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세상/좋은수필 4

[좋은수필]나의 어머니 / 전영택

cabin1212 2018. 7. 11. 05:53

나의 어머니 / 전영택

 

 

 

어머니.”

하는 이 말은 얼마나 우리 인간에게 부드럽고 따뜻한 감명을 주는 것인가?

뱃속에 있었던 것은 그만두고라도, 세상에 떨어진 뒤로부터 사람이 가장 깊은 인연을 가진 이는 어머니다.

아무리 몹시 다쳐서 울다가도, 아무리 심술이 나서 몸부림을 치다가도, 어머니 품에 안기어 어머니 젖을 빨게 되면 울음도 멎고, 아기는 어머니의 품에서 낙원을 발견한다.

어머니는 어린것의 피난처요, 호소처요, 선생이요, 동무요, 간호부요, 인력거·자동차·기차 대신이요, 모든 것이다. 밥 주고, 물 주고, 옷 주고, 버선 주고, 사랑 주고, 참외 주고, 떡 주고, 누룽갱이 긁어두었다 주고, 놀다가 들어오면 과자 주고, 동네 잔칫집에 가서 가져온 빈대떡(평양말로 지짐) 주고모든 것을 어머니가 준다.

어머니는 사랑한다.

인간은 사랑으로 산다. 어린이는 물론이다.

어머니는 아들을, 딸을 사랑한다. 오직 사랑할 따름이다. 백이면 구십구까지 어머니는 사랑하고 해가린다. 책망하고 때리는 어머니가 백에 하나, 혹 천에 하나 있을는지 모르거니와 대개는 그저 사랑한다.

사람이 사랑으로 산다면, 사랑은 어머니로 산다.

어머니가 없으면, 아무리 잘 먹고 잘 먹여도 살이 못 찌고, 기운이 없고, 활기가 없고, 병이 잘 난다. 이것은 다 경험한 이들의 말이다.

아이들은 그 부드럽고 따뜻한 어머니 손맛, 손맛 기운에 산다. 인간은 어머니의 사랑이란 젖을 먹고 산다.

나는 사십이 넘은 지금도 어머니가 옆에 계시면 좋고, 어머니가 손으로 내 머리를 슬슬 만져주시면 말할 수 없는 행복을 느낀다.

 

내 어머니는 지금 살아 계신다. 그러나 돌아가실 날이 멀지 아니한 것이 애닯다. 병객(病客)의 몸이 칠순이 넘었으니, 지금 살아 계신 것이 기적이니까. 다산(多産)에 지병인 천식, 위병, 가슴앓이에 날마다 하루 건너 시달리는 몸으로 칠십이 넘으시도록 앉아 계신 것이 기적이다.

나는 환갑을 못 넘겨, 환갑을 못 넘겨.”

하시더니, 이제 환갑 후 10년을 훨씬 더 사신 것은 뜻하지 못한 일이다.

내 어머니에게는 지금 가시는 일밖에 없다.

시골 맏아들의 집에 계시다가 한 달 전에 올라오셨다. 그 동안 관절염으로 여러 날 앓으시고, 이 봄에 겨우 일어나서 조금 기운 차리시니까, 또 마음은 여전하셔서 서울 아들들, 존수들이 보고 싶다고 700여리 길을 올라오셨다. 오시기는 오셨지만 아들네 집 딸네 집이 모두 객지 같고, 마치 여관에 들어 계신 것 같은 모양이다. 더구나 집을 한곳에 두고 다니시지 못해서 마음의 안정을 못하시는 모양이다. 그래서 늘 시골집 말씀만 하신다.

그 집에는 물론 이부자리와 옷가지도 있지만, 어머니의 소유물의 거의 전부가 있다. 깨어진 구식 거울, 영감님 사진, 귀주머니, 비단 헝곂 댄 쌈지, 외손녀에게 얻은 곽, 불돌, 그리고 옥수수 속, 이런 것들이다. 그런 것을 큰 보물이나 되는 듯이 간수하시는 것을 볼 때 내 마음은 처량해진다. 예전에는 큰집 살림과 모든 세간이 다 당신의 것으로 마음대로 쓰시던 것이련만, 이제는 작은 싸리고리짝 속에 든 것이 당신의 가장 귀한 물건의 전부라는 것을 생각하니 처량해진다.

그 보다도 처량한 것이 있다. 당신에게는 세상에 내 집이 없는 것이다. 맏아들의 집도 내 집은 아니고, 작은아들의 집에 와도 내 집은 아니요, 딸네 집에 가도 거기도 내 집은 아니다. 이제 세상에는 당신의 집이 없다. 아들네 집이요, 딸네 집이지, 내 집은 아니다.

여기가 내 집이다.’ 하는 생각이 없으신 모양이다. 아들 딸 며느리의 잘못도 있고, 여러 가지 그럴 사정도 있지만, 오래 병에 시달리신 몸이라 몹시 신경질이어서 참을성이 부족하시고, 다 마음에 맞지 않으신 모양이다.

도대체, 몸으로는 벌써 거의 가시게 되고 마음도 한 절반 가시고, 말하자면 얼마 동안 가실 날짜를 연기해서 마치 주막에 머물러 계시는 것 같다. 지금 어머니에게는 한 나그네요, 주막 같으신 셈이다.

모기란 놈이 고약하지요. 뼈에 가죽만 남은 몸때기를 물어! 이 귀한 살을!”

하시면서 옷을 벗고 물린 자리를 내놓으실 때에는, 정말 앙상하게 뼈만 남은 그 팔과 가슴을 보고 나는 무심히 얼굴을 돌리게 된다.

나는 이제 오래지 아니해서, 다시는 어머니!’ 하고 불러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 이런 말도 못 듣게 될 것이다.

일전에는 내가 칼로 나무를 턱턱 깎고 있는데, 어머니께서 보시고,

, 다칠라, 손 다칠라.”

하시더니, 혼자 웃으시면서,

나는 네가 상기도 어린애만 같구나.”

하시는 말씀을 듣고, 아직도 나는 어머니가 계신 아이로구나. 그러나 며칠 못 되어, ‘어미 없는 자식이 되겠구나. 이제 어머니!’ 하고 불러보지 못하겠구나. ‘, 이런 말도 못 들어보겠구나. 어머니의 손으로 머리를 어루만져주는 행복을 느낄 수도 없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였다.

그러면서도 어머니를 생각하고 어머니를 기쁘게 할 성의는 부족하니, 내 일을 스스로 알 수 없다.

 

 

전영택(1894-1968) 소설가 소설집 화수분’ ‘하늘을 바라보는 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