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수필]한국인들은 모두 가수 / 홍세화
한국인들은 모두 가수 / 홍세화
프랑스 인들에게 한국인들은 모두 가수다. 한국인들의 노래 실력에 그들은 찬탄하여 마지않는다. 그래서 정말 가수가 아니냐고 묻고, 아니라면 정색을 하고 가수가 되라고 권하기도 한다. 꽤 오래 전의 일인데 나도 프랑스 시골의 어느 모임에서 한 차례 노래를 불렀다가 그런 소리를 들었다. 나 같은 사람이 그런 소릴 들었으니 한국사람 모두가 가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나에게는 마이크를 한 번 붙잡으면 놓으려 하지 않았던 몇몇 친구들이 있었다. 그 중에는 별로 노래를 못하는 친구도 있어서 내 귀를 괴롭히기도 했는데 그 친구들도 그립고 그 노래들 또한 그립다. 실제로 한국인들의 노래 실력은 세계에서 단연 으뜸이 아닐까 싶다. 감정도 풍부하고 가창력도 뛰어나다. 그런데 요즈음 한국 젊은이들이 부르는 노래를 듣자면 도무지 가사를 알아들을 수가 없다. 한참 동안 한국말인지 딴 나라말인지 분간을 못한 경우도 있었고, 노랫가락도 국적 불명으로 느껴졌다. 내가 구세대가 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어려운 일이었다.
프랑스 인들은 샹송을 즐겨 듣긴 하지만 노래를 직접 불러 보라고 할라치면 모두 백 리 밖으로 도망친다. 거의 모두 단 한 곡의 노래도 제대로 부르지 못하는, 말하자면 자신의 애창곡조차 없는 불쌍한 사람들이다. 라마르세예즈(프랑스 국가)를 부를 때도 거의 모두 우물우물 거린다. 그래서 각종 연회석상이나 회합 장소에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전혀 볼 수가 없다. 온통 토론을 벌이거나 수다를 떤다.
실제로 프랑스의 웬만한 가수들은 본토 출신이 아니다. 이브 몽탕(이탈리아), 앙리코 마시아스(알제리), 파트릭 브뤼엘(유태인), 파트리시아 카스(독일계), 자크 브렐(벨기에), 조르쥬 무스타키(그리스) 등 외국 출신이 주를 이룬다. 샹송 부분에서도 "남의 능력을 문화화"하는 면모를 보여 준다. 즉, 샹송에도 프랑스 인보다 프랑스 사회를 중요시한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1998년 프랑스 아비뇽에서 거행되는 축제 때 특별 프로그램으로 "한국 주간"이 있었는데 꽤 좋은 반응을 얻었다. <르 몽드>는 한국 주간을 소개하는 글의 첫마디를 "노래와 춤의 나라, 코레"라고 썼다. <르 몽드>의 말이 아니더라도, 우리들에겐 분명히 타고난 재능이 있다. 그것을 어떻게 살리는가가 중요하다. 판소리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우리만이 갖고 있는 자랑거리이다. 예술성도 뛰어나다.
그런데 우리는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를 제쳐두고 "라 보엠"이나 "나비 부인"부터 듣도록 교육을 받았다. 우리 것을 대하는 눈은 우리 자신을 보는 눈과 같다. 곧 우리 자신을 소홀히 해 왔다는 얘기가 된다. 그리하여 판소리를 훌륭한 창극으로 발전시키지 못한 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 중의 하나이다. 우리 모두 신데렐라의 이야기를 알고 있는데, 그렇다면 역으로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춘향가와 심청가의 이야기를 알도록 노력해야 되는 게 아닐까. 그리하여 세계 방방곡곡에서 예컨대, 안숙선의 열창에 넋을 잃고 "좋다!", "얼쑤!"하는 추임새 소리가 들리도록 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 노력이 올바른 세계화의 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