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세상/좋은수필 6

[좋은수필]악수 유감 / 노병철

cabin1212 2024. 7. 1. 06:07

악수 유감 / 노병철

 

 

코로나19로 사람들이 묵례로 인사를 대신하더니 이젠 바이러스가 좀 숙진다고 생각했는지 주먹을 맞댄다. 이 정도 접촉은 괜찮지 않겠느냐는 위안이다. 반갑다고 펄쩍펄쩍 뛰면서 안아줄 날은 아직 묘연하다. 아프리카의 마사이 부족은 서로 침을 뱉는 게 인사인데 요즘도 침 뱉는지가 궁금하다. 뉴질랜드의 마오리족은 손님을 환영하는 표시로 서로 코를 두 번씩 비비는데 아직 비비고 있는지도 궁금하고 중남미 나라에서는 서로 껴안고 키스를 하는데 설마 지금도 하겠나 싶다.

지인이 불쑥 손을 내민다. 악수하자는 것이다. 당황스러웠다. 요즘 악수하는 시절이 아닌데 내미는 손을 거부하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손을 잡긴 했다. 내 생각엔 그분도 반가운 나머지 의도하지 않게 불쑥 손부터 나온 것 같다. 참으로 오랜만에 악수를 한 느낌이다. 같이 있는 자리에서 벌어진 일이라 누군 악수하고 누군 안 하고 할 순 없지 않은가. 그래서 줄줄이 악수를 청했고 다들 멋쩍게나마 악수에 응해주었다. 그런데 그중 한 사람이 장갑을 낀 체 악수를 한다.

어른이 먼저 손 내밀기 전엔 손을 내밀어선 안 된다. 여자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하지 함부로 여자에게 손 내밀지 마라. 어디서 들었는지 기억도 잘 없는 악수 교육을 분명 배웠다. 지금도 여자에게 먼저 불쑥 손을 내밀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리라. 장갑을 끼고 악수하는 일은 없었다. 악수를 청하면 부랴부랴 장갑을 벗고 악수에 응했다. 그렇게 배웠다. 아니 어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고 배웠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인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악수 교육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분명 악수의 고장인 서양 오랑캐의 예절은 아니다.

며느리 담배 피우는데 시아버지가 불붙여주는 씨 상놈들 문화엔 이런 악수 예법이 나올 리가 없다. 서로 빈손을 의미하는 악수는 무장하지 않고 해칠 의사가 없다 만들어졌다지 않는가. 장갑을 끼고 안 끼고는 그렇게 문제 되지 않는 것 같다. 영화에 보면 서양 애들이 악수하려고 부랴부랴 장갑 벗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 그럼 분명 이런 문화는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졌다는 이야기인데 예절에 지극히 민감한 우리네 풍습을 엿보게 만든다. 그런데도 기분이 좀 그렇다. 여긴 나이 한 살 더 먹어도 엄청나게 대우받으려는, 예의를 하늘같이 숭배하는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아닌가.

죽은 북한의 국방위원장이던 김정일과 악수할 때 꼿꼿이 서서 한 손만 내밀고 하는 우리 측 국방장관을 보고 ‘대가 세다’는 찬사를 보낸 것을 보고 악수하는 방법에서도 우린 기(氣) 싸움도 한다는 걸 안다. 두 손 붙들어 악수하면서 머리까지 조아리면 그건 절대 약자의 상징이자 비굴의 표시임은 더 잘 알고. 국회의원들의 악수는 하나 마나 한 악수 임도 우린 안다. 너무 세게 잡아도 안 되고 그렇다고 너무 성의 없이 잡는 것도 결례라고 배웠다.

오랜만에 만나 주먹을 맞대는 것도 나름의 멋은 있다. 팔꿈치를 댄다든가 엉덩이를 부딪치고 발을 들어 서로 치는 행위는 뭔가 과하다는 느낌이다. 특히 친구 간도 아닌 예의를 표하는 자리에서 퍼포먼스 하는 것도 아니고 너무 튀는 인사는 거부감만 더할 뿐이다. 개인적으로는 서양 풍습인 악수보다는 서로 묵례로서 인사하는 예법이 더 나을 것 같은데 언제부터인지 ‘스킨십 문화’가 우리에게 너무 깊이 들어와 있다.

“저런 본배 없는 놈 같으니.”

퇴근길에 만나 가볍게 맥주 한잔하는데 곧 사위 보는 친구가 들어서더니 혼자 중얼중얼한다. 사위 될 애가 집에 놀러 왔기에 반가운 표시로 악수를 청했더니 그 악수가 인사 끝이라는 것이다. 우리 땐 친구 집에 놀러 가서도 어른들에겐 큰절을 올리고 놀았었다. 절 받으려고 소파에도 앉지 않고 기다렸건만 영 절을 할 생각조차 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우린 마치 성균관 학자들처럼 사위 될 친구와 그 아비되는 사돈을 자근자근 안주 삼아 씹어 주었다. 그리곤 집에 와서 애들에게 그 이야기를 해 주었더니 애들이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 한마디 한다.

“아빠, 아니 아부지요. 숨 막히구마. 제발 그만 하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