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세상/좋은수필 5

[좋은수필]숨은 다리 / 송명화

cabin1212 2022. 11. 17. 06:03

숨은 다리 / 송명화

 

 

"너무 좋다."

여든아홉 할머니 얼굴이 빛이 난다. 팔걸이가 나지막한 소파에 앉아도 보고 누워도 보며 만족해하신다. 딸들과 손자를 호위병처럼 거느리고 굽은 허리를 애써 펴며 즐겁게 거니는 할머니가 이 팀의 대장이다. 꼼꼼하게 따지고 마지막으로 할머니한테 결재는 받는 그들의 대화 방식에 나도 덩달아 즐거워진다.

딸들이 의논을 했단다. 어머니 근처에 모여 살기로 하고 한 단지 안에 각기 작은 아파트를 얻고 집을 수리하고 가구를 들이고.

왁자한 수다 속에 정이 뚝뚝 떨어진다. 준비하는 과정을 듣는 나도 신바람이 났다. 내 어머니가 쓰실 것인 양 가성비가 높은 가구를 이리저리 궁리한다. 시공할 때 케이크라도 보내고 싶은 마음이다.

육십 대인 언니는 장롱을, 오십 대인 동생은 식탁과 화장대를, 할머니는 소파를 계약하고 일어섰다. 엘리베이터가 다 내려갈 때까지 도란거리는 말소리가 우리 매장을 밝혔다.

할머니의 여생에 동반자가 되어줄 소파에 앉아 본다. 푹신한 등 쿠션에 탄탄한 좌판의 박음질이 뚜렷하고, 네 모서리를 떠받친 다리의 각선미가 돋보인다. 젊은 날 어머니가 아끼시던 화초장 다리가 저리 날렵했었지. 넓고 나지막한 팔걸이는 베개로 안성맞춤이다. 바로 눕고 모로 눕고 손님이 없는 틈을 타서 나도 할머니처럼 누워본다. "너무 좋다." 할머니처럼 소파가 좋아서가 아니다. 부러워서 절로 나오는 소리다.

내가 쓴 수필 매니큐어의 주인공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빨간 손톱이 이채로운 나뭇가지 같은 손 사진만 남기고 할머니는 곤고했던 삶을 접으셨다. 말년에 그분이 사셨던 동해안에 위치한 치매노인요양원은 외로운 섬이었다. 서울 사람도 여기까지 모시고 와서는 혼자 올라가 버린다던가. 가족으로부터 버림을 받는 순간 할머니의 우물은 말라버린 것 같았다. "좋다"는 낱말을 잊으셨는가. 목이 터져라 새타령을 부르건만 추임새는커녕 박수조차 힘이 없었다. 두어 번 손 부딪고, 다시 늘어뜨리는 그 손에 신 작가가 매니큐어를 칠해 드렸었다. 춤을 추고 노래를 불러드려도 물기가 돌지 않던 눈동자가 못내 서러웠다.

튼튼한가. 소파의 네 귀퉁이 다리가 모양을 내느라 가냘파 보인다. 걱정스러워 몸을 낮추고 아래를 들여다보니 우람한 다리 네 개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를 떠받치고 있었다. 숨은 다리가 할머니의 자녀들이구나 싶어 무릎을 탁 쳤다. 할머니가 몸을 쭉 펴고 누우시며 "너무 좋다."라고 말씀하실 수 있었던 것은 든든한 자식들을 거느린 자신감의 표현이라는 생각을 한다. 자식들의 응원이 없었더라도 할머니는 감탄사를 쓰실 만큼 이 소파가 좋으셨을까. 자식들의 떠받들고 있는 보료 위에 편히 쉴 수 있는 자리가 오늘 할머니의 자리이다. 소파 할머니와 매니큐어 할머니의 노년을 비교하며 숨은 다리를 두드려본다.

며칠 전에 어머니를 보내드렸다. 기억이 예전 같지 않은 어머니를 우리 집으로 모셔온 건 성급한 행동이었나 보다. 사흘을 넘기지 못하고 가방을 싸들고 문간에서 재촉하셨다. "내 집 두고 왜 딸네 집에 사느냐."는 말씀이 단호하였다. 이제 연세 드셨으니 자식 말 들으시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내게 역정 내시며 부리나케 아파트 밑으로 내려가셨다. 억지로 모셔온 건 내 마음 편하고 싶은 이기심의 소치였나 싶어 아직도 마음이 편치 못하다. 자식 고생시킬 것 없다며 승용차도 마다하고 기어이 버스에 오르신 어머니가 환하게 웃으시며 손을 흔드시는 게 아닌가. 어머니의 약봉지를 한 보따리 받아 들 때처럼 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할머니의 말씀이 귓전에서 맴돈다. 내 어머니의 말씀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얘야, 너무 좋다." 든든한 숨을 다리가 되지 못하는 자식이 퍼런 눈물을 찍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