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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아버지의 모자 / 小珍 박기옥

cabin1212 2024. 6. 5. 05:59

아버지의 모자 / 小珍 박기옥

 

 

모자를 보면 돌아가신 친정아버지가 생각난다. 유난히도 모자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집 안 곳곳에 모자가 어지럽게 널려 있어 엄마의 지청구를 들었다.

“모자 가게 차려도 되겠소.”

마침내 구석방 벽 하나를 차지해서 종류별로 차례로 걸어놓기 시작해서는 집안에서도 모자를 쓰고 있는 게 문제가 되었다.

“밥 먹다가 모자는 왜요?”

“감기 기운이 있나 보오.”

“밤에도 쓰고 주무시구려.”

아버지에게 모자는 무엇이었을까. 평소 어떤 상황에도 우기거나 주장하는 법이 없는 무골호인이었다. 창문 하나 여는 것도 엄마한테 물어보고 열던 아버지가 하찮은 모자로 왜 그렇게 엄마의 속을 뒤집었을까.

모자는 흔히 신분 표시용으로 사용하거나 장식용으로 쓰거나 신체 보호용으로 활용한다고들 한다. 그러나 지금은 21세기다. 왕도 없고, 양반도 없으며, 독립운동가도 없으니 신분 표시용은 아니라고 봐야 할 것이다. 장식용으로 보기도 어렵다. 아버지는 영화배우도 아니고, 시인도 아니며, 대머리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신체 보호용이 아니었겠느냐고? 열대지방도, 북극지방에 사는 것도 아닌데 무슨 신체 보호용? 수렵꾼도, 어부도 아닌데 무슨 신체 보호용?

의문은 뜻밖에도 쉽게 풀렸다. 임종을 한 달여 앞두고 명절이 닥쳤을 때였다. 치료도 바닥을 보이는 데다 명절이라 병원에서 집으로 옮기게 되었다. 폐암이었다. 집 안 분위기는 무거웠다. 온 가족이 말은 아꼈지만 저마다 이번이 아버지와 함께 지내는 마지막 명절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타지에 가 있는 자식들도 모두 모였다.

차례상을 보는 중 아버지가 나에게 다락 깊은 곳에서 흑립을 꺼내 오게 했다. 조선 시대 양반들이 의관을 갖출 때 쓰던 검은 갓이다. 아버지의 할아버지 대부터 내려온 물건으로, 검은 옻칠이 희끗희끗 바랜 말총 갓이었다.

10년여 전부터 우리 집은 제사 의례의 간소화로 남자는 양복, 여자는 평상복으로 대체해 오던 터였다. 제사 때 아버지가 갓을 안 쓴 지도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였다. 집안 어른이 남긴 물건이라 차마 버리지 못하고 다락 위 구석 자리에 두었던 것인데 아버지가 그것을 기억해 낸 것이었다.

나는 어렵게 갓을 찾아 아버지에게 건넸다. 볼품없이 헤어지고 낡은 물건이었다. 모처럼 두루마기까지 차려입은 아버지는 오래된 갓을 두 손으로 정중하게 모셔 머리 위에 얹었다. 손자들이 양쪽에서 팔을 잡고 차례상 앞으로 모셨다.

아버지는 깊은숨을 들이쉬고 조상께 절을 올렸으나 일어나지를 못했다. 무릎이 꺾이면서 쓰러지는 바람에 차례는 일제히 눈물바다가 되었다. 엄마가 조용히 아버지에게 다가가 갓을 벗겼다. 아버지가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쓴 모자였다.

장례가 끝나자 화제는 잠시 아버지의 모자로 이어졌다. 제례복 한 번 격식에 맞게 차려입는 것마저 허례허식이라고 생략한 영악한 후손들에게 다락 깊은 곳에서 꺼내 온 흑립은 감동이었다. 그러나 그뿐, 자식들은 금방 일상으로 돌아갔다. 쓸 만한 모자 몇 개만 나누어 갖고 나머지는 폐기 용품으로 분류했다. 유품 정리는 평화적으로 끝났다. 건물도, 주식도 아닌 모자를 나누는 일이라 분쟁 거리가 못 되었다.

누군가가 ‘아버지는 도대체 모자를 왜 그렇게 챙기신 거야?’ 하고 의문을 던졌으나 대답은 없었다. 단지 이상하게도 죽음을 앞두고 두루마기에 낡은 갓까지 쓰고 혼을 바쳐 조상께 절을 올리던 아버지의 마지막 그 모습만은 오래도록 자식들 마음에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