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수필]떠나보내기 / 한상렬
떠나보내기 / 한상렬
바람이 차다. 해를 보내는 몸부림인가. 거센 바람에 잎사귀가 남김없이 떨어져 버린 나의 작은 뜨락은 지금 황량하기 그지없다.
꽃을 피우던 화단은 며칠 전에 내린 눈이 한파에 숫제 얼어붙어 더욱 썰렁하다. 뜨락 한편 작은 집에 시선이 머문다. 이층으로 오르내리는 계단 아래 제법 커다란 창고가 하나 있다. 예전에는 겨울을 나기 위해 김칫독을 묻어두던 곳이다.
그곳에서 몇 해 동안 주인 행세를 하던 녀석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별리別離의 틈새를 아직 매우지 못해선가. 그와 나눈 애정의 깊이를 헤아린다.
그를 떠올릴 때마다 가슴엔 찬바람이 분다. 그와 나누었던 정분을 하루아침에 떼어버려서이다. 그러기엔 세월의 무게가 하마 커서인지도 모른다. 정녕 정붙이기 힘든 세상에 떼기란 더욱 힘든 일인가 보다. 떠나보내기란 정녕 마음 아픈 일이다.
그가 내게 찾아온 것은 우연이었지 싶다. 공원 자락으로 이사한 며칠 뒤 같은 사무실에 있는 애호가의 손에 끌려 녀석은 아주 다소곳한 모습으로 내게로 왔다. 전력이 화려했다. 몇 대에 걸친 찬란한 가문의 핏줄이 증명이라도 하듯 아주 날렵하고 영악해 보였다. 처음 서먹하던 낯가림도 이내 눈 녹듯 사라지고 어느덧 울안 가족이 되어 날이 가고 또 새날을 맞이했다.
틈나는 대로 산책길에 함께했다. 나는 든든했고, 그의 발걸음도 사뿐했다. 매어 있음에서의 해방감인가. 때로는 그의 엉뚱한 일탈이 당황하게도 하였지만, 내 뜻을 이내 알아채곤 했다. 녀석은 언제나 위풍당당했다. 덩달아 어깨를 으쓱했다. 구태여 목줄을 걸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채어 잘 따라주었다. 행여 길을 벗어나면 그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러면 그도 알았다는 듯 뒤를 따라주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정붙이기는 이렇게 깊어만 갔다. 때론 눈에서 벗어나는 일도 없지 않았지만, 그만 일로 속상해할 필요는 없다고 가볍게 보아 넘겼다. 정이란 주고받는 것이 아니던가. 그래, 나눔은 깊어가고 그가 곁에 없으면 막막해했다.
그새 불어난 녀석의 자식들이 저만한 몸집이 되고, 대를 이어 정을 이어주었다. 그러구러 몇 대에 걸쳐 그는 우리집의 역사와 함께 했지 싶다,
그가 있음은 든든한 방패막이였다. 집안 전체를 아우르며 버티고 서서 누구의 근접도 호락호락 넘기지 않았다. 그는 우리에게 평안을 가져다주는 사자使者와도 흡사했다. 때때로 지어내는 교태가 우람한 체구에 비해 격에 어울리지 않는 듯해도, 내가 동네 어귀에 다다르기도 전에 그는 아는 체를 하기에 바빴다. 그게 정붙이기의 기쁨이지 싶었다. 나 또한 녀석의 기쁨을 사노라 기호 식품을 챙기는 일에도 한몫을 거들곤 했다.
전대前代의 어미가 집을 뛰어나가 고적한 공원 자락에 때아닌 풍파를 가져온 일도 있었지만, 그는 자랑스런 가족의 명예를 잘 지켜주었다. 한때의 외출이 내게 파출소를 왕래하며 과태료를 물게 한 기막힌 사연을 남겨 놓기도 하였건만, 그건 어쩌면 녀석보다 주인의 잘못이 컸음이 아니던가. 몸집만큼이나 우람한 목소리는 온 동네를 주름잡았다. 행여 이웃집에 이상한 기척이라도 있으면 지체 없이 동족 모두를 잠에서 깨어나게 하였다. 그러다 보면 때론 지나칠 때가 없지 않았다. 시도 없이 고적한 시간을 빼앗아가는 녀석으로 인해 이웃에 미안함을 더하게 하는 일도 때론 불편함이지 싶었다.
뿐인가. 어쩌다 그는 넘겨준 기호 식품을 행여 빼앗길세라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기도 했다. 제 주제를 파악하지 못하고 그렇게 눈치 없이 행악을 부리는 날에는 본의 아니게 발길질 세례를 받기도 했다. 저를 위해危害한 일이 없음에도, 적반하장으로 이를 갈고 덤벼드니 어찌하랴. 세상천지에 제 분수를 지키지 못하는 성깔을 무조건하고 받아들일 자가 어디 있으랴. 일이 이 지경이 되고 보면 필시 측은지심에 불을 지피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도 못할 노릇이 아니던가. 봄부터 시작한 털갈이는 여름이 다 가도록 험한 꼴을 보였고, 행여 사람이라도 해할까 저어하여 매어두었으니 그 뒷처리 또한 만만한 게 아니었다.
이러구러 그와의 인연이 깊어갔음에도 애초 마음먹었던 약속들이 이따금 파기 직적으로 몰고 갔으니 이를 어이하랴. 끝내 그를 떠나보내기로 작심하였다. 그러나 그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 참으로 이상한 일은 그리 작정하고 난 뒤로 그에 대한 애정이 점차 식어 가는 것이었다. 영악한 인간의 심리였다. 이후로 그를 본 체 만 체하기 시작하게 되었다. '어차피 천년만년 함께 살 놈이 아닌 바에야….'
그런 심리적 변화였던가. 언제는 함께 하지 않으면 못 살 듯싶더니, 시속時俗에 앞장서는 내가 부끄럽기도 하였지만 어쩌랴.
사랑이란 어차피 상대적이 아니던가. 그가 있어 자랑스러울지라도 행여 작은 일로 행악을 저지르거나, 제 몫을 다하기보다는 위세를 부리는 행동거지를 보인다면, 있음보다 없음이 낫지 싶었다.
만남과 스침, 이를 불가에 이르길 "회자정리會者定離요, 거자필반去者必反"이라 했다. 만남과 스침이 찰나의 일이 아님에 그를 떠나보내기 위한 마음의 준비가 어디 용이하랴. 마음은 있어도 실행에 옮기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어차피 떠나보내야 할 자라면 단칼에 베어야 한다고 작정했다. 아, 그러나 그날 그가 가지 않으려 발버둥하던 모습은 차마 보지 못할 일이었다. 인간의 수심獸心과 다른 게 무엇이던가. 내 비로소 수심과 다를 바 없지 않던가.
그가 나에게로 오고, 나에게서 만남과 스침의 인연을 끊고 사라졌다. 그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내 의지가 그를 보내려 했다. 비록 그가 말 못 하는 짐승이라 하지만,
어찌 만사가 이에만 해당하랴.
선표와 장의의 우화가 떠올랐다. 노나라의 선표는 바위 굴에 숨어 물이나 마시며 살았을 뿐 세속적인 이익을 추구하지 않았다. 그의 얼굴빛은 어린애처럼 맑았다. 그러나 굶주린 호랑이를 만나 잡아먹히고 말았다. 그와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장의라는 사내가 있었다. 장의는 부잣집이건 가난한 집이건 쫓아다니며 남을 도와주었다. 그러나 너무도 몸을 돌보지 않았기 때문에 열병에 걸려 나이 마흔에 죽고 말았다.
그렇다. 속마음을 잘 닦고 길러야 하지만 바깥에 대해서도 잘 알고 알맞게 움직여야 한다는 깨우침이지 싶다. 너무 안으로만 치우치거나, 밖으로 치달리면 어디선가 무리가 생겨 균형이 깨어지지 않으랴 싶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만남과 스침은 익명의 타자에 지나지 않는다. '너'를 만날 때에 나는 권태로부터 완벽하게 탈출한다. 그러므로 '너'를 만난다는 것은 나에게 새로운 하나의 세계 안으로 들어서는 경이로운 체험이 된다. 마르틴 부버였던가. 그는 나와 너에 대하여 "그대와 세계 사이에는 서로를 주는 상호성이 있다. 그대는 그 세계를 너라고 부르며 그대를 그 세계에 준다. 그 세계는 그대를 향해 너라고 부르며 자신을 그대에게 준다. 그 세계에 대하여 그대는 다른 사람들과 이해를 같이할 수가 없다. 그대만이 홀로 그 세계와 함께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만남과 스침이 독백에 불과하다면 어찌하랴. 그래, 그때 우리는 그를 떠나보낼 수밖에 없지 않으랴.
다시금 뜨락에 선다. 시선이 절로 그의 집 앞에 머문다. 시간이 지나니 그때의 회오도 물거품이 되었나. 시간 속에 사그라져 가는 그의 모습을 떠올린다. 떠나보내기는 인내와 각오가 필요하다. 정분을 떼기가 어찌 쉬운 일이더냐. 하지만 세상은 떠나보내고 새로이 맞이하는 시간의 연속이 아니던가. 봄이 오면 새로운 주인을 맞이해야 할 성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