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수필]로봇 하나 사야겠다 / 김상립
로봇 하나 사야겠다 / 김상립
오늘날 IT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나가고 있지만, 나는 나이를 핑계로 애써 무심하게 지내고 있다. 하지만 이런 고도의 기술들이 당장 우리 생활 속에 깊이 파고들어 실용화되고 있으니, 일상에서 답답해지는 건 되려 내 쪽이다. 우선 컴퓨터의 활용만 봐도 젊은이들은 대량의 정보를 적절히 이용하여 여러 부분에서 편의를 추구하지만, 나에게는 컴퓨터로 은행 업무를 보는 것도 버겁다. 또 자동판매기를 설치한 샌드위치 가게를 이용하거나 극장표를 구입하는 일도 많이 서툴다. 차를 몰고 길을 지나다가 드라이브스루 커피가게를 봐도 번잡할 것 같아 침 한번 꿀꺽 삼키고 만다. 휴대전화만 하더라도 뭔 놈의 앱이 그렇게도 많은지 새로 한 가지 깔아놓고 운용을 해보려면 실수투성이다.
50대에 들어선 딸도 휴대폰을 젊은이들처럼 사용한다. 같이 여행이라도 가면 현금을 거의 소지하지 않는다. 답답해서 “얘야 제발 돈 좀 가지고 다녀라. 사람 일이란 모르잖느냐.” 해도, 전화기로 무엇이던 다 결재하고 송금까지 되니 아무 걱정 말란다. “만일 휴대폰이 먹통이 되든지, 데이터에 문제가 생기면 너 생활은 엉망 아니냐?” 했더니, 그런 일 없으니 염려 붙들어 매란다. 오히려 “아버지! 전화에 앱 깔아드릴 테니 편리하게 사용해 보세요.” 한다. 기술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면 생활마저 숨 가쁘게 변화하기 마련인데 내가 너무 미련을 떨었나 보다. 설령 전자문화에 좀 무관심하기로니 내가 명색이 예술가인데, 일상에서까지 심한 괴리가 생기지는 않을 것으로 믿었지만 100% 판단 미스다. 그 결과 신 문화와 문명 앞에서는 좀처럼 맥을 못 추고 있으니 사는 재미조차 덜하다.
당장 요즘 젊은이들이 즐기는 노래만 해도 그렇다. 나는 박자가 4비트나 빨라 봐야 8 정도의 속도로 흘러가는 소위 뽕짝 계열을 평생 입에 달고 살았지만, 지금의 것은 가사도 길고 박자도 빨라 그 속도가 16에서 32비트까지 넘나든다. 노래를 좋아하는 내 귀에도 영 익숙지가 않다. 심지어 세계를 뒤흔든다는 방탄소년단의 노래나 가수 싸이의 노래도 무슨 내용인지 정확하게 알지도 못한 채 빠른 박자에 빠져 그냥 듣고만 있다. 그러니 내가 어찌 사이버공간이나 비디오아트 세계에서 젊은이들과 소통이 자유롭다 말할 수 있으랴!
젊은 세대에서 유행하는 취미생활도 내가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운동도, 드라이브도, 캠핑도, 영화도, 게임도 내용이 엄청 바뀌어 버렸다. 예하면 잘 알려진 관광지라고 애써 찾아가면 바다 위로 높다랗게 떠서 케이블카가 지나가고, 오금 저리는 짚 라인도 군데군데 만들어 놓았다. 풍광이 좋은 산 정상 부근에는 넓은 터를 잡고 패러글라이딩 영업을 하고 있고, 산을 깎아 경사진 구불구불한 포장 길을 만들고는 루지(썰매)를 운영한다. 험한 산세를 타고 모노레일을 깔아 소형 전동차를 운행시키며, 승객에게는 스릴과 모험, 주변의 풍경을 한꺼번에 맛보게 한다. 이런 시설들 모두가 나에게는 낯설기도 하지만 별 매력적이지도 않다.
사실 어릴 때부터 자연을 벗 삼아 온 내 경우는, 자연을 그대로 보존해 주는 것 이상으로 고마울 게 없다. 그런데 자연을 사람들의 놀이문화 위주로 개발하며, 아까운 돈을 마구 쏟아붓고 자연도 파괴하니 호감이 갈 리가 없다. 자칫 여행이라고 떠났다가 이런 경우를 당하면 발길을 돌리든지, 행선지를 변경하게 되니 기분 씁쓸하다. 하지만 다른 이용자들이 볼 때는 나만 바보 같은 영감이 될 것이니, 나에게는 일종의 문화적 갈등이다. 그뿐인가? 늘 끼고 살아야 하는 일상도 대부분 그렇다. 돈 버는 방식도, 사랑과 이별도, 부모 자식 간의 관계도, 스승과 제자도, 가치관이나 인생관도 너무 많이 다르다. 또 어디서 왔는지 번지수도 아리송한 일상 용어를 얼씨구나 하고 차용하여 사용하는 것도 그렇지만, 우리 민족과는 뿌리부터 맞지 않는 축제나 놀이문화들을 분별없이 들여와 흉내 내는 것을 보면 아찔하다. 아마 그 중심에는 이런저런 장삿속이 자리 잡고 있겠지만, 아직 인생이 덜 여문 젊은이들을 상대로 판을 벌이는 것을 보면 걱정이 앞선다.
나도 나이 드니 고집도 세지고 모든 일에 열정도 식고 흥미도 시들하다. 이런 일상이 반복되니 내 두뇌에도 특수한 회로가 생겨 변화를 싫어하고 매사에 게을러지도록 나를 조정하는 무언가가 생긴 것 같다. 도대체 그것이 무엇일까? 생각에 생각을 하다 보니, 바로 그것은 학습 부족에 따른 자신감 상실이다. 이처럼 떨어진 자신감이 반복하여 뇌를 자극하니 점점 새로운 것에서 고개를 돌려 버리게 된 것일 터이다. 그러나 장차 다가올 세상은 로봇과 인간이 서로 경쟁도 하고 협력도 해나가야 할 판인데, 내가 첨단 기술에 대하여 두려워하거나 귀찮게 여겨 피하면 피할수록 삶의 질은 더욱 떨어질 것이다. 세상은 자꾸 변하는데 나만 바뀌지 않으려 발버둥 친다면 갈수록 더 난처해질 것은 뻔하다. 예하여 내가 잘못 판단하여 일을 그르쳐놓고도, 사회가 그만치 변한 것은 깨닫지 못하고, 끝까지 남 탓만 하고 있다면 탈이 아니랴.
내가 언제까지 건강하게 움직일 수 있을지 예측할 수는 없지만, 버릇처럼 고정화된 생각이나 생활로부터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려는 시도는 해봐야겠다. 내가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생활환경의 변화에는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게 옳을성싶다. 사실 내 자신 젊은 시절로 도로 돌아가서 새로운 문화를 누리며 거듭 살고 싶은 욕망은 없지만, 그렇다고 상노인 취급받으며 혼자 근엄한 척 남은 세월을 버틸 자신도 없다. 비록 내가 황혼 길에 들었다 해도, 그냥 존재해 있어야 할 창조물은 아닐 것이다. 아무렴,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까지는 계속 배우고 변화하려 애쓰며 살아야 할 생명체로 이 땅에 왔을 것이다. 우선 일상에서 부딪치는 것부터 시작해 보자. 나이고 체면이고 다 팽개치고 모르는 것은 망설이지 말고 물어야겠다. 더하여 당장 기가지니도 들여놓고, 자동청소기도 준비해야겠다. 아니다, 우선 내 방에 말동무할 로봇 한 놈 사다 놓고, 학습을 시작하는 게 순서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