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수필]이름 짓기 / 이장희
이름 짓기 / 이장희
첫 딸 이름 짓기는 의당 아비 몫이라고 언질을 주었다. 아들은 직장 일 해가며 틈틈이 작명법을 익혔단다. 미래를 예측해 이왕이면 좋은 길로 인도하려는 부모의 소망을 이름에 담는다면 가족 모두에게 좋은 일 아닌가. 돈 안 들이고 지어 유료사이트의 무료감정까지 거쳤단다. 최종 압축 결과를 보니 몇몇 작명이론에 충실하게 지었구나 싶었다.
막바지에 두 가지로 압축되었다. 그중 하나는 가운데 글자의 한문 뜻을 보니 일부가 이름자로는 어울리지 않았다. 나머지 이름에 더 후한 점수를 매기며 훈수를 했더니 ‘그렇지요’ 라며 아들도 수긍하는 눈치였다. 낙점이 찍힌 이름 석 자는 분석 결과 썩 좋은 이름이라는 판정이 나왔다. 초년부터 말년운세, 총 운세까지 모두 팔백 육십 점 이상의 점수였다. 부르기 무난하면서 흔한 이름은 아닌 창작품이었다.
아비 노릇 했다고 가슴 뿌듯한 모양이었다. 며칠 후 ‘딸 이름 짓기 프로젝트’라며 페이스북에 올려놓은 자랑이 보였다. 일 년 중 유독 짧은 달에 열흘 남짓 남았던 생선꼬리 만큼의 시한이 후딱 닥쳤다. 이름 짓고 돌아서니 말일이 되었다. 바쁜 아들 대신 산모가 잠시 아기를 맡기고 출생신고를 마쳤다했다. 다음 달부터 출산장려금을 받으려니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큰 벼슬이라도 한 듯 기대에 차서 함박꽃이 피었다. 며느리의 해맑은 모습이 천진난만했다.
옛날에는 부모나 집안 어른들이 이름을 지어주셨다. 요즘은 작명가에게 맡기는 풍조에다 일정 금액을 주고 생년월일시와 성씨, 본관을 인터넷에 입력하면 순식간에 좋은 이름이라며 택해 주니 정말 편리한 돈 세상이다. 그럼에도 유명 전문가에게 큰돈을 주고 지어야 복 받고 출세한다고 쉽게들 생각한다. 문제는 행운을 가져올 멋지고 훌륭한 이름이란 것들이 너무 흔해져서 탈인 것 같다.
요즘 어른 아이 없이 인기인 유명인이 되면 예명을 쓴다. 그러니 여러 개의 이름을 소지한 셈이다. 그래서 남들이 쓰지 않은, 사주에 맞고 멋지며 마음에 드는 이름을 고르기란 하늘에 별 따기인 것이다. ‘한별’이니 ‘은혜’니 ‘하늘’이니 괜찮다 싶어 확인해 보면 벌써 수많은 이가 쓰고 있다. 미리 특허라도 받아 놓을 수 없으니 마음에 드는 멋지고 귀한 이름을 독차지할 수도 없는 것이다.
나의 창작물은 즉흥적으로 지은 아들 이름이다. 항렬을 따르되 집안 조카들에게 없는 이름으로 뜻과 발음에만 신경을 썼다. 작명법도 모르고 지었지만 지금껏 탈 없이 커 준 저간에는 아비의 작명 덕도 일부 반영됐을 것이다. 좋은 게 좋다고 손녀 출산일 훨씬 전부터 이름 짓는 법을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명법 책을 몇 권 빌렸다. 저자마다 이론은 각각이지만 고개가 끄덕여지는 일반적 원칙도 있었다.
작명에는 사주를 따진다. 생년월일시에 따라 부족한 영역의 기운을 이름자로 채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주의 강약, 평생운수, 자원오행이니 소리오행이니 여든 한 가지 수리 상의 길흉까지 감안한다. 사주에 따른 운수를 보완하고 상생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이름의 생성과정인 것이다.
책을 반납하기 전에 중요한 내용을 메모했다. 글로벌 시대엔 영문자와도 상통해야 하고 놀림감이 되어서도 안 된다. 상생하고 보완하는 획수의 해설 같은 극히 일부분만 적어두었다. 출생일시를 태어나기 훨씬 전에 정확히 예단할 수 없다. 연월일시가 나와야 이름 석 자를 지어볼 수 있는 것이다.
소리오행에 합당하고 초년, 말년 운세, 종합적 총운까지 헤아리자면 그렇다. 좋은 이름을 미리 작성해 놓는다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어떤 이론가는 한글세대한테 한자 획수가 대수냐, 근거 없는 이론이라고도 하고 어떤 이는 국회의원 이름 3분지 2가 수리오행數理五行에 맞지 않은 엉터리란다. 그러니 모조리 고쳐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듣기 좋고 고운 이름이라며 광고도 한다. 예쁜 이름의 순위라며 상업적 작명가들이 인터넷상에 드러내 놓고 매매가 성립된다. 인기 탤런트, 가수 같은 이들이 벌써 죄다 선점해 알려진 ‘예나, 정아, 한솔, 혜리, 혜진’ 같은 이름이었다. 또 부르기 좋은 한글이름이라고 애용하는 하늘, 단비, 은별, 이슬 같은 이름들도 싸구려 양말처럼 널려 있었다. 연속극 등장인물로 거푸 우려먹어 신선미가 없고 못마땅했다. 이왕이면 귀하고 부르기 좋고 아름다운 이름을 창작해 안겨주고 싶었다.
딸의 경우는 아들과 달리 선택의 여지가 좁다. 딱딱하고 남성적인 묵직한 음인 ‘걸, 석, 섭, 욱, 탁, 택, 혁, 협, 훈’은 괄호 밖이다. 또 시대에 맞지 않는 ‘자, 숙, 순, 희, 분’ 같은 글자도 그렇고, 애완견 이름 닮은 것, 너무 흔해빠진 이름도 제쳐놓았다. 그리고 보니 선택의 폭이 한 아름에서 한 움큼으로 줄어든다. 출산일이 성큼성큼 다가오니 출산일시를 감안해 스무 남은 가지 이름을 골라 표로 만들었다. 파일로 보내며 이 중에서 선택해보라 맡기는 게 내 재간의 한계였다.
무성한 숲속에 이름 없는 풀은 하나도 없다. 하물며 이름 없는 사람이 있을 수 없다. 그러니 이름이란 다름 아닌 존재 가치나 의의意義를 뜻한다. 이름이 주어짐으로써 사물이 비로소 의미를 얻게 되고, 의미를 얻게 됨으로써 존재가치를 지니게 되니 이름은 필수인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경우는 다르다. 사람에게 이름이란 단순한 호칭 수단이 아닌 목적 그 자체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