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세상/좋은수필 6

[좋은수필]봄 / 노연옥

cabin1212 2025. 3. 15. 07:05

봄 / 노연옥

 

 

창밖에 바람이 요란을 떤다. 하얀 가루가 날린다. 눈이 오나? 문을 열었다. 어, 꽃비다. 꽃비, 마당 저 끝의 매화꽃 이파린가. 미처 못 본 덩굴장미도 붉은 입술을 핥으며 기지개를 켜고 있다. 벚꽃은 이미 봄을 울부짖는다. 땅 위엔 깔린 게 쑥이다. 아직도 춥다고 웅크리고 있었는데 머쓱하다. 꽃비를 맞으며 정낭으로 갔지만 한발 들이다 휙 돌아섰다. 컨테이너를 정낭으로 만들어 쓰고 있는데, 봄이 익어가니 정낭 안에서도 봄 잔치가 한창이다. 날파리, 똥파리가 윙윙 외쳐댄다. 엉덩이에 달라붙을까 싶어 걸쳐진 널빤지를 발로 쿵쿵 치면서 다시 안으로 들어선다. 정낭 안은 이미 구더기의 놀이터가 되어 박실박실하게 끓고 있다. 저렇게 설쳐대다 정낭을 어디로 끌고 가겠다. 밑에서만 설쳐대도 그나마 좋을 낀데 널빤지 위로 용케도 올라온다. 벽을 끈처럼 타고 필사적으로 오른다. 오르다 아래로 떨어진 놈들은 대가리를 거꾸로 처박으며 서로 엉키어 맹렬히 싸운다. 올라온 놈들은 기는 건지 구르는 건지 몸뚱이를 뒤틀며 슬리퍼 근처까지 왔다. 이제 막 발 위로 올라탈 기세다. 으악! 엉성하게 바지를 끌어올리며 튀어나왔다. 그렇다고 일을 안 볼 수도 없다. 다시 뒤돌아서 꿈틀거리는 구더기를 밟았다. 탁, 구더기의 내장이 터졌다. 비틀거리게 징그럽다.

갑자기 옛날 일이 눈에 선하다. 친정에는 안채와 바깥채에 화장실이 각각 있다. 어느 날 바깥채 화장실에 들었는데. 기다란 끈이 밑쪽으로 연결된 게 보였다. 끝부분에 커다란 소주 병이 비스듬히 매달려 아가리에는 솔잎이 끼워져 있었다. 병 속으로 스며든 똥물을 아버지의 둘째 딸인 내게 보낸다는 거였다. 그때 나는 허리 통증으로 고생을 하고 있었다. 또, 땅속에 묻어둔 뱀술을 뱀을 꺼내고 내게 보내진 것도 후에 알았다.

구더기를 잡기 위해​ 아니 죽이기 위해 흰 가루약을 뿌렸다. 끄덕도 않는다. 더 잘 논다. 다시 살충제를 뿌렸다. 허옇게 층층으로 나자빠져 있는 구더기, 정말 엄청나다. 빗자루로 쓸어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팔을 뻗쳐 손으로 주워 담을 수도 없다. 아, 이걸 어째, 어쩌지? 휙 스치는 생각.

"그래, 쑥이다."

두어 차례 비가 온 뒤라 쑥쑥 자랐고 향도 더하다. 뜯는 내내 코로 솔솔 향이 들어온다. 봄이 온통 내 것이다. 서너 소쿠리 수북이 눌러 담아 흩치고 잘게도 찢어서 확 뿌려 그들의 잔치에 재를 뿌렸다.

뒤쪽 흙 위에도 얹었다. 지난가을에 옮겨다 심은 국화가 꽃과 잎이 말라비틀어져 볼썽은 사나워도 꼿꼿이 서 있는 걸 보면 뿌리는 살았나 보다. 가을이 오면 국화가 노랗게 정낭을 장식해 줄 것이다. 그때까지 쑥으로 대신하자.

비록 컨테이너 정낭이지만 콧속으로 스며드는 향긋한 냄새. 아, 좋다, 오롯한 혼자만의 시간이 된다. 바람에 몸체를 흔드는 풀들이 싱그러운 풀내를 날린다. 흩어지며 내달리는 바람 소리도 듣는다. 하루할 일들을 순서를 정하기도 한다. 불편한 것이 있다면 컨테이너가 약간 기울어져 앞쪽 문이 잘 닫히지 않는다. 레일바이크가 정낭 근처로 지나가기에 타는 사람들이 마주 보는 쪽으로 달릴 때는 엉거주춤 자세로 어설프게 무릎을 맞붙이며 앞을 가리는 시늉을 한다. 고개도 숙인다. 사실 그들은 저희끼리 신이 나서 노래와 손뼉을 치고 함성을 내질러 봄 속에 빠지느라 시선도 주지 않는다.

​ 마당에는 눈부신 꽃 잔치가, 정낭에는 구더기 잔치가 한창인 봄!

​ 그 봄 속에 나도 끼자. 쑥을 더 뜯어 삶은 물로 세수도 하고 몸도 씻자. 배어든 쑥 향으로 봄을 안고 살지 싶다. 그러자. 그래 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