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세상/좋은수필 5

[좋은수필]마루카페 / 옥경자

cabin1212 2022. 11. 9. 07:09

마루카페 / 옥경자

 

 

 

아이고 야야 친정 왔나?”

왜 그렇게 바쁘세요?”

아이고 내가 정신이 없어서 가스 불 잠가 놓고 왔나 확인하고 오는 중이다.”

친정집 담을 벽 삼아 만들어 놓은 마루처럼 짜놓은 편 상에 걸터앉으며 동네 어르신들이 옹기종기 모여들고 있었다.

내가 어렸을 때 살았던 집은 큰방과 작은 방을 나란히 하고 마루가 있었다. 동네사람들의 쉼터나 마찬가지인 우리 집 마루에는 언제나 왁자지껄 사람들의 왕래로 조용한 날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문은 항상 열려 있었고 길가 집이라 들어오기가 쉬웠다. 살기는 넉넉하지 않았지만 사람 좋아하는 할머니께서는 오는 사람 가는 사람 다 참견하여 물이라도 마시고 놀다 가라고 청했다. 요즘처럼 문화센터나 경로당 이런 시설들이 없었으니 모여서 수다 떨 장소도 마땅찮았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있었다.

특별히 누구네 집에 행사가 있으면 음식을 우리 집 마루로 가져왔다. 지금 생각 해 보면 우리 엄마가 얼마나 귀찮았을까 싶기도 하다. 할머니도 돌아가시고 도시계획에 물려 집의 일부분이 도로가 되었다. 좁아진 집을 입식으로 고쳐 마루와 대문이 없어지고 현관문을 열면 바로 거실 겸 주방이다. 반대로 현관문을 열면 골목길이다.

언제부터인가 친정 집 현관문 옆 담벼락을 따라 마루가 놓였다.. 장판을 깔고 비가 와도 걱정 없도록 지붕을 만들고 이렇게 또다시 마루가 형성되고 동네 사람들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동네 어르신들의 놀이터나 다름없는 마루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있었다. 그 중에서 특별한 할머니가 있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할머니는 한 결 같이 그 마루에 나와 앉아있었다. 밥을 먹으려고 하면 한 두 끼도 아니고 매일을 그러고 있으니 밥상에 숟가락 하나 더 놓는 일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그래도 어머니는 사정을 익히 아는 터라 형제처럼 살갑게 대해 주었다. 조금 늦게라도 나오는 날이면 혹시나 해서 찾아가 보고 모셔오는 일도 있었다. 거의 매일을 한 결 같이 마루지킴이처럼 출근을 하는 터라 할머니가 나오지 않는 날이 그리 흔하지는 않았다. 할머니에게는 교도소를 내 집처럼 들락거리는 아들이 있었다. 집에 있어도 문제였다. 옆집에 뭐가 없어지면 제일먼저 아들에게 의심이 간다는 할머니에게 아들은 언제나 아픈 손가락이었다. 전과 기록이 엄청 많은 아들은 노숙자로 지내며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이제는 어느 교도소에 있는지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른다고 했다. 할머니에게 마루는 아들을 기다리는 유일한 장소였다. 언제나 그 마루에서 눈이 빠지게 기다리는 할머니의 시선은 밥을 먹고 있어도 남의 이야기를 들을 때도 언제나 먼 곳을 향하고 있었다. 행여 아들이 돌아올까 해서였다. 어느 날 파출소에서 연락이 왔다. 확인할 것이 있다는 전갈을 받고 갔다 온 할머니는 며칠을 앓아누워 마루에 나오지 않았다. 아들이 노숙을 하다가 동사(凍死)한 것이다. 며칠을 앓고 나더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또다시 할머니의 마루 지킴이는 계속되었다. 그렇지만 할머니의 눈은 더 이상 먼 길을 더듬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대낮인데 앉아서 꾸벅꾸벅 졸던 할머니가 오늘은 이상하게 졸린다면서 한 숨 자고 오겠다며 집으로 갔다. 그리고 할머니는 낮잠 중에 그냥 숨을 거뒀다. 자식복은 없지만 죽을 복은 잘 타고 났다며 모두들 부러워했다. 가슴 아픈 사연들도 어른들의 동네소식도 고스란히 간직한 마루카페다 그렇게 애통해 하던 어른들이 이제는 한 사람씩 보이지 않는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건 마루카페 뿐, 사람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그렇게 세월을 따라 늙고 병들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이제 몇 사람 남지 않은 친정집 마루에는 오늘도 끊임없이 사람들의 온기로 가득하다.

현관문이 열리며 양푼 가득 감자가 하얗게 김을 내며 등장한다. 감자를 좋아하는 우리 엄마의 인심이다. 누군가 들고 온 수박이 빨갛게 속살을 드러내며 가지런히 놓여 있고 이곳저곳 골목 끝에서 한 가지씩 먹거리들을 가지고 오는 걸음걸이들이 바쁘다. 한낮의 햇볕은 뜨겁지만 한 바탕 시원한 소나기 같은 인심이 있기에 오늘도 친정집 마루카페에는 활기가 넘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