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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엉킨 실타래 / 이영순

cabin1212 2022. 11. 3. 07:51

엉킨 실타래 / 이영순   

 

 

 

  꽁다리를 찾는다. 쌀 포대를 열기 위해 양쪽을 다 찾아보건만 끙끙대면서 모든 실을 건드린다. 실이 풀리지 않아 결국 가위로 포대를 자른다. 꽁다리를 잘 찾으면 나머지 실타래가 수월하게 풀리지만 살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엉킨 실타래를 만난다.

 계절이 바뀔 때면 제철에 맞는 옷가지를 정리한다. 손이 닿지 않던 수납장도 열어 안을 들여다본다. 빛바랜 스웨터가 한쪽 귀퉁이에 웅크리고 있다. 풀어서 다른 옷을 만드는 데 사용하려 했는 데 시간이 걸릴 것 같아 미루어둔 것이다. 그만 내다 버릴까? 하루가 멀다 하고 신제품이 나오는데 헌 옷에 매달려 시간을 허비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한 편으론 아쉬운 마음에 거울 앞에 가져가 입어보기도 한다. 구매했을 때 색상이며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 즐겨 입었던 옷이다. 수년간 내 몸을 따뜻하게 담아서 함께한 순간들이 떠오른다. 더는 미루지 말자는 생각이 들어 풀기로 마음먹는다.

  실마리를 찾기가 어렵다. 이리저리 뒤적이며 꼼꼼히 한 올 한 올 더듬는다. 한 매듭만 찾으면 나머지는 힘들이지 않고 풀리는데 시간만 흐른다. 매듭이 엉켜 풀기 힘들어도 끝이 날 때까지 풀어야 한다. 중간에 멈추면 엉킨 상태로 두어야 하니 그동안의 노력이 헛수고가 된다. 많은 시간이 지났는데도 풀리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하여  이렇게까지 꼬여 버렸는지 짜증이 나기도 한다. 엉킨 실타래는 당길수록 조여진다.

  어릴 적에 실을 감은 적이 있다. 두 손에 실타래를 끼우고 헝클어지지 않게 둥글게 돌리며 감는다. 하다 보면 감는 사람이나 끼운 사람이나 실수로 실타래가 손에서 빠져나와 엉켜버리기도 한다. 엄마는 실마리를 찾아 힘들게 감은 실로 호롱불 밑에서 뾰족한 대바늘을 요리조리 움직이며 뜨개질을 하셨다. 종일 집안일에 밤이 새도록 뜬눈으로 뜨개질하는 엄마의 힘겨움에는 관심도 없이 무릎을 베개 삼아 그 곁을 맴돌며 긴 겨울밤을 보내기도 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마술램프를 보듯 풀린 언니의  작아진 스웨터가 내 목도리가 되고 벙어리장갑이 되어있었다.

 실타래를 헝클어 놓고 만지지 않은 척 시치미를 뗀 적도 있다. 엄마는 엉켜진 실타래를 보시고는. 긴 한숨을 쉬시곤 우리를 꾸짖지 않고 실타래의 끝을 조용히 찾으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엉킨 실타래의 끝은 찾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손끝으로  한참을 씨름하다가 그 끝을 찾아 실을 솔솔 풀어내셨다. 엄마의 호흡과 표정만으로 사람과의 관계를 익히며 남과의 부질없는 경쟁보다 얽히고설킨 실마리를 차분히 풀어 나가야만 매듭이 없는 하나의 실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가위로 싹둑 잘라 끝을 만든다. 어렵게 찾느라 힘겨루기 하는 것 같을 때 어느 한 곳을 잘라내면 시간도 걸리지 않고 쉽게 풀 수는 있지만  끊어버리면 똥 가리로 남는다. 똥 가리를 묶어 이어도 하나의 형태지만 보기 싫고 쓰임새도 제약이  따른다. 무슨 일이던 아니다 싶을 때는 포기도 빠르면 좋을 때가 있다. 안 되는 걸 억지로 잡고 있으면 에너지 소모만 크다. 길이 막혀 있을 때 돌아가면 되는 현명한 판단으로 털고 일어나는 용기도 필요하다. 다만 생각의 차이지만  짧지만 과감한 가위질은 자르고 나간 실들을 찾아서 원래 길이만큼의 하나 된 실로 만들기 까지라고 본다.

  실타래는 처음부터 꼬여 있지 않다. 풀어내는 과정에서 얽히고설키는데 자신의 그른 판단 때문에 꼬인 것인 지도 모른다. 아무리 엉켜 있는 실타래라도 시작과 끝점은 있다. 이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이며 한 올 한 올 느슨하게 해서 풀어야 한다. 잘라내기보다 푸는 것이 깔끔한 마무리라는 것을 알려 주는 것이다. 엉킨 실타래를 한 가닥 한 가닥 끊고 나가면 나만 끊는 게 아니고 주위에 함께 있던 사람들도 자기의 뜻과 상관없이 멀어져 나간다. 사람 사이의 매듭도 서로의 입장만을 내 세우지 말고 차근차근 한 발 한 발 물러서서 풀려는 마음이 필요하다.

  실마리를 찾자. 가슴 저미는 아픔이 우리 앞을 가로막아도 헤매지 말고  스스로 찾아야 한다. 사람과의 사이에서 문제가생기지 않으면 참 좋은데 어쩔 수 없이 문제는 발생한다. 단순한 문제면 어렵지 않지만, 문제가 쌓였거나  수없이 많은 실타래가 엉켜있으면 옳고 그름을 가르는 과정에서 부딪치는 힘겨운 싸움을 맛봐야 한다. 엉킨 실타래 속에서 어디서 어떻게 엉켰는지를 찾아내고 그것이 나의 잘못이었다면 겸허히 인정해야 한다. 해결하지 못해 가하는 가위질보다는 실마리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의도치 않게 엉켜 버릴 때도 있다. 미련 없이 풀고 새로 시작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순조롭게 내가 원하는 대로만되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모든 일이 그렇듯 쉽지 않다. 머리 없는 실타래처럼 헝클어진 생각이 해결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얻기 어렵다.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도 얽힌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것보다 풀기 전에 엉키지 않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풀릴 것 같지 않은 헌 스웨터를 모두 풀고 나니 마음이 후련하다. 풀어진 실을 모아 새로운 삶을 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