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세상/좋은수필 6

[좋은수필]글 쓰는 여자 / 박미정

cabin1212 2024. 5. 21. 05:58

글 쓰는 여자 / 박미정

 

 

사람마다 글을 쓸 때 제 나름의 습성이 있다. 소음이 없는 조용한 곳에서만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주위 상황에는 상관없이 아무 곳에서든 글쓰기를 즐기는 사람도 있다. 글을 쓰다가 문맥이 끊어지면 뒷집을 지고 공원 한 바퀴를 산책하는 사람, 약간의 술기운을 빌리는 사람도 보았다. 나 역시 이상한 버릇이 없지 않다. 민망한 얘기지만 글문이 막히면 윗도리를 벗어 던지는 습관이 있다.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언제부턴가 남편에게도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평상시 야한 잠옷을 입었을 때에도 나에게 별 관심이 없던 사람이 컴퓨터 앞에만 앉으면 왔다 갔다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자판기만 두드린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귀찮게 할수록 자판을 두드리는 나의 손은 속도를 더한다. 남편은 내 옆에서 주의를 끌려고 잘 부르지도 못하는 노래를 부르다가 손뼉을 치기도 한다. 이쯤 되면 자판을 두드리는 나의 손도 미친 듯이 널뛰기를 한다.

이상한 일이 아니던가. 내가 거실에서 한가롭게 책을 보기나 TV를 볼 때에는 조용하던 사람이 왜 글만 쓰면 자기와 놀아 달라며 보채는 아이가 되는지 모를 일이다. 두루뭉술한 아줌마라도 컴퓨터 앞에만 앉으면 양귀비로 보이는 것일까. 그에게 왜 그러느냐고 물어도 아무 대답이 없으니 심리학자 프로이트에게 물어 봐야 하나.

시간이 흘러 거실로 나오니 그가 시큰둥하게 TV를 보고 있다. 나는 여느 때처럼 쿠션에 기대며 그의 옆에 슬그머니 앉는다. 입장이 바뀌었다. 조금 전에 난리를 치던 그가 쌀쌀맞다. 그는 나를 거들떠보기는커녕 벌떡 일어나 쌩하게 밖으로 나간다. 나는 황당하여 TV 볼륨만 자꾸 높인다. 자판을 두드릴 때 당당했던 내 모습은 어디로 가고, 비 맞은 낙엽 꼴인가. 그가 나간 현관문만 물끄러미 쳐다보며 생각한다. 그가 신나게 손뼉을 칠 때 손이라도 잡아 줄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