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수필]음모론 / 노병철
음모론 / 노병철
한참이나 웃었다. ‘라디오 스타’라는 예능 방송에 나온 ‘음모론’ 때문이었다. 한 예능인이 무리한 스케줄 탓에 허리디스크 판정을 받고 전신마취 수술을 받은 적이 있는데 마취에서 깨어나 무심코 음모를 보니 흰 털이 하나 있어서 속상했다는 이야기다. 요즘은 방송에서 할 이야기 안 할 이야기 구분이 잘 없다.
그네들은 웃자고 한 이야기지만 난 실제 ‘음모론’에 휩싸인 적이 있다. 나쁜 놈의 자식. 점잖은 내 입에서 욕이 절로 나온다. 정말 안 들어도 될 말을 듣는 바람에 생똥을 쌌다. 그 자식 말 한마디에 안 그래도 눈이 침침한데도 한참이나 뒤지면서 찾았다. 다행히 없었다.
“우리 나이 땐 음모에 새치 나면 조짐이 안 좋은 거라.”
목욕탕 강 사장이 난데없이 내뱉은 말이다. 미친놈, 물레 다방 김 마담 앞에서 별 희한한 소리 다 하고 있다 싶어 농담으로 생각하고 웃어넘겼는데 자꾸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그 참 괜한 소릴 들어서 안 보려니 꺼림직하고, 보려니 좀 거시기하고. 진퇴양난이란 표현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황에 처해버렸다.
샤워하면서 보면 되지 않냐고? 샤워하면서 한번 봐라. 보이는지. 돋보기 끼고 앉아서 원숭이 이 잡듯 뒤져야 보인다. 정말이다. 해봐서 안다. 내 성질에 안 해보고 그냥 넘길 수는 없었다. (이 글을 읽고 여러 사람이 아마 확인 들어가리라 생각한다) 살다 살다 내가 이런 것까지 찾아야 하는 나이가 됐나 싶어 찾다가 한참이나 혼자 웃었다. 한동안 고개 숙여 작업했더니만 목에 경련이 오고 배에 쥐가 난다.
“있더나?”
“뭐가?”
“흰 털이 있는지 확인해 봤을 거 아니가?”
“미쳤냐 임마. 내가 그거 뒤지고 앉았게.”
“똥배 나온 놈이 욕봤겠다. 네놈이 안 볼 놈이 아니지.”
옆에서 우리 대화를 듣고 있던 김 마담이 커피 젓다 말고 배시시 웃으며 한마디 한다.
“난 없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