 않고 있었다. 그러자 지난달부터 가까운 사람들에게 검찰의 조사가 시작되었고, 여러 언론매체들이 압박을 하니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던 것 같았다.

서민들은 구경하기도 힘든 큰돈이기에 내놓기 아까웠으리라. 하지만 추징금을 갚은 것은 본인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잘한 것 같다. 그동안 여기저기서 이어진 질타에 얼마나 마음이 괴로웠을까. 그러나 이제부터는 마음이 한없이 편안하리라. 인생은 어차피 맨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니 꼭 쥔 주먹을 펴 내려놓는 일보다 더 편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요즘에도 플라스틱 통을 볼 때마다 그때 일이 생각난다. 어쩌면 어머니는 양심을 속이면 두고두고 짐이 된다는 것을 가르쳐주시려고 나를 그릇가게에 데려간 것이 아닐까. 어머니와 가게 주인에게 했던 그때의 거짓말은 반 백 년이 되도록 내 가슴속에 우울하게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그때의 오점은 언제부터인가 나의 양심신호등이 되어 잘못된 행동을 제어해주고 있는 듯하다. ( 2013.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