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수필]문간방 유 씨 / 류영택
문간방 유 씨 / 류영택
이집사람들은 상대를 부를 때 '이 씨․김 씨'라 부른다. 더 웃음 짓게 하는 건 이집에서는 여자들의 성(姓)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편이 '박 씨'면 그의 아내도 당연히 '박 씨 아주머니'로 불린다. 다른 집처럼 아무개 아빠 아니면 '이 형․김 형'이라 부르면 좋을 텐데. 막노동판에서나 쓰는 '씨'자를 굳이 성 뒤에 붙이는 것은 이집 나름의 분위기 때문이다. 다들 고만고만한 나이에다 도토리 키 재기하듯, 하는 일도 살림살이도 하나같이 거기서 거기다보니 상하 관계가 아닌 수평적 관계. 일테면 기선제압을 당하지 않으려면 내 쪽에서 먼저 선수쳐야한다. 상대를 견제하려고 쓰는 말이다.
그럼 내게도 그냥 '유 씨'라 불러주면 좋겠는데 그렇지가 않다. 나를 부를 때는 앞자리에 꼭 문간방이란 말을 깔고. '문간방 유 씨'라 부른다. 개운치는 않지만 거기까지는 그런대로 참아 넘길만하다. 문제는 코흘리개 아이들까지 문간방 유 씨 아저씨라 부른다는 것이다. 그럴 때면 참으로 난감하고 기가 찬다. 마음 같아서는 머리통을 '쿡' 쥐어박고 싶다.
어른도 문간방 아이들도 문간방, 문간방에 사니 문간방 유 씨라 부르는 것을 뭐라 나무랄 수도 없지만. 어쩌다 내 팔자가 이렇게 됐나! 곰곰이 따져보면 자업자득 내 스스로 자초한 일이기도하다. 처음부터 버릇을 잘못 들인 탓이다.
물론 대문과 가까운 문간방에 세든 게 근본 원인이겠지만, 문간방에 산다고 문을 열어주라는 법은 없다.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던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생각하고 가만히 자리보존하고 있으면 될 텐데. 태무심하게 넘길 만큼 나는 약지를 못했다.
처음에는 그랬다. 내가 대문을 열어주면 사람들은 괜히 미안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문을 열어주는 것도 마음 한구석 사람들의 그 모습에 신이나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언젠가부터 그 말을 들을 수가 없었다. 고맙다는 인사는커녕 내가 문을 열어주는 것을 당연시 여기는 것 같았다. 이건 아닌데! 문뜩 그런 생각이 들자 이젠 대문을 열어달라는 초인종소리가 ‘이리 오너라.’ 사대부집 문짝을 두드리는 문고리소리처럼 들렸고, 그 소리에 서둘러 빗장을 끌러주는 나 자신이 마치 수청방(守廳房)에 얹혀사는 청지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놀라운 건 이런 생각들이 나 혼자만의 지레짐작이 아니라 이집사람들의 잠재의식에도. 문간방 유 씨는 문지기로 고착화 돼 있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미 때늦은 후회였다.
이집사람들은 초인종을 누르고 대문을 걷어차도 대문 담당은 문간방 유 씨라 생각하고 꿈쩍도 않는다. 나는 그럴수록 자리를 보존한 채 누가 이기나 심리전에 들어가지만 얼마 버티지 못하고 두 손을 들고 만다.
초인종 소리가 들린다. 무시하고 싶지만 결과는 뻔하다. 얼마 못가 대문을 열어줄 것이라는 것을 내 스스로를 잘 안다. 앓느니 죽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나는 외풍이 파고들세라 동굴처럼 뻥 뚫린 이불 구멍을 틀어막는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아내는 곱지 않은 시선으로 흘겨본다.
대문을 열어주고. 찬 공기를 몰고 방을 들어서자 아내는 기어이 한마디를 한다.
"인내심이 그렇게 없어서야……. 다시는 대문 열어주지 마세요!" 문간방에 산다고 우리를 깔보고 그런다며 화를 낸다. 이럴 때는 대꾸 않는 게 상책이다. 뭐라고 변명이라도 하는 날에는 긴긴밤을 부부싸움으로 지새야 한다. 그렇지만 침묵이 꼭 금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찡그린 아내의 표정이 어찌, 입을 봉한 채 잠자코 있으면 자신의 말이 말 같지 않느냐며 따지고들 기세다.
"이제부터 대문을 떼어가도 내다보나 봐라. 차라리 성(姓)을 갈고 말지!" 화가 나서 도저히 못 견디겠다는 듯 못을 박자. 내 말에 적이 안심이 되는지 아내는 더 이상 아무 말 않고 돌아눕는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위기를 모면하려고 그냥 한 번 해본 소린데. 화를 내고 보니 괜히 열 받치고 진짜 화가 난다.
"이놈에 집구석인간들은 하나 같이 싸가지가 없어!" 내친김에 속에 있는 불만을 내뱉어본다. 하지만 쉬이 화가 가라앉지 않는다. 억지로 잠을 청해보지만 그마저도 싶지 않을 것 같다.
말똥히 눈을 뜬 채 곰곰이 생각하니 나 자신이 참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을 살아가려면 없어도 있는 척 거드름도 피우고, 비록 문간방에 살지만 이래봬도 오촌 당숙이 '검사'다. 면서기 하는 당숙을 검사라며 둘러도 대고, 못 배워도 많이 배운 척 새침한 얼굴로 똑 쏘는 맛도 있어야 하는데. 그저 마음약해 빠져 쓸개 빠진 짓을 하고 있으니 졸지에 아내마저 돌쇠어멈으로 만든 건 아닌가하는 자괴감마저 든다.
이 생각 저 생각에 잠 못 이루고 있노라니 또 문 열어 달라는 소리가 들려온다. 깊은 밤, 온 집안사람들을 깨울까봐 목소리를 잔뜩 깔고 속삭이는 소리다.
‘그래, 많이 속삭여라. 이제부터 절대로 문 안 열어준다.’ 이불을 뒤집어쓴다.
잠시 조용한가 싶더니 다시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까보다 조금 큰 소리다. 나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주먹을 불끈 쥔다. 크게 숨을 들이마신다. ‘절대로 안 열어준다.’ 잠이든 척 코를 곤다.
“여보, 옆방 이 씨 같은 데요?”
아내도 여태 잠 못 이뤘던 모양이다.
“어짜라꼬?”
“신랑이 오지도 않은데 무슨 잠을 저래 깊이 잘꼬.”
“못 들은 척 그냥 잡시다.” 잠에 못이긴, 잠긴 목소리로 아내를 다독인다.
아내는 다시 돌아눕는다.
이번에는 대문을 땅땅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소리의 크기를 봐서 손가락 두 개를 굽혀 두드리는 것 같다. 들려오는 소리보다 ‘펄떡, 펄떡’ 내 심장 뛰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려온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킨다.
“문간방 유 씨!”
자신의 아내를 깨우는 것을 포기 했는지 나를 부른다.
'유 씨 좋아하네. 형이라 불러봐라 문 열어 주는가!'
“자요?”
아내의 말을 무시하고 코를 곤다.
허파에 바람 빠지듯 이불이 쑥 내려앉는다. 뒤꿈치를 든 채 아내는 문 쪽으로 걸어간다. 양손으로 미닫이문을 받쳐 들고 사르르 민다. 찬바람이 휑하니 몰려온다.
“유 씨 아주머니 고맙습니다.” 이 씨의 목소리가 가늘게 들린다.
문간방을 쏙 빼고 말 하는 것을 보니 진심으로 고마워서 하는 말 같다. 아니지, 추운 밤 ‘문간방’ 그 말까지 다 집어넣으면 날이 샐 것 같아서 빼먹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쌍그런 아내의 발이 내 다리에 닿는다. 나도 모르게 코를 고는 리듬이 엇박자로 튀어나왔다.
“자요?”
나는 아내가 미안해 할까봐 여전히 코를 골며 자는 척 한다.
‘인내심이 어쩌고……. 그러는 당신도 어쩔 수 없는 수청방(守廳房)에 얹혀사는 청지기 아내인 것 같소.’
문간방의 밤은 깊어만 가고. ‘이건 아닌데!’ 말을 되뇔수록 내 눈은 자꾸만 말똥해 온다.
처음 이사 오던 날을 생각하면 얼굴이 붉어진다. 그날은 일요일이었다. 마침 쉬는 날이라 그랬는지. 신혼부부가 이사 온다는 말에 혼수품 구경하려고 모였는지 마당에는 이집사람들이 다 나와 있었다.
이삿짐은 보잘 것 없었다. 뜯지도 않은 종이 상자에 든 비키니 옷장과 붉은 상표가 붙어 있는 양은냄비, 담요를 싼 이불보따리와 세면도구, 결혼 전 우리 두 사람이 입던 옷과 총각시절 내가 읽던 책 꾸러미가 전부였다.
아니나 다를까. 대문 안으로 물건을 들여 놓을 때마다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 거렸다. 살림살이가 왜 저모양지. 정말 결혼식을 올리긴 올린건가. 아무래도 소꿉장난 하는 것 같아. 끄떡끄떡 고갯짓을 하며 쑥덕거리는 소리가 내 귓속을 파고들었다. 아내와 나는 땅에 시선을 내려놓은 채 물건을 날랐다.
의기소침해 있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던지. 부뚜막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은 주인집아주머니는 짐 정리를 하는 우리 부부를 향해 연신 말을 걸어왔다.
위로의 말인지 참 말인지 몰라도, 집주인은 문간방에 이사 오기를 참으로 잘했다고 했다. 전에 살던 사람도 그 전에 살았던 사람들도 모두다 전셋집을 얻어 나갔다고 했다. 아내와 나는 집주인의 말에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듣기 좋은 거짓말이라고 해도 재수 좋은 참말로 믿고 싶었다.
문간방은 대문간 바로 곁에 있는 방이다. 대문이 가까운 만큼 화장실도 가깝다. 온종일 대문을 들락거리는 사람들의 발자국소리가 끊이질 않고, 볼일을 보느라 화장실 문을 여닫을 때마다 냄새 또한 심하다. 문간방은 그 집에서 제일 방값이 싸다.
나는 달동네 그 집에서 몇 년을 살았다. 같은 시간대에 하나밖에 없는 화장실을 여러 사람이 쓰느라 불편했고, 산허리를 돌아 골목길을 오를 때면 등줄기에 땀이 배어나도록 많이 힘들었지만 살다보니 그 집도 문간방도 살만한 곳이었다. 다들 막노동을 하거나 남들 앞에 떳떳하게 밝힐 수 없는 일을 하는지라 직책 대신 '김 씨, 이 씨' 호칭을 쓰는 웃지 못 할 촌극을 빗기도 했지만. '씨'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자존심이었으며 행여 남에게 무시당하지 않으려는 나름대로의 방어책이었다.
'문간방 유 씨', 나는 그 집에서 최고의 따라지 호칭으로 불렸다. 나는 그 말이 듣기 싫어 날마다 문간방 탈출을 꿈꾸었다. 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쥐꼬리만 한 월급, 돈을 모을 시간은 더디 갔고 그나마 비빌 언덕도 내겐 없었다. 어느 세월에 돈을 모우지. 언뜻 앞날이 암담해져 어깨가 처질 때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문간방에서 전셋집으로 이사 갔다는, 재수 좋은 문간방이라는 주인아주머니의 말에 희망을 걸은 적도 있었다.
얼마 전 그 집 앞을 지나친 적이 있었다. 빌라에 가려져 초라하기 그지없는 그 집 앞에 서서 아내와 나는 서로를 바라봤다. 문간방은 재수 좋은 방이었다. 이사 들던 날 주인아주머니가 했던 말처럼 우리는 방 두 칸짜리 전셋집으로 이사를 했다. 그 집 대문을 나서던 날 아내의 등에는 갓난아이가 업혀 있었고, 한 수레도 되지 않던 세간이 화물차에 실어야 할 만큼 늘어있었다.
"비누거품처럼 살림이 일었는데." 아내는 지난날을 회상하며 웃음 지었다.
지금도 문간방에는 사람이 살고 있다. 해질녘 연탄불에 된장찌개 올려놓고 골목을 서성이던 문간방 유 씨아주머니처럼, 담장에 몸을 숨긴 채 '까꿍' 퇴근하는 남편을 놀래 키는. 전셋집으로 이사 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문간방 박 씨'부부와 강 씨, 홍 씨. 오 씨 성을 가진 사람들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