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수필]풍선에 그린 그림 / 조이섭
풍선에 그린 그림 / 조이섭
세 살 난 손자 녀석이 신이 나는가 보다. 난전에서 산 풍선을 손에 쥐고는 신발에 흙 묻을 새가 없다.
운동장에서는 운동회가 한창이다. 청군 백군으로 나뉜 아이들이 고개를 한껏 젖히고 모래주머니로 하늘에다 팔매질을 한다. 이윽고 파란 박이 터지고 이어서 하얀 박도 입을 벌린다. 박안에 웅크리고 있던 오색 풍선이 하늘 높이 올라간다. 아이들의 함성도 파랗게 날아간다.
아이는 집에 와서도 풍선 묶은 실을 팔목에 감은 채 나비잠을 자고 있다. 꿈을 꾸는지 입꼬리가 방긋방긋한다. 파란 풍선에 그린 빨간 꽃 그림이 선명하다. 풍선이 터지면 놀랄까 봐 며느리가 풍선 장수에게 바람을 조금만 넣어 달라고 한 모양이다. 손자 녀석이 잠든 사이에 풍선이 시나브로 작아지더니 바닥에 내려앉는다.
풍선 하나에서도 인생의 단면을 읽을 수 있다. 풍선이 부풀어 오르면 풍선에 그린 그림은 점점 희미해진다. 나이가 들어 먹고 살기에 급급해지면 어릴 적 순수함과 꿈을 잃어버리는 대신 욕망이 커진다. 욕망에 물들어 풍선을 크게 불 줄만 알고 멈출 줄 모르면 마침내 터져버린다. 욕심이 과한 결과다. 자기의 분수에 따라 알맞게 불고 난 다음에는 적당할 때 멈추어야 한다. 자칫하면 선의로 시작한 일도 잘못되기 십상이다. 바람을 넣을 때와 풍선 주둥이를 묶을 때를 잘 알아야 한다.
가까운 친구가 일류 대학 토목공학과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들어갔다. 그곳에서의 경험과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토목공사를 주로 하는 회사를 설립하여 승승장구했다. 회사가 어느 정도 기반을 잡자, 어릴 때부터 꿈꾸었던 노사가 하나인 회사를 만들기 위해 직원들의 복지와 대우에 유별난 힘을 기울였다. 이윤 대부분을 직원들과 나누었다.
그러다 IMF를 만났다. 그동안 친구가 기울였던 배려를 잘 아는 직원들은 월급까지 반납하고 악착같이 버텼지만, 밖에서 불어온 태풍을 뜨거운 입김만으로는 당할 수 없어 눈물을 머금고 폐업하고 말았다. 친구는 살고 있던 집마저 처분하고 아직도 시집간 딸에게 얹혀살고 있다.
풍선이 커지면 그림이 희미해지기 때문에 한꺼번에 그리면 안 된다. 그럴 때는 덧칠을 해야 한다. 친구는 노사가 함께 잘 살아야 한다는 이상(理想)을 너무 일찍 크게 그렸기 때문에 그만 터지고 말았다. 어려울 때를 대비해서 풍선을 조금만 작게 부는 지혜를 발휘했더라면 사랑하는 직원들을 떠나보내지도 않고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반면에, 터지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감 때문에 처음부터 바람을 너무 적게 불어 넣으면 풍선의 크기가 보잘것없고 물렁물렁해진다. 자신감이 없거나 추진력이 부족해도 마찬가지다. 너무 일찍 자족해 버려도 자신의 능력을 모두 다 발휘할 수 없게 된다.
나는 인생의 그림을 너무 늦게 그렸다. 스무 살이 넘어서야 장래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그림을 웅장하게 그릴 깜냥도 아니어서 직물공장의 울타리를 벗어날 궁리에 그치고 말았다. 언젠가 아버지께 가족 중 누구라도 조금 일찍 진로를 지도해 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털어놓았더니 이렇게 되물으셨다.
“니는 우리 집에서 제일 많이 배웠는데, 니가 알아서 해야지. 누가 가르쳐 준단 말이고?”
아버지는 그저 남에게 해 안 입히고 부지런하면 먹고 살 수 있으려니 여기셨다. 당신의 막내아들이 스스로 잘 헤쳐나가리라 믿고, 마음으로 응원하는 것이 전부였을 것이다.
잠든 손자의 손을 가만히 잡아 본다. 이 아이는 장래 뭘 하고 먹고 살까? 미래는 알파고 같은 인공지능이 지배할 것이라고 한다. 10년 이내에 사라질 직업이 태반이 넘지만, 어떤 일자리가 새로 만들어질지는 아직도 안갯속이다. 이제는 어른들이 무슨 일을 하라고 특별히 정하지 못하는 세태이다. 마음 쓰고 애태워본 들 내 아버지가 나에게 한 것처럼 ‘착하고 부지런하게 살아라.’라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사랑하는 손자의 장래에 대해 바람마저 없으랴.
네가 즐겨하는 일을 하면서 생활도 풍족했으면 좋겠다. 그 일이 이웃에 도움이 되고 보람을 느낄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다. 가능하면 그 일을 일찍 찾아 풍선에다 네 꿈과 목표를 굵고 뚜렷하게 그려라. 그림이 희미해지면 덧칠을 해 가면서 열정과 패기로 풍선을 키워 나가거라. 적당한 때에 내려놓을 줄 아는 지혜를 갖추면 더 바랄 게 없다.
아이가 자다 말고 뒤척인다. 배꼽이 드러난 옷매무시를 가다듬다가 문득 손자의 커다란 풍선이 하늘 높이 오르는 것을 보지 못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거실 창 너머로 산등성이에 걸린 뭉게구름이 흐릿하게 다가온다. 자기는 제대로 한 것도 없으면서 손자더러 다 하라고 덤터기나 씌우는 할아버지를 벌주려고 눈에 티끌이 들어갔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