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수필]아름다운 배려 / 정목일
아름다운 배려 / 정목일
ㅎ씨는 마산 교도소의 교화위원으로 교도소 교회에 나가 찬송가를 불러주고, 재소자들을 상담해 주는 일을 20년 넘게 해오고 있다. 몇 번의 전과가 있는 중죄인을 대상으로 상담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알고 보니 ㅎ씨는 마산 교도소 재소자들의 애인이었고 누이였으며 어머니였다.
모난 데라고는 한 곳도 없이 큰 바위가 파도에 깎여 둥글둥글한 몽돌이 된 것처럼 부드럽고 온유했다. 자존, 과시, 탐욕, 시기, 질투, 이기, 자만…. 이런 모서리를 스스로 깎아 마음을 둥글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살아오면서 얻은 패배, 좌절, 고통, 한탄 비애를 겪으며 참회와 깨달음을 통해서였다고 했다.
남편에게 버림받고 팽개쳐졌을 때, 죽음을 생각하기도 했지만, 어느 목사님의 권고로 교도소 교회에 나가 재소자들을 위해 찬송가를 독창한 것이 교도소와 인연을 맺게 된 동기였다.
ㅎ씨는 상담하면서 충고라든지 조언 같은 것은 한마디로 하지 않았다. 마음을 편안히 만들어 무슨 말이든지 말머리를 꺼내게 하고, 재소자가 울면 같이 울고, 기뻐하면 같이 기뻐하면서 상대방의 얘기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애인이나 어머니처럼 들어줄 뿐이었다.
자신은 말하지 않고 남의 얘기를 내 일처럼 귀담아 들어주는데 상담의 비법이 있었다. 어떤 결론을 내리는 법도 없었다. 재소자들은 자신의 인생 역정을 들어주는 것만으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반성과 참회의 눈물을 보이는 것이었다.
인생 교훈이나 잘못을 지적하는 일은 불필요한 일이었다. 몇 시간이라도 울분과 통한의 가슴을, 참회의 뜨거운 눈물을 보면서 함께 울며 포근히 껴안아 주는 부드러운 품이 필요했다.
ㅎ씨는 온유하고 진지했다. 진실하고 눈물이 많았으므로 말없이 마음을 포옹했다. 15년간이나 재소자들을 위해 찬송가를 독창했는데, 이때만은 하느님이 특별히 은총의 목소리를 주셔서 높고 고운 소리가 자신도 몰래 가슴속에서 솟아오른다고 했다. ㅎ씨로 인해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나도 선교 위원이 되어서 교도소 재소자들을 위한 봉사사업에 마음을 보태고 있다.
어느 날 저녁, 오래 간만에 ㅎ씨를 만나서 얘기하던 중에 눈에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까닭을 물어 보았다. 아침에 ㅍ장로가 별세하셨다는 것이다. 그는 82세로서 마산 교도소 내 결핵환자 재소자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해 오신 분이셨다. 환자들의 약겂, 무연고 재소자들의 옷과 음식 차입, 퇴소 후의 자활을 위한 준비, 직업 알선과 갈 곳 없는 사람들의 뒷바리지 등을 맡아 왔다.
노쇠하여 활동이 여의치 않자, 후계자로 ㅎ씨를 끌어들여 봉사활동 등을 함께 해왔기에 너무나 절친한 사이였다. 어느 재소자를 선교하여 신학대학까지 마치게 했고, 개척교회를 세워서 입당예배를 올리게 되어, 두 사람은 기쁜 마음으로 함께 참석하기로 약속했었다.
ㅍ장로가 아침 10시경에 ㅎ씨 집에 오면 교회로 가기로 돼 있었다. 1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아 궁금해 있던 참이었다. 전화가 왔고 ㅍ장로의 아들이라는 말에 가슴이 쿵 내려앉는 듯했다. 아들에게선 한 번도 전화를 받은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침에 ㅍ장로가 별세하셨다는 비보였다.
4년 전에 부인이 타계한 후, 한 달에 두세 번, 그는 ㅎ씨 댁을 방문했다. 30세쯤 연하의 ㅎ씨를 누이, 애인, 어머니 같은 심정으로 좋아했던 노인이었다. ㅎ씨를 만나러 오는 날엔 손가방에 사과, 배 바나나, 과자, 감 등을 잔뜩 사 가지고 어기적어기적 걸어오시는 모습은 행복감에 충만해 있었다.
ㅎ씨는 노인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 친절하게 맞아들이고, 사 온 음식은 보는 앞에서 소리 내어 “맛있다! 너무 맛있다!”고 감탄하며 먹어댔다. 그러면 노인의 얼굴 만면에 웃음이 가득 차오르며 “그래요? 많이 드세요.” 하고 행복해 하였다.
노인의 얼굴에 수심과 외로움이 서려 있으면 ㅎ씨는 일부러 앞에서 엉덩이를 흔들어 보이며 “장로님, 제 몸매가 어때요?” 재롱을 부리며 물었다. 노인은 수줍은 듯 손으로 입을 막으며 “그만 됐어요, 그만 됐어요.” 자신을 위로하는 줄 알아차리고 소리 내어 웃는다는 것이었다. 노인은 아이와 같이 토라지기도 해서 ㅎ씨는 “뭘 그러세요. 제가 안아 드릴게요.” 하고 살포시 포옹해 주면 그만 풀리고 만다고 했다.
집 안으로 들어오려면 돌계단이 있어서 노인이 오르기엔 숨이 찼다. 얼마 전에 양쪽으로 굵은 동아줄을 매 놓아 손으로 잡고 오를 수 있도록 해 놓았다고 했다.
“이제 그런 사랑을 어떻게 받을 수 있을까요? 좀 더 그분에게 잘 해드릴 수가 있었는데…. 외로웠을 때 뽀뽀도 해 드릴 수 있었는데, 전 사랑을 베풀 줄도 모르는 너무나 인색한 사람이었어요.”
ㅎ씨는 울먹이고 있었다.
“그분은 천국에 갔어도 ㅎ씨의 사랑에 감사하고 있을 거요. 노인의 외로움과 고독을 포근히 감싸준 고결한 사랑에 나도 감사드리고 싶소.”
ㅎ씨는 비로소 안도의 빛을 띠며 눈물을 닦아 내었다.
나는 사랑을 받으려고만 했지, 마음을 열어 베풀지 못했으며, 남의 얘기를 들으려는 것보다 내 얘기만 하려 했던 이기주의자가 아니었던가. 살아가면서 서로 간의 아름다운 배려는 인생의 꽃향기가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