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수필]길 위의 길 / 배귀선
길 위의 길 / 배귀선
방금 읽었던 책 내용이 생각나지 않을 때가 잦다. 그뿐 아니라 글을 쓸 때 적절한 어휘가 잘 떠오르지 않고, 손에 쥔 물건을 찾는 일 또한 비일비재하다. 말을 할 때도 생각들이 머리에서 맴돌기만 하고 입으로 터져 나오지 않아 당황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남의 일처럼 생각했었는데…. 나이에 따른 피할 수 없는 과정이라 자위해 보지만 어쩐지 서글퍼진다.
그럴 때면 맨땅을 더듬어 푸르게 제 길을 가는 우리 집 텃밭 넌출들이 부럽기도 하다. 잠자리가 하늘을 높이는 것은 그들만의 길을 만드는 것이며, 푸석한 삭정이에 깃드는 한 줌 바람도 제 길을 쉬어가기 위함일 것인데, 나는 이순이 다 되도록 어떤 바람이었으며 어떤 길이었는가.
준비한 자료를 서둘러 유에스비에 담는다. 여느 때처럼 똑같은 길을 따라 강의실로 향한다. 자동차의 라디오를 켠다. 끄트머리 부분의 대중가요 가사가 사라지고 진행자의 목소리가 옆자리에 앉는다. 가던 길로만 가는 것은 치매예방에 좋은 것이 아니라는 또박또박한 진행자의 멘트에 귀를 세운다.
내가 사는 곳에서 수필창작 강의실까지는 그리 멀지 않다. 삼거리 신호등 앞에 멈춰 선다. 유기된 듯한 개 한 마리 휑한 건널목에 서 있다. 좌우를 살피더니 초췌한 모습을 끌고 길을 건넌다. 목을 늘어트린 채 천천히 걷는다. 앙상한 길을 끌며 어디로 가는 것일까. 나는 직진을 해야 하지만 유기견을 따라 낯선 길로 핸들을 돌린다. 따라가는 내가 부담스러운지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뒤를 돌아본다. 골목에 든 유기견의 뒷모습이 멀어진다. 그는 좁은 갈림길에서 잠시 서성이는가 싶더니 모퉁이를 남겨두고 사라진다.
낯선 길, 그 길에 펼쳐진 생의 그림들. 다가오고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이 새롭다. 그런데 나는 왜 한길만을 고집하며 살았는가. 저만치 엄마의 손을 잡고 아장아장 걸어가는 아이의 걸음이 어설프다. 설은 저 아이의 걸음은 이십 년 후 어디에 닿아 있을까. 도로 한쪽으로 지나가는 붕어빵 리어카 지붕의 천막이 위태롭게 흔들린다. 끌고 가는 것인지 끌려가는 것인지 모를 노인의 허리에 한 줄기 햇살이 든다.
내가 살아갈 나머지 길이 궁금해질 즈음 라디오에서 인생은 나그네 길이라는 노랫말이 흘러나온다. 최희준의 '하숙생'에서처럼 나는 어디서 와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아무리 돌아보고 둘러보아도 실루엣처럼 희미하다.
갑자기 앞차의 움직임이 둔해지더니 이내 멈춘다. 뒤따르던 나도 브레이크를 밟는다. 다른 때 같으면 조바심에 경적을 울려대거나 얼굴을 붉히기도 하겠지만 오늘은 그러려니 하며 시선을 창밖에 둔다. 도로를 물고 서 있는 상가에서 수시로 들고나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어떤 이는 해맑은 얼굴이고 어떤 사람은 심각한 표정이다. 한동안 서 있던 차들이 서서히 움직인다. 정체의 진원지를 지난다. 오토바이의 잔해와 핏물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고 레커차가 꽃상여 같은 빛을 허공에 흩뿌리며 자동차를 견인하고 있다. 승용차를 운전한 사람은 괜찮은 것 같은데 오토바이를 운전한 사람은 살았을까, 죽었을까. 길과 길이 부딪힌 현장을 지나며 사람의 길이 이처럼 쉽게 끝날 수 있다는 생각에 운전대를 바투 잡는다.
뭇사람들은 오래전 성현의 말을 따라 삶과 죽음이 하나라고 한다. 예전엔 그런 말이 잘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기억도 쇠하고 몸이 자주 아프면서부터는 생사 일여라는 말이 새롭게 느껴진다. 그러니까 오토바이 운전자처럼 잘못 든 길도 그만의 길이듯, 이명이 곁들고 잦은 병치레를 하는 내 길도 새로운 길일 것이다.
길 위에 서 있는 또 하나의 길. 절름발이 삶일지라도 내가 내딛는 곳이 길이 되었듯 기억이 아프고 쇠한들 어쩌랴. 한 포기의 풀도 그대로 있지 않고 계절 또한 똑같은 모습으로 오지 않는 것이거늘, 나는 어디서 무엇을 찾아 헤맸고 또 보려 했는가. 오늘처럼 굳이 다른 길을 가지 않더라도 내가 서 있는 오늘이 생이며 사이고 길인 것을.
늦은 강의실 문을 연다. 이제부터는 느낄만한 가슴이 있는 수강생들이 내 눈 속에 길을 내는 시간이다. 결국 사는 동안 세상이 살만하고 아름다운 건 이들의 눈과 내 눈이 길처럼 얽혀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면 지금, 여기, 살아 있음이 죽음을 업은 또 하나의 길일 것이니 닿는 인연의 길들을 귀히 여길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