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내 삶의 원칙 / 신현식

내 삶의 원칙 / 신현식
누구나 삶의 원칙이 있다. 재벌 총수도 거리의 노숙자도 그 나름의 원칙이 있다. 한집에 사는 아내에게도 있을 것이다. 아내의 원칙은 ‘할 일 제때 하는 것, 난전에서 에누리하지 않기’가 분명 있을 것 같다.
‘할 일 제때 하는 것’은 가끔 내가 혼이 나기 때문이다. 형광등을 갈아 달라거나, 의자가 삐걱거리면 손을 봐달라고 한다. 그다지 급박하지 않으면 ‘내일!, 아니면 다음에!’라고 하여 혼이 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또 다른 ‘에누리하지 않기’도 내가 자주 목격하기 때문이다. 관광이나 산행에서 돌아올 때 난전에서 산나물이나 채소를 사는 경우가 있다. 어떤 분은 시골 할머니들이 펴놓은, 얼마 되지도 않은 물건값을 에누리한다. 아내가 그걸 몹시 못마땅해했으니 틀림없이 원칙에 있을 것 같다.
내가 지키는 생활의 원칙은 책임 완수하기다. 이것은 어릴 적부터 몸에 밴 것 같다. 아니 어쩌면 가스라이팅 당했을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동생들 몰래 닭 다리 하나를 손에 쥐여주곤 했다. 그때마다 ‘우리 맏작대기!’ 하며 추어줬지만, 잘못을 저지르면 ‘맏작대기가 그래서야 되겠는냐!’라면서 나무라셨다.
맏이면서 파종손이기도 하여 집안 어른들도 등을 툭툭 두들기며 ‘우리 종손! 우리 종손!’이라고 해 놓으니 그렇게 길든 것 같다. 어릴 적부터 지금껏 집안의 행사나 묘사에 빠지지 않은 것이 그 증표이리라.
몸담고 있는 단체 행사에도 강산이 두 번 바뀌도록 빠진 적이 거의 없다. 부모님 상을 당했을 때, 큰 수술 받았을 때, 외에는 자리를 지켰다. 두어 번, 작은 수술 받을 땐 아예 행사에 참석할 수 있게 날을 잡아 입원했다.
책임감 때문에 미련 곰탱이 소리를 듣기도 했다. 혈압이 변덕을 부려 걸음을 제대로 걷지도 못하면서도 참석을 했다. 그뿐인가. 식은땀을 줄줄 흘리면서도 기어이 할당된 내 몫을 한 후 응급실로 갔던 적도 있다. 의사는 요로결석인데 어떻게 참았느냐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또 다른 나의 원칙은 언행일치이다. 그것은 ‘반칙하지 않기, 바르게 처신하기, 경우에 어긋나지 않기’와도 일맥상통한다.
태생적으로 소심한 편이라 애초에 말과 행동을 따로 할 수 없는 기질의 소유자일지도 모른다. 되도록 반칙하지 않고, 경우에 없는 짓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세상에는 말 따로, 행동 따로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성직자가 성폭행을 하고, 검사, 판사가 부정을 하고,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정치가, 시시각각 말을 바꾸는 지도층 인사, 아무 욕심 없다 해놓고 지푸라기까지 쓸어 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을 볼 때면 분노가 끓어오른다.
화를 내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지키는 또 다른 원칙은 화를 내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부친 때문이다. 부친은 조그마한 일에도 벌컥 화를 내시곤 했다. 자신의 하는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아서 그러셨겠지만 그것이 그렇게도 싫었다. 그래서 나는 절대 화를 내지 않기로 마음 다지며 성장했다.
중학생 시절, 감기 몸살을 앓아 어머니가 용돈을 주며 점심에 따끈한 가락국수를 사 먹으라고 했다. 교내 매점 창구에서 가락국수를 기다리는데, 학교에서 가장 주먹이 센 녀석이 가로채 달아났다. 화를 참을 수 없어 감기 몸살 앓는 몸으로 거품 품고 대들어 응징했던 적이 있다. 생애 단 한 번 화를 누르지 못하고 폭발한 셈이다.
세상이 하수상하여 화를 돋우는 사람들과 자주 만난다. 신문이나 티브이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그런대로 참을 만하다. 하지만 대면할 땐 심한 가슴앓이를 할 수밖에 없다. 참아야 한다는 원칙 때문에 동백 아가씨처럼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날을 참아야 했다.
누구나 삶의 원칙이 있다. 제 나름의 원칙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간다. 내 삶의 원칙은 그리 좋은 것 같지는 않다. 책임을 다하며, 언행일치하고, 그것도 화내지 않고 살기가 참 힘들다.
지금은 생존경쟁이 불을 튀기듯 하는 시대다. 그런 현대 사회에 내 삶의 원칙은 맞지도 않을뿐더러 어긋나도 한참 어긋난 것 같다.
그런데도 한평생 원칙대로, 책임 다하며, 화를 삭이며 살았으니, 병만 잔뜩 얻지 않았나 모르겠다.
수필집 <늙은 소년> 정가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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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지 ; 신현식 010-3909-7939
출판사 ; 나무향 02-458-2815, 010-2337-2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