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수필]흰 벽 / 남태희
흰 벽 / 남태희
오래된 건물 곳곳에 비가 새고 있다. 서른 해도 더 넘긴 주택에 주인이 상가를 들인 지 벌써 십여 년이 넘었다. 서너 번의 도배에도 한 해를 버티지 못하고 창문 쪽 벽지들이 눈물을 머금고 있다. 달력을 내리고 곳곳에 걸린 액자를 떼어내고 책꽂이와 서류함들을 한 곳으로 밀어둔다. 이제 도배사를 불러 전체 벽지를 바르면 한 해 정도는 버티려나.
하얀 네모난 벽이 나타난다. 달력만 한 네모, 작은 액자만 한 네모들이 높낮이를 달리해서 손수건처럼 걸려 있다. 분명 멀쩡해 보이던 벽면조차 새로 드러난 벽 때문에 더욱 추레해 보인다. 순간, 시간의 때를 올린 벽면이 나인지, 환한 얼굴을 드러낸 손수건만 한 벽이 나인지 헷갈린다.
사람에게는 두 가지 부류가 있는 것 같다. 자신의 행동에 관대하고 너그러운 사람과 자신의 행동에 엄격하고 경직된 잣대를 대는 사람이다. 나는 후자에 가깝다. 지금껏 자신을 지나치게 다그치며 완벽하려고 노력하는 사람 가운데 하나였던 것 같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일들을 처리해야 하고 계획한 일이 완성되지 못하면 다음 단계의 일을 진행할 수 없었다. 그러나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친해지고 나면 너그러워지는 편이다.
모든 일에 조금 양보하는 게 마음이 편했다. 지인이나 친구들을 만나도 상대의 의견에 될수록 맞추는 편이다. 내 의사보다는 전체적인 분위기에 맞추려는 성향이 강했기에 별 무리 없이 사회생활을 한 것 같다. 대소사나 친구들의 궂은일을 외면하지 않으려 했다. 어쩌다 계선적인 논리로 한 행동에 스스로 짐이 되어 마음이 더 힘들어졌다. 마음의 불편보다 차라리 맞추고 챙기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었다.
보이기 위해 살아온 삶이었다. 상대에게 너그러웠던 것은 내 맘 편하자고 하는 또 다른 욕심이었다. 누군가에게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액자를 걸듯, 소품을 놓듯 완성된 삶과 바른 이미지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저 벽을 놓쳤더라면 아직도 난 사람의 도리는 하고 산다고 위안했을 것이다. ‘나는 괜찮은 사람이야, 나는 이렇게 하는데 넌 왜?’ 하고 상대가 마뜩찮을 것이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듯 자신의 모습이 어떤지를 한 번도 생각지 못했으니 나이를 헛먹은 게 분명하다. 순수건만 한 마음의 크기를 가지고 벽 전체인 양 자만했다.
흰 벽을 보며 누렇게 때 묻은 자신과 마주한다. 조금씩 먼지가 쌓이고 거미줄이 쳐지고 벌레들이 알을 슬듯, 시간 속에 변색했다. 세월의 두께만큼 두꺼워진 낯으로 은근히 누군가의 상처를 건드리며 살지는 않았을까. 완벽한 척하면서 상대의 잘못에 대해 목소리 높였고 무단횡단을 일삼듯 바쁘게 살면서 나 지신은 잊고 있었다. 깜박이 등도 켜지 않은 채 남의 삶을 함부로 엿보고 평가한 죄는 어디 작은가. 돌이켜보면 때 묻지 않은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흰 벽이 침묵의 말로 너 자신은 딱 요만큼이라고 알려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