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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묵은지 / 小珍 박기옥

cabin1212 2024. 1. 1. 06:09

묵은지 / 小珍 박기옥

 

 

자질구레한 볼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서는데 시골에 사는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작년 치 김장 끝물을 나누려고 하니 생각이 있으면 오라고 한다.

“당연히 가야지, 밥만 안쳐라. 양념돼지불고기는 내가 해 갈 터이니.”

부랴부랴 냉장실에서 돼지고기를 꺼내 적포도주를 붓는다. 맨손으로 자근자근 눌러놓은 후 양념 준비를 한다. 진간장 반, 조선간장 반에다 고추장, 고춧가루를 푼 후 참기름, 설탕, 마늘로 간을 맞춘다. 양파, 청양고추 몇 개를 듬성듬성 썰어 완성한 후 김치통을 준비한다. 운 좋으면 묵은지 한, 두 쪽도 얻어올 수 있으므로 아예 김치통에 담아 가는 것이 실속이 있다. 뜨거운 밥과 양념 돼지불고기와 묵은 지는 겨울철 빼놓을 수 없는 삼합이다. 오늘은 또 몇 명이나 올려나?

 

모여든 친구는 모두 다섯 명이다. 산 밑이라 일찍 해가 지는지 어느새 밖이 어두워지려 하고 있다. 친구는 남편과 함께 마당에서 김칫독을 파내고 있다. 1년 동안 땅속 깊이 갇혀 있던 김칫독이 한숨을 토하듯 모습을 드러낸다. 지구상의 그 어떤 최선의 가치, 사랑이나 죽음까지도 준비되고 기다리는 과정이 아닐까 하는 메시지처럼 느껴진다. 침묵하고, 기다리고, 김칫독에서 김치가 익듯 고통 속에서 힘겹게 저 스스로 발효될 때 너와 나, 우리가 어우러지는 것은 아닐는지.

친구의 손짓에 따라 모두들 김치 통을 들고 우르르 몰려간다. 부부는 방금 땅속에서 꺼낸 김치를 두어 쪽씩 차례로 담아준다. 묵은지 냄새가 물씬 난다. 한 해 동안 지붕처럼 이고 지냈던 곰팡내의 기운이 서려 시큼한 맛이 코를 찌른다. 우리는 모두 군침을 삼키며 묵은지 한 쪽의 맛을 즐긴다. 아득히 멀리서 온 것 같은 그 맛. 엄마의 배 속에서부터 입력된 것 같은 그 맛. 할머니의 할머니, 다시 그 할머니의 앞치마로 전해져 온 그 맛이다.

친구의 태도가 제법 도도하다. 공평하게 차례로 나누어주는 폼이 꼭 전쟁 중 피난민들에게 구호물자를 나누어 주는 유엔군처럼 당당하다. 반면에 우리는 조금이라도 더 많이 얻으려고 안간힘 쓰는 피난민들이다. 나의 김치와 남의 김치를 연신 비교하는 꼴이 유치하기 그지없다.

마침내 독이 비어 돌아서려는데,

“잠깐만!”

친구가 나를 불러 세운다.

“돼지불고기 재워왔겠지?”

“응.”

내가 고개를 크게 끄덕이니 무 쪽 두어 개가 김치통에 덤으로 얹힌다. 말도 안 된다고 남은 친구들이 아우성쳤지만 나는 잽싸게 뚜껑을 닫고 식당으로 도망친다.

 

식사가 시작되었다. 묵은지는 정말 묵은 맛이 있었다. 갓 지은 뜨거운 밥과 땅속에서 금방 꺼낸 자연 발효 김치의 오묘한 신비는 그 어떤 설명으로도 모자랄 것이었다.

   박식한 친구의 남편은 우리 앞에 놓인 포도주 잔을 일일이 채워주면서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 우리나라의 발효식품을 화제로 이끈다.

   얼마나 현명한 조상들인가. 그 옛날 신토불이(身土不二)라는 말조차 없던 시절에 이미 그들은 몸과 땅이 하나가 되는 지혜를 익혔으니 그것이 바로 저장식품의 시작이었다. 과학자들이 위 속의 대장균을 연구하기 전부터, 서양에서 요구르트를 먹기 훨씬 전부터 우리 조상들은 콩을 발효하여 된장을 만들고, 채소를 발효하여 김치를 만들었던 것이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내 차례가 되어 김치에 얽힌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하게 되었다. 어린 나이에 프랑스에서 공부하게 된 딸아이의 이야기였다. 유난히 엄마를 밝히고 김치를 좋아했던 아이였다. 주말마다 편지를 써서 김치 타령, 콩나물 타령, 된장 타령을 늘어놓던 철부지였다.

딸이 한번은 크게 낭패를 본 일이 있었다. 딸은 중국 시장에서 먹음직스럽게 양념된 김치 한 포기를 사 오게 되었다. 독일에서 온 룸메이트 몰래 먹어볼 요량이었다. 냄새가 특별한 김치의 특성상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을 터였지만 아이로서는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절박함이 있었을 것이었다. 숨길 곳을 찾지 못한 아이의 머릿속에 ‘땅속’이라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아이는 기숙사의 화단 한 귀퉁이에 김치 그릇을 묻어두고 밤마다 아무도 몰래 배추 한 잎씩을 야금야금 꺼내 먹기 시작했다.

   하루는 경찰이 아이를 찾아왔다. 기숙사 내 동양인 여학생 하나가 밤마다 땅을 파고 붉은색의 무언가를 꺼내 먹는다고 신고가 들어간 것이었다. 80년대의 이야기이기도 하거니와 동양인 학생이 흔치 않은 유럽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었던 것이다.

난처해진 딸아이가 허겁지겁 경찰에게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이게 바로 한국의 대표 음식 김치랍니다. 배추를 양념해서 발효시킨 거예요. 한국에서는 겨우내 김치를 땅속에 묻어 놓고 이렇게 조금씩 꺼내 먹지요. 드셔보세요. 맛있어요. 맛있다니까요.”

  그러나 경찰은 마이동풍이었다. 그는 전혀 아이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두 손을 크게 저어 ‘붉은색의 음식’을 극구 피하면서 불결하게 음식을 왜 땅속에 묻느냐, 도둑처럼 왜 밤에 혼자 꺼내 먹느냐고 무서운 얼굴로 다그치기만 할 따름이었다. 마침내 경찰이 한밤중에 땅속에서 음식을 꺼내 먹는 것은 마녀가 하는 짓이라고 몰아붙였을 때 아이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  

 

이야기를 마치려는 순간 내게서 예기치 못한 반응이 일어났다. 미처 발효되지 못한 분노랄까. 슬픔이랄까. 세월이 흘러 이제는 충분히 곰삭아서 가벼운 이야깃거리가 될 줄 알았던 것이 갑자기 번개가 되고 뇌성이 되어 가슴을 후려치는 것이었다. 손이 떨리고, 발이 떨리고, 목이 콱 잠겨오면서 대책 없이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이에게 김치는 엄마였지 않았을까.

집이었고, 사랑이었고, 그리움이었지 않았을까.

이국땅에서 한밤중에 엄마도 없이 땅속에서 혼자 김치를 꺼내 먹을 때 얼마나 외롭고 서러웠을까. 믿었던 친구가 신고를 하고, 경찰이 달려와 마녀로 몰아붙였을 때 세상은 얼마나 큰 벽이었고, 절망이었을까.

가까스로 진정을 하고 뜨거운 밥을 입에 밀어 넣으니 구석에 둔 김치통이 젖은 눈에 들어왔다. 저것 또한 긴 세월 땅속에서 외롭고 힘들었으리라. 갖은양념으로 만신창이가 되어 힘든 세월을 견뎌냈으리라.

   젓가락으로 식탁 위의 묵은지 한 점을 집어 올렸다. 더 할 수 없이 편안하게 곰삭은 묵은지의 깊은 맛이 입안으로 서서히 번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