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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거리의 배우 / 존 버거

cabin1212 2019. 7. 6. 06:18

거리의 배우 / 존 버거


 

 

 

여러 해 만에 바르셀로나를 찾았다. 3월의 끝자락, 교외의 공터에는 붉은 양귀비들이 첫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다.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해는 적당히 높이 떠서, 해안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구시가의 중심에 위치한 산타 마리아 델 마르 성당 주위, 거기 늘어선 오층 건물들 사이로 난, 노새 한 마리 길이만큼 좁은 샛길들을 비추고 있었다.

더러는 한때 왕궁으로 쓰였던 건물들이어서, 모두가 오래 된 두터운 돌 벽과 돌계단으로 되어 있다. 그 옛집들 주위엔, 이발소 바닥의 머리칼처럼 일상의 남루함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다. 오래 된 출입구의 철문들에는 낙서 화가들이 남긴 흔적이 이리저리 남아 있었다.

슬리퍼를 신은 늙은 여인들이 거리에 나와 얘기를 주고받으며 서너 개의 양파를 산다. 중년의 여인들은 더 시끄럽게 목소리를 높이기도 하고, 때로는 낮 시간에 조깅도 한다. 미니스커트의 젊은 여자들은 손목을 튕기고 손가락을 흔들면서, 경멸과 무시라는 양보할 수 없는 저들만의 권리를 확인한다. 간혹 바에 앉아 있는 손님이나 일광욕을 위해 아내 손을 잡고 벤치로 향하는 늙은 남편들은 좀 더 시간이 지나야 나타난다. 부리를 꼬리에 박은, 또는 머리를 가슴에 묻은 비둘기들이 창턱에서 졸고 있다.

이 거리 저 거리의 위쪽 창문에는 푸른 하늘 아래 빨래가 널려 있다. 자그만 발코니의 쇠 난간 밖으로 몸을 내밀고 마른 빨래를 걷는다. 맞은편 집에서 셔츠를 널면 그 소매가 이쪽의 베갯잇에 쉽게 닿을 것 같다. 여러 상념들을 떠올리며 하우메 히랄트가() 주위를 이리저리 걷는다. 바르셀로나를 얘기하던 그녀의 목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했다.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는 여름- 엘 카에 푸에고-, 이 도시의 가장 시원한 침대 시트도 몸을 누일 수 없을 만큼 뜨거워진다. 송곳니 같은 더위 아래 도시는 한 덩어리로 엉겨 붙는다. 벽과 쇠붙이들, 방안의 공기와 쇠 난간, 빨래가 놓인 테이블과 비둘기, 심지어는 수도관 속의 물까지도. 이런 더위를 잊는 유일한 길은 만일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면- 서로 부둥켜안고 사랑에 빠지는 길밖엔 없다! 그 다음 방법이라면? 글쎄, 부채로 가만히 공기를 저을 수밖에, 귀 정도는 조금 식힐 수 있을 것이다.

불이 떨어지는 여름, 거리는 어딘가의 작은 섬으로 향하는 꿈으로 넘친다. 이 숨 막히는 항구도시에서 벗어나 멀리 가 있는 행복한 사람들을 생각하는 것이다. 에두아르도는 전자공학 공부를 하러 멀리 떠났지. 호세는 산으로, 이사벨은 또 파리에 가 있겠고, 어디에 있든 여기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겠지. 그러면서 마치 온도계를 보듯 시계를 쳐다본다! 그래도 자정이 지나면 온도가 시계의 숫자처럼 몇 도는 떨어지는 것이다.

페란가()에 닿아 람블라스 거리를 향해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카탈루냐 광장에서부터 바다를 향해 서 있는 콜럼버스 기념탑에 이르는 넓은 산책로에, 줄지어 서 있는 플라타너스가 연푸른 첫 잎들을 작은 손처럼 벌리기 시작한다.

멀리 산책로의 중간쯤에서 무언가 이상한 것이 눈에 띄었다. 발판 위에 올라선 사람인가? 사람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지만, 바다를 향해 혹은 바다를 등지고, 바삐 혹은 천천히 걷고 있는 사람들 위로, 머리 하나나 둘 정도로 높이 솟아난 것이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면서 큰 키의 그 물체는 상자를 밟고 선 허수아비로 드러난다. 허수아비는 저쪽을 향해 서 있어서 어깨를 나타내는 가로대 위에 판초처럼 걸려 있는 담요와 밀짚 머리칼, 그리고 모자만을 볼 수 있었다. 비둘기 한 마리가 모자 위에 앉아 있다. 꼼짝 않고 앉아 있는 비둘기가 궁금증을 더했다. 하늘을 날고 있지 않은 새들은, 마치 파충류처럼 동작을 정지하는 능력이 있는 거라고 나는 속으로 말한다.

람블라스 거리에 허수아비라니? 이상하게도 의문이 들지 않았다. 어떤 날, 이 길에서는 꿈꾸는 야곱을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 혹은 기도하는 성 히에로니무스면 또 어떤가. 허수아비는 미국식 패스트푸드점의 간판일 수도 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비둘기는 진짜가 아니라 모조품이었다. 판초처럼 늘어뜨린 담요 밑으로는 청바지를 입은 다리와 흰색 운동화가 그 뒷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너무 움직임이 없어서 도무지 산 사람인지 의심스러웠다.

앞쪽으로 가서 얼굴을 쳐다보았다. 안경을 끼고 밀짚 가발을 쓴 남자였다. 대학교 졸업반 정도 되었을까. 눈은 앞으로 고정시킨 채 바라보고 있다. 눈썹 하나 신경 올실 하나 움직임이 없다. 관 속의 시체처럼 팔을 가슴께에서 포개고 있다.

관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을까. 열한 달 전이구나. 벌써 열한 달이 지났구나.

햇볕에 그을린 남자는 창백하지 않았고, 장의사들이 만진 죽은 이들의 얼굴보다 훨씬 뚜렷한 얼굴선을 가지고 있다. 눈을 크게 뜨고 바다를 향한 람블라스 거리 전체를 내다보고 있다.

관을 열어 둔 채 밤을 새워 보면, 죽은 이의 입술이 움직인다는 느낌을 종종 받는다. 그렇다고 무슨 희망을 주는 움직임은 아니다. 떠난 이가 아직 가지 못했음을 말해 주는 징표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눈썹이 그랬었다.

멈춰 서서 허수아비를 바라보았다. 시간이 흘렀다. 오 분, 십 분. 미동도 없었다. 바다로부터 한 줄기 바람이 불어와 어깨에 늘어뜨려진 긴 밀짚 머리칼 몇 올이 흔들릴 뿐이다. 내가 이렇게 오래 보고 있다는 걸 저 사람은 알까. 나는 속으로 묻는다. 고맙게도 그녀는 몰랐었다. 그리도 가까이에 있었지만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남자 아이 하나가 엄마와 함께, 길을 따라 이쪽으로 내려오고 있다. 허수아비 앞에는 붉은 플라스틱 그릇 하나가 놓여 있고 동전 몇 닢이 들어 있다. 아이가 멈춰서 백 페세타 짜리 동전을 떨어뜨린다. 허수아비는 감사의 표시로 천천히 왼손을 들고 머리를 약간 숙이면서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 진중한 분위기가, 왼손을 들어 올려 무덤가의 잠든 병사 넷을 축복하며 일어서는, 부활하는 그리스도를 담아낸 그림을 연상시킨다.

다시 죽은 이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가장 어려운 시간이 바로 지금과 같이 움직이고 난 직후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 섬들에 꼭 가고 싶어요. 그녀는 말했었다. 그러나 그러지를 못했다. 먼 다른 도시에서 재가 되어 비로소 이곳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