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수필]보내야 할 것들 / 강천
보내야 할 것들 / 강천
이별의 시간이 왔다. 어떻게 살아왔던 더 살아야 할 것들은 모진 계절을 넘겨야 하고, 떠나야 할 것들은 인제 그만 미련을 놓아야 한다.
사무실 창가에 서 있는 나무에도 삶과 죽음이 함께 깃들어 있다. 푸름을 자랑하던 잎들은 어느 사이엔가 사그라져버렸다. 무서리 맞은 밑줄기의 시린 발을 비단 이불처럼 감싸며 축복의 징표를 남기고 떠났다. 나무는 무성한 녹음으로 눈가림했던 속내를 이제야 슬며시 내보인다. 내면의 부끄러운 부분이다. 이파리가 떠나버린 휑한 자리에는 또 다른 주검들이 앙상한 몰골로 들러붙어 있다. 아직 떠나지 못한 삭정이들이다. 크고 작고, 가늘고 굵음을 떠나 이들은 모두 보내야 할 것들이다.
눈앞의 단풍나무는 홀로 동떨어져 있어 다른 나무들과 빛 바라기 경쟁을 할 일이 별로 없다. 줄기에 매달린 채 죽어있는 이 곁가지들은 외부로부터 받은 상처 때문이 아니라 제 피붙이로부터 외면당하고 내쳐져 도태된 것들이다. 새봄, 희망에 부풀어 움을 틔우고 가지를 내뻗으며 힘껏 도모했던 삶이 형제들 간의 상잔으로 꺾어져 버린 셈이다. 비정한 생존의 현장에서 일어난 일이니 누구를 탓하겠는가. 짧은 생을 마감한 허무를 다독이느라 궁상을 떨며 차마 떠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나무에 덕지덕지 들붙은 잔가지들이나, 지금 이 순간에도 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는 상념이나 별스레 다를 바 없는 듯하다. 잠시간에도 팔만사천 번이나 생멸하는 것이 마음 작용이라고 했던가. 글머리 하나를 잡아 보고자 하니 온갖 망상이 뒤죽박죽으로 엉긴다. 제 능력은 생각지도 않고 눈만 높은 욕심이 제일 먼저 찾아온다.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으니 원망이 생기고, 명언 명구라도 만들어 보려는 집착도 가당치 않다. 사족을 끌어안고 애면글면하다가 무능함에 대한 자책과 푸념이 뒤를 잇는다. 그뿐인가, 필설로 옮기기도 전에 사라져버리는 갖가지 잡념까지 수시로 마음을 어지럽힌다. 이렇게 변덕을 거듭하는 생각 중, 올바른 문구로 다듬어질 씨앗 하나쯤이 있기라도 할까. 글만 그런 것이 아니다. 지나고 보면 별것도 아닌 일에 빠져 허우적댄 시간은 얼마나 많았던가. 때가 되면 저절로 사라질 번민에 속박되어 고통스러워한 날은 또 얼마였었나.
의미 없는 탄생이 없듯이 가치 없는 죽음도 없다. 야박해 보이지만, 나무는 지금 삶의 군더더기를 걷어내는 중이다. 우듬지가 바로 서기 위한 필연의 과정이다. 오늘 내치는 죽은 가지가 내일 단단한 줄기를 위한 밑거름이니 아무리 힘들다 해도 감내해야 할 일이다. 줄기가 높고 굵게 자라려면 단순해져야 한다. 제멋대로 자라는 잔챙이들을 모두 떠안고서는 우람하게 자랄 수 없기에 맨살을 드러내고 제 환부를 도려내는 것이다.
화단 저편에 미끈하게 치솟은 은행나무 우듬지가 듬직해 보인다. 해마다 앓아야 하는 몸살을 잘 견뎌왔기에 저리되었으리라. 온전한 듯 보이는 단단한 줄기도 겉으로 보이는 껍질과 그 안의 관다발 정도만 살아있는 세포이다. 한해 또 한해 죽어 가는 잔해를 다독이고 추세워 나이테 깊은 속살로 쌓았다. 어제를 보듬어 안고 오늘을 사는 나무다. 한 가지에서 난 형제를 매정하게 쳐내는 고통도 천년을 버텨갈 기둥으로 커가는 여정의 부분인 것을.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고 겉면이 있으면 내면도 있다. 완전한 삶이 어디 있겠는가. 버릴 것은 버려가며, 감쌀 것은 곰삭혀 가며 사는 것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