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세상/좋은수필 6

[좋은수필]귀로 / 김애자

cabin1212 2024. 2. 8. 06:06

 

귀로 / 김애자

 

 

문명이 인간의 영역이라면 자연은 토신土神의 영역이다. 봄이 오고 여름을 건너 가을이 오는 것을 알리는 것도 흙에 뿌리를 둔 생명들이다.

가을이 깊어지면 나뭇잎과 풀들이 흙으로 돌아갈 준비를 서두른다. 대궁이 붉은 기생여뀌도 조용히 땅으로 몸을 눕히었다. 그 옆에서 풍채가 당당하던 은행나무도 가지를 모조리 비웠다. 밖으로 드러나 닳고 닳은 뿌리 언저리로 숱하게 많은 잎과 열매가 떨어져 쌓인다. 그러나 앞으로 다가올 시간을 따라 서서히 흙의 소립자로 돌아갈 것이다. 한 생명이 태어나 자라고 열매 맺는 일로 일생을 바치고 조용히 궁극의 차원으로 돌아가고 있다. 맑고 고요한 입적이다.

가끔 땅거미가 내리는 들녘으로 산책을 나간다. 그럴 양이면 산발치에서 헐렁한 옷가지를 아무렇게나 걸치고 등산모를 삐뚜름히 쓰고 서 있는 허수아비와 만나게 된다. 수수와 조를 심었던 밭주인이 임무 수행을 마친 허수아비를 그냥 내처 둘 모양이다. 허수아비와 어둑한 산 그림자와 빈 들녘, 어슴푸레 좁혀오는 땅거미가 빚어내는 거칠고 성글고 허허로운 풍경은 매번 구슬픈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주관적인 감상일 뿐이다. 허수아비에게 가까이 다가가 보면 허수아비 옷자락이 접힌 곳마다 무당벌레가 추위를 피해 고물고물 깃들어 있음을 보게 된다. 낡은 옷자락에 무슨 온기가 남아 있을까만 그래도 된서리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피신처로 삼고 모여들었을 터이다. 살려고 하는 생명의 본능이 안쓰럽고 가련하다. 방금 구슬픈 정서를 일으키던 나의 여린 감상이 고물거리는 생명체 앞에서 이냥 무색해진다.

생존을 위한 애착처럼 절실한 것은 없을 것이다. 무당벌레가 허수아비 옷자락을 은신처로 삼았듯이 북녘에서 날아온 청둥오리들은 호수 근처 갈대숲에다 보금자리를 마련해 놓고 수시로 물속을 드나든다. 겨울 한철을 보내기 위해 찾아왔으나 머지않아 수면이 얼어붙으면 새들은 또 어디론가 떠나야 할 것이다.

나의 기억 저편에 숨어 있는 아이도 제 둥지에 대한 애착이 집요했다. 6·25전란이 일어난 다음 해 가을이었다. 고모네 집에서 시누이를 시집보낸다는 소식을 보내왔다. 엄마는 여덟 살 먹은 딸을 큰아들 자전거에 태우고 신작로를 따라 큰댁으로 갔다.​ 그곳에 딸을 맡기고 큰엄마와 고모네 혼인잔치에 가기로 미리 약속을 해두었던 것이다. 엄마는 오빠를 앞세우고 기차역으로 떠나기 전에 딸에게 울지 말고 새언니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조근조근 타일렀다. 아이는 신통하게도 새언니 꽁무닐 늘 졸졸 따라다니며 말참견이 잦았다. 새댁도 그러는 시누이가 귀여웠던지 하나로 묶은 머리를 풀어 갈래머리로 따주고, 간식도 챙겨주었다. 그럼에도 해가 질 무렵이 되자 아이는 갑자기 집으로 가고 싶어졌다. 집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들자 가슴이 두근거렸고 울음이 터지려고도 했다. 가만히 대문을 열고 큰집에서 빠져나와 신작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미루나무가 줄지어 선 신작로는 자갈이 많았다. 작은 돌부리도 박혀 있었고, 움푹 파인 곳도 있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가려면 발이 아파도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장한 각오였다. 늦가을 짧은 해가 서쪽 능선으로 꼴깍 넘어가자 노을이 신작로를 환하게 비추었다. 아이는 더 빨리 걸었다. 심자 박동도 따라서 빨라졌다. 어디선가 무서운 짐승이 앞을 가로막을 것도 같았고, 낯모를 사람이 번쩍 안고 가선 서커스단에 팔아버리면 어쩌나 싶기도 했다. 달걀귀신, 뿔 달린 도깨비와 몽달귀신도 머릿속으로 들어와 복작거렸다.

몸집이 유난히 작은 계집아이에게 집으로 돌아가는 시오 리 길은 태어나 처음으로 저 혼자서 넘어야 하는 큰 산이었다. 눈물을 흘려서도 안 되었다. 땅거미는 빠르게 지면서 점차 어둠살이 좁혀들자 아이는 길바닥에서 돌 두 개를 주워 손아귀에 꼭 쥐었다. 그 돌은 자신을 위험으로부터 방어할 때 쓸 절대의 무기였다.

아이는 발가락에 물집이 잡혀 터지는 줄도 몰랐다. 두려움에 떨며 어둠 속을 걸어 집으로 돌아왔으나 어찌된 일로 집은 텅 비어 있었다. 응당 있어야 할 작은오빠는 부재중이었다. 성냥을 찾아 남포 심지에 불을 붙이자 벽에 걸어 놓은 가족사진과 오빠들의 옷가지들이 눈에 들어왔다. 비로소 아이는 날숨을 크게 내쉬고 곧바로 반닫이에 올려놓은 이불을 내렸다. 춥고 배가 고팠지만 전신으로 밀어닥치는 피로를 감당할 수 없었다. 엄마 베개를 끌어안고 혼절하듯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잠에서 깨어난 아이는 여러 날을 된통 앓았다. 큰댁에서 사촌 오라버니가 허둥대며 다녀갔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 늦게 집으로 돌아온 작은오빠는 잠든 동생의 발을 보고 눈물을 삼켰다고 했다.

그 후에 나는 살아오면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닥칠 적이면 신잘고를 걸어가던 그 아이를 생각했다. 오로지 죽지 않으려는 본능에 매달려 발가락에 물집이 잡히고 그 물집이 터져 피와 엉겨 붙는 줄도 모르고 겁에 질려 걸어가던 아이의 절박한 심정을 생각하면, 계획했던 일이 난마처럼 얽히어도 당황하지 않고 일이 순조롭게 풀릴 때까지 진득하게 기다릴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삶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단속하는 일에도 게으름을 부리지 않았고, "과유불급過猶不及"을 운명의 묘로 삼기도 했다.

이마를 스치는 바람결이 차다. 허수아비 옷자락에서 밤을 견딜 작은 벌레들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앞으로 날씨가 추워지면 필경 가사 상태로 겨울을 넘길 것이다. 이래서 겨울나기에 들어간 작은 생명들은 하나같이 가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