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세상/좋은수필 6

[좋은수필]꽃 마중 / 임우희

cabin1212 2024. 4. 26. 06:42

꽃 마중 / 임우희

 

 

 

4월이다. 파란 하늘에 목화솜을 풀어놓은 듯 순하게 맑은 날이다. 친구 딸 결혼식에 갔다가 대구 신천의 아름다운 벚꽃을 따라 앞산까지 오게 되었다. 먹거리 골목을 따라 끝없이 핀 벚꽃을 보기 위해 많은 인파가 몰린다. 꽃길 속에 자신을 담기 위해 잠깐 빈 거리에 뛰어들기도 한다. 우린 용기가 나지 않아 바라보기만 했다. 개와 고양이들을 데리고 산책 나온 사람들도 꽤 있다.

인파 속에서 60년대 엄마가 말없이 나를 본다. 색이 바랜 검정 통치마에 흰 저고리를 입었다. 해마다 봄이면 시골 동네 부녀회에서 화전놀이와 꽃놀이를 하러 간다. 당시 엄마는 150호가 넘는 우리 동네에서 젊은 부녀회장이었다. 앞, 뒷집 아주머니들이 같이 도왔다.

안동 하회마을로 놀러 갔던 엄마가 뜻밖의 소식을 가져왔다. 꿈같은 만남이었다. 아버지는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셨다. 6, 25 때 잃어버린 아버지의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일 것 같은 사람을 만났다는 것이다. 할머니는 막냇삼촌을 출산하고 산후병으로 일찍 돌아가셨다. 할아버지도 고통과 슬픔을 견딜 길이 없어 3년도 안 되어 돌아가셨다. 아버지에겐 여동생과 남동생이 셋이었다. 여동생을 잃어버려 평생 한으로 남아있었다. 엄마는 아버지로부터 여동생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었다. 화전놀이에 갔을 때 예천에서 오신 부녀회장과 서로 소개했다. 이름이 늘 듣던 고모와 같아서 엄마는 주소와 이름을 적어 오게 되었다.

 아버지는 며칠 후 삼촌들에게 연락해서 그곳으로 갔다. 아버지와 삼촌들은 확인하지 않아도 누나를 바로 알 수 있었다. 다행히 부잣집에서 잘 키워주시고 교육도 받았다고 했다. 그 집 아들과 혼인하게 되었다고 했다. 여동생에게 아버지는 친정이 엄연히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 했다. 엄마는 고모에게 결혼식 때처럼 혼례복과 혼수 이불 선물 음식을 예를 갖추고 함 가는 것처럼 준비했다. 막냇삼촌이 포드차가 있었는데 거기에 싣고 4형제가 고모 댁으로 갔다. 그 후로 고모와 고모부는 우리 집에 가끔 오시고 고종사촌들도 오고 가게 되었다. 우리 집에서 그날의 기쁨을 나누기 위해 온 가족이 모여 잔칫집이 되었다. 고모님과의 만남으로 부모님 부부의 정이 더 단단하게 된 것 같았다.

부모님의 서로 아끼는 표현은 같았다. 아버지는 남동생들에게 너희 배우자는 너의 엄마 같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엄마는 네 아버지처럼 용기가 있고 성실한 사람 만났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 마음이 그 시대의 속 깊은 사랑이었다는 것을 부모님의 세월을 살아가는 이제야 하얀 그림자가 된다.

 봄에 잠시 피는 벚꽃이지만 이 짧은 순간을 위해 엄동설한을 다 이겨내고 살아있음을 과시하듯 꽃망울을 터뜨린다. 꽃비가 아름다운 하얀 길을 걷는다. 길섶에 빨간 우체통 카페의 진한 커피 향이 추억을 소환해 준다. 밝은 저녁의 연한 저녁놀은 가슴을 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