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세상/좋은수필 4

[좋은수필]애착 / 김희정

cabin1212 2019. 3. 26. 06:02

애착 / 김희정

 

 

 

가끔 십 년 전에 살던 아파트 앞을 지나칠 때가 있다. 흘러간 것은 무엇이나 그립기만 한 것인지, 그곳을 지날 때면 그리움이 감돈다.

결혼 생활 십이 년 만에 마련한 첫 집인 탓이기도 한, 스무 평도 채 모자라는 면적이 주는 기쁨에 몹시 황홀해 하던 그때의 그 감동들이 더 그립기 때문이다.

콩깍지 같은 방 둘에 아이 둘의 방을 꾸며주고, 나는 딸과 아들 앞에서 오래도록 으스댔다. 좁은 마루 한켠에 놓아둔 통나무로 된 식탁에서 커피라도 마시려면, 내 주제에 그런 복을 누리는 것이 괜히 송구스럽기도 했다. 더 착하고 겸손해져야 복이 달아나지 않겠지 하는 참으로 고운 생각도 그때는 자주 했었다. 유난히 감동하기를 잘하는 성격이, 또 작은 것에 더 크게 행복해 하는 마음이 있어 내게는 그것이 재산이었다.

영원히 그곳에서 살다갈 듯 애착하여 벽지를 고르고 등을 만들어 달며 타일 한 장에도 애정을 쏟았더니, 불과 삼년도 못 살고 우리는 그곳을 떠나왔다.

그 집을 지나칠 때마다 베란다에 먼지 낀 물건들이 쌓여 있는 것을 바라다보면 애지중지 그 집에 애착했던 순간들이 부질없이 무상해 서글퍼지곤 한다.

사람들마다 제각각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애착이 한 가지씩 있나보다. 전생의 내 혼은 쉬어갈 둥지 하나 없이 떠돌아만 왔던지 공간에 대한 애착이 유난스럽다.

방이 열 개가 넘고 넓은 대청이 있는 큰 한옥에서 자란 어린 시절이 있었지만 조부모님과 고모 둘의 식구들이 함께 살았고 형제까지 많았던 탓이던지, 어릴 적 기억에도 그런 것에 갈망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

책상 같은 것은 처음부터 없었고 내 옷을 놓아 둘 자리 하나 마땅하지 않았다. 책 보따리를 이리저리 옮기며 눈치를 보던 검정 치마의 모습은 생각만으로 애처롭다.

그때의 내께는 아주 소중한 꾸러미가 하나 있었는데, 어머니가 남겨준 헝겊쪼가리며 수실이며 삼촌들이 피우고 버린 담뱃값 속의 은종이가 담긴 낡은 함지박이다. 그 함지박을 안심하고 놓아둘 자리가 없어 마루밑이나 사철나무 가지사이로 옮겨놓느라 속을 태웠다. 가끔 뒤란의 장작더미 틈에 끼워두었다가 밤새 비를 맞추고 말아 젖은 함지박을 안고 울다가 할머니에게 매를 맞기도 했었다. 그 함지박 속에는 큰언니가 만들어준 헝겊 인형이 있었는데, 잉크로 그려놓은 눈, , 입이 빗물로 못 쓰게 되고 말았으니 속상한 마음에 할머니 매도 아픈 줄을 몰랐다.

비밀스런 편지라던가 일기 같은 것을 숨겨둘 장소는 사춘기 소녀에게 더없이 중요한 곳이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좋을 공간, 내 비밀을 안심하고 보관할 수 있는 곳, 아무런 글이라도 쓰던 그대로 펼쳐둘 수 있는 곳, 어지르진 방 때문에 꾸중듣지 않아도 되는 아- 그런 나만의 방을 얼마나 갖고 싶어 했던지.

결혼을 하고 잦은 이사를 하면서도 손바닥만 한 밥상(내 책상으로 사용하던)이 제일 먼저 옮기는 이삿짐이요, 부엌의 한 귀퉁이, 층층대 밑이라도 그 밥상이 자리를 잡고 나서야 안심이 되었다. 그랬으니 그 첫 집인 아파트가 내게 얼마나 소중한 곳이며, 그 복을 누릴 때마다 남들이 의아해 할 정도로 감동하지 않을 수가 있었겠는가.

아파트에서 이사를 나오면서 우리는 집을 지었다. 물론 유치원의 동편 구석진 그리 넓지 못한 면적이었다. 식구가 넷이니 방은 네 개로 설계되었다. 공사하는 사람들에게 웃음거리였지만 개의치 않았다. 작은 방이라 갑갑한 마음은 창으로 대신했다. 문 값이 비싸 남편의 구박이 심했다. 온 벽이 창뿐이었으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 집에서는 7년을 살았다. 그곳을 비워주면서 이번에는 창에 애착했던 마음들이 부질없게 느껴졌다.

그 이층을 유치원으로 비워주고 얼마 전 삼층으로 옮겨왔다. 설계할 때 사층 다락방이 가능하다기에 욕심스럽게 사층 천정 높이만큼 실내를 틔워 공사를 했다. 방은 손바닥만큼 작았지만 숫자는 역시 또 네 개였다.

그 네 개 중 딸아이 방은 요즘 비어 있다. 유학을 떠났으니 오년 안에 돌아오지 않을 것이고, 그러다 시집을 가면 그 방은 늘 비게 될 것이다. 얼마 후면 아들도 떠날 테니 방 하나가 또 비어버릴 것이다.

아들이 늦는 날이면 남편은 천장이 높아 우주 같다는 마루를 서성대다가 넓은 공간 때문에 더 외로울 것 같다며 내게 눈을 흘기고 구박을 준다. 그런 남편조차 옆에 없는 날이면, 한지를 바른 긴 등 하나에 불을 켜놓고 나 혼자서 마루로 방으로 서성댄다.

이곳에서는 쉽게 이사를 나갈 것 같지 않다. 그러나 요즘은 또 우주 같은 공간에 애착하던 마음이 조금씩 부끄럽기 시작한다.

지리산으로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구례를 넘어 칠불사로 오르는 길목에 침점이라 이름 붙여진 마을이 있었다. 그 마을이 아름답다며 일행들이 차에서 내려 마을로 들어갔다. 입구에 열 평 남짓한 흙집이 있었는데 마당에는 작은 고랑물이 흐르고 있었다. 건너편으로 지리산 능선이 아름답게 바라다 보였다. 그런 흙집에서 차잎이나 따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우주 같은 내 집은 그 순간 마음속에 없었다.

동해에 있는 어머니 산소에 가면 푸른 보리밭 이랑에 집을 지어 온종일 맑은 파도나 바라보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내 애착을 잘 아는 남편은 죽고 나면 여섯 자가 모자라는 나무상자에 창문하나 없는 곳이 영원히 쉴 터라며 환상을 흩뜨려놓는다.

그러나 눕는 것은 내 육신이다. 육신이냐 벗어놓고 가는 낡은 옷가지가 아닌가. 혼은 훨훨 산천을 떠돌 터인데 침점마을인들 보리밭이랑인들 경계가 있겠는가. 단지 애착 하나 또 짊어지고 이 이승을 떠날까 그것 하나 그저 두려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