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수필]밤을 건너며 / 김희자
밤을 건너며 / 김희자
시간은 소리 없이 흘러 자정을 넘어섰다. 사위가 잠잠해지고 시계소리가 뚜렷해졌다. 인적이 끊긴 엘리베이터가 비로소 휴식을 취하고 밤이 익어간다. 문을 흔들다 가는 바람소리에 창을 연다. 검은 하늘에 손톱 같은 초승달이 떠 있다. 어둠이 짙을수록 빛은 더욱 발하는 법. 희미한 달빛 세례를 받은 가로등이 빛을 내며 서 있다. 창틈으로 들어선 찬 공기가 훈훈한 병실의 기운을 잠재운다. 아직 바람소리를 느낄 수 있다니 내가 살아있음이다. 화르르 달려온 봄이 대추나무에 움을 틔우고 열매를 낳더니 앙상한 가지만 남았다.
지난 삼월, 처음 이곳으로 들었을 때 눈을 뜨지 않은 대추나무의 나체를 보았다. 허허로운 대추나무 밭 사이로 뿌연 밤공기가 서성거렸고 나는 마흔아홉에 요양병원 초년생이 되었다. 낯선 세상에 무작정 뛰어든 나는 미열까지 동반하며 긴장된 날을 보냈다. 세찬 바람이 불면 순식간에 흩어져버릴 것 같은 나무들이 한 해의 소임을 다하고 겨울나기에 들 듯, 나 역시 새 직장에 들어와 봄과 여름을 보내고 가을의 끝자락에 섰다. 뜨거운 여름을 보냈던 가지들이 잎을 대지로 돌려보내고 또 겨울과 맞선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두터운 이파리를 버리고 묵언에 들어야 한다. 살바람을 견디며 기다려야 찬란한 봄을 맞이할 수 있듯 나도 이 밤을 무사히 건너야 임무를 다하는 것이다.
자정 무렵, 대장암 말기를 선고받고 이승과 저승의 문지방을 넘나드는 정녀 할머니가 통증을 호소했다. 여느 날보다 앓은 소리가 잦고 잠을 이루지 못했다. 맥박이 빨라지고 속이 매스껍다 하여 의사에게 보고를 했다. 통증을 덜어주는 주사를 드렸더니 풋잠이 들었다. 정신이 가물가물해도 손길만 주면 고맙다며 손을 꼭 잡았다. 온몸에 암이 전이되어 이 세상에 남겨줄 것이라고는 눈밖에 없다며 각막 기증을 신청해 놓았다. 밤이 깊을 대로 깊어 가로등도 명상에 들었다. 설핏 잠이 든 할머니의 가슴 위로 이불을 끌어올린다.
"에취!" 피로가 슬금슬금 몰려오나 싶더니 코를 간질이며 재채기가 난다. 의지는 말짱해도 피곤에 전 몸뚱어리는 금세 반응을 한다. 연 이틀 밤을 새우고 있으니 감기 기운이 달려든다. 제아무리 정신력이 강해도 의지로서 감내하기 어려운 것이 있다. 잠시 엎드려 눈을 붙일 수도 있지만 그러지 못하는 내가 어리석고 고집스럽다. 이제 두 달만 넘으면 나도 지천명의 고개에 올라선다. 결혼 전 야간근무를 해보았으나 밤을 건너는 일을 다시 시작한 건 지난봄부터다. 이곳은 지난 삼월에 연이 닿았다. 십 수 년 동안 몸담았던 의원을 그만 두고 요양병원으로 직장을 옮겨왔다. 불혹의 절벽 끝에서 몸을 던진 새로운 도전이었다.
여럿이 근무하는 낮과 달리 밤에는 일손이 적다. 간병사들이 일을 거들기는 하지만 적지 않은 환자들을 돌보는 일은 부담이 된다. 산소마스크를 끼운 환자도 있고 말기 암을 앓는 분들도 더러 있다. 불시에 응급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으니 귀를 세워야 한다. 깊은 피로가 엄습해 와도 정신을 놓아서는 아니 된다. 환자들의 안녕이 오늘밤에는 내 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책임감을 느끼며 병실을 돈다. 큰 언니뻘 되는 간병사가 잠을 이겨내며 환자들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있다. 링거가 잘 들어가고 있는지? 혹여 통증으로 잠 못 드는 환자가 없는지? 희미한 등이 켜진 병실을 한 바퀴 돈다. 전쟁터에서 등불을 들었던 백의의 천사, 나이팅게일을 흉내 낼 순 없지만 환자들이 걷어찬 이불을 덮어주고 이마를 짚어본다. 이대로만 조용하다면 이 밤을 무사히 건널 수 있으련만. 장담은 금물이다.
간호사실로 돌아와 의자에 몸을 뉘이고 잠시 숨을 돌리는 사이, 신관을 지키던 간병사가 뛰어온다. 일이 벌어진 209호로 달려갔다. 링거 줄이 빠져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 B할머니가 잠결에 링거 줄을 뽑은 것이다. 처치를 하고 병실을 나오니 203호에서 또 호출이다. 일찍 잠이 든 할머니들이 한잠을 자고 일어날 시간이다. 산소를 흡입하고 있던 할머니가 기침을 하며 숨이 차다고 호소한다. 산소량을 높여주고 안정을 시키니 숨결이 숙진다.
부산하던 병동이 다시 조용해졌다. 포트에 물을 올리고 창밖을 본다. 겨울로 가는 밤은 여름보다 빨리 다가오고 더 오래 머문다.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별을 찾는다. 별을 보려면 이 어둠이 꼭 필요하다. 고요 속에서 그리움 하나를 떠올리며 커피를 탄다. 빈속의 커피가 위를 자극하지만 밤을 무사히 건너려면 깊은 밤에도 쓴 커피를 마셔야 한다. 밤의 정적을 깨고 지나가는 열차의 진동에 섬이 흔들린다. H할머니의 잠꼬대가 다시 시작된다. 오늘밤에도 잠꼬대는 이어질 모양이다. 끙끙 앓는 소리를 내다가 어느 순간에는 노랫가락도 흘러나온다. 딱딱한 의자에 앉아 있었더니 엉덩이가 저러온다. 몸이 녹아내리는 시각. 벽에 붙은 시계가 세 시를 향해 달려간다.
복연 할머니가 소리를 내지른다. 욕을 스스럼없이 해서 일명 욕쟁이 할머니라 통한다. 복연 할머니는 사지가 마비되고 삼키는 기능까지 잃어 코에 줄을 넣어 영양을 공급한다. 처음 입원했을 때는 누구나 아지매라 불렀다. 당신의 기저귀를 갈아주는 간병사나 간호사를 보고 욕지거리를 해댔다. 당신의 몸에는 손도 못 닿게 하고 발로 찼다. 가만히 누워 천장만 보고 있었지만 목소리를 듣고는 누구인지 가늠했다. 당신에게 정성을 다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미소를 지었다.
입원 당시 이마로 내려온 머릿니를 발견하곤 비상이 걸렸다. 머리 만지는 것도 싫어해서 예쁘게 파머를 하자고 꼬드겼다. 미용실처럼 휠체어에 앉혀 약을 바르고 머릿니를 박멸했다. 정성어린 손길이 서서히 욕쟁이 할머니의 마음을 녹였다. 아지매라 부르던 존칭이 선생님으로 바뀌고 나에게는 당신의 동생이 되어달라고 했다. 얼굴과 입 안을 깨끗이 닦아주면 "내 땅 좀 주까?" 하며 연해졌다. 욕쟁이 할머니가 소리를 지르자 잠꼬대를 하던 H할머니가 답을 한다. 두 분의 대화에 참았던 웃음이 터지자 놀란 간병사가 달려온다.
시계가 네 시에 가까워지자 닭울음소리가 들려온다. 피로가 가장 몰려오는 시간이다. 오늘밤은 잠시 눈을 붙일 호사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새벽닭 울음소리가 하루를 열기 시작한다. 잠꼬대로 대화를 하던 욕쟁이 할머니와 H할머니가 깊은 잠에 들었는지 고요하다. 날이 밝기를 기다리며 쓰린 눈을 깜빡인다. 잠잠해졌던 H할머니의 잠꼬대가 또 이어진다. 이번에는 노랫가락이다. "나비야, 나비야 꽃가지에 앉지 마라…."
노랫가락을 쫓아 병실로 갔다. 잠꼬대를 하는 모습을 유심히 본다. 두 손을 가슴에 가만히 얹고는 웅크린 채 노래를 한다. 할머니의 손등에는 무수히 지나왔을 고단한 길들이 툭툭 불거져 있다. 밤이 깊어지면 해묵은 시간들이 슬그머니 기어 나와 잠꼬대를 하게 만드는 것인가. 매일 밤 잠꼬대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가 때로는 궁금증을 일게 한다. 남에게 민폐가 되지 않으려고 앉아서 조는 모습을 보면 애잔하다. 누워서 잠만 들었다면 잠꼬대를 하는 통에 할머니는 노상 앉아서 주무신다. 하지만 그마저도 잠꼬대를 이겨내지 못한다. 안쓰러워 할머니를 눕혀 드리고 병실을 나왔다.
밖이 소란스럽다. 소리 나는 곳으로 귀를 기울이는 것이 인간의 본능 아닐까. 창밖을 내다보니 쓰레기 수거차 소리다. 벽시계가 네 시를 향해 달리며 하루의 시작을 알린다. 새벽 공기를 가르며 기차가 지나가고 새벽닭이 울기 시작한다. 이곳에서는 밤을 건너며 귀하게 얻을 수 있는 것이 둘 있다. 철로가 바로 옆에 있어 기차 지나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도심에서는 들을 수 없는 새벽닭 울음소리를 만날 수 있다. 새벽을 가르며 달리는 열차소리와 목청껏 노래하는 새벽닭 울음소리는 밤 새 지친 몸의 피로를 녹여준다.
'딩동, 딩동!' 210호에서 호출이다. 호출신호가 심상치 않다. 혈압기를 집어 들고 뛰었다. 협심증과 무기폐를 앓고 있는 J할머니의 상태가 위독하다. 소피를 보고 침대로 오르더니 갑자기 비명을 내질렀다고 했다. 불시에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며 언급해두었지만 실제상황이 벌어졌다. 산소를 가득 틀고 응급주사를 투여했지만 무호흡 상태다. 의사는 심장에 충격을 주며 마사지를 했다. 의식이 어디로 갔는지 젖꼭지를 아무리 비틀어도 반응이 없다. 웃옷까지 벗어던지고 정성을 다했지만 J할머니는 이승을 보는 눈을 끝내 감아버렸다.
식어가는 손을 붙들고 마지막 인사를 했다. 옆 침대 할머니들이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땀을 닦으며 헝클어진 할머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쪽 진 머리로 평생을 지내다 이틀 전에 머리를 싹둑 잘랐다. 단발머리에 익숙하지 않은 할머니를 위해 간병사가 꽂아준 핀이 손에 걸렸다. 가족과 연통이 닿은 의사가 산소와 링거를 제거하라고 지시했다. 채 식지 않은 몸속으로 들어가는 링거를 빼고 이제는 평안하게 보내드릴 차례다. 이승과 마지막으로 연결된 끈, 산소와 수액이 공급되던 줄을 모두 제거했다. 뜨겁게 흐르던 혈액이 굳어 가는지 출혈은 되지 않았지만 자유로운 길 가시라며 주사바늘을 뺀 자국에 반창고를 꾹꾹 붙였다.
J할머니를 영안실로 보내고 창밖을 본다. 섬 밖에는 새벽안개가 자욱하고 내 몸은 어지럼증을 느낀다. 나이도 잊은 채 무모하게 뛰어든 길이다. 까만 밤을 하얗게 새워야 하지만 내 존재를 찾기 위해 들어선 길이기에 후회는 없다. 때로는 가슴 저리는 회한 때문에 통증이 일고 힘겹지만 세월과 더불어 겸손해진 나를 보며 체념하는 일에도 능숙해졌다. 침묵의 무게를 달아 본 사람만이 서러움의 질량을 느낄 수 있듯이 말 수를 줄여 행동에 옮기는 일이 많아졌고 세상을 보는 눈이 깊어져 감사할 따름이다.
또 물을 끊인다. 널브러진 정신을 가다듬기 위해 커피를 탄다. 단 커피를 즐기지 않지만 피로를 물리치기 위해 설탕을 듬뿍 넣는다. 가라앉아 있던 마음이 다시 심장박동을 부추긴다. 어느새 밤과 아침의 경계, 다섯 시다. 이토록 힘든 밤을 건너면 내가 당도할 곳은 어디인가? 삶에 있어 언제나 꿈과 현실의 경계는 얼른 금이 그어지지 않는다. 아픈 밤을 여미고 또다시 새벽이 온다. 밤을 건너는 일은 또 다른 출구를 찾는 내 삶의 연습이며 어쩌면 인생이란 뼈를 갈고 사는 일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