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수필]늦봄 / 박경대
늦봄 / 박경대
언뜻언뜻 보이는 길옆의 풍경들이 순식간에 뒤로 달아난다. 시원하게 뻗어 있는 한적한 도로는 엑셀 레이더를 더욱 당기도록 유혹하고 있다. 속도계는 이미 140Km를 넘어서고 있었다. 앞서 달리던 두 명의 라이더가 화물차를 추월하였고 다음은 내 차례였다. 지그시 속도를 올려 화물차량을 따돌리는 순간 갑자기 눈앞에 급커브 도로가 나타났다. 머릿속에는 ‘아차’하는 후회와 함께 가족의 얼굴이 스쳤다. 원심력을 제어하지 못한 바이크는 가드레일을 뚫고 나와 함께 낭떠러지 아래 강을 향해 떨어졌다.
지난겨울, 한가로운 시간이 생겼다. 오랜만이라 어디 여행이라도 가볼까 생각하다 이번 기회에 바이크 라이선스를 따보기로 마음먹었다. 예전부터 갖고 싶었고, 혹시라도 대형 바이크를 운전할 기회가 있으면 필요했기 때문이다. 바이크는 오랫동안 다양한 종류를 경험하였기에 원서를 접수하면서도 시험이 힘들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강의실에는 스무 명 남짓 되는 사람이 앉아있었다. 얼굴을 둘러보니 50 전후로 보이는 한두 명을 제외하곤 모두 30대의 젊은 사람들이었다. 아무리 봐도 60대라고는 나 혼자였다. 괜한 자격지심 때문이었던지 교육을 받는 내내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강의는 지루하게 이어져 이수증을 받을 무렵은 사지가 뒤틀어지는 듯했다.
실기장의 바이크는 많이 낡아 보였다. 볼품없는 외형에 작동이 잘될까 하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시험장에 들어서자 모두 교육실에서의 장난스러운 표정은 사라지고 긴장된 모습이었다. 다소 여유롭게 보이는 수험생은 배달을 직업으로 한다는 젊은이 몇뿐이었다. 스타트, 장애물, 에서, 직선 등 네 코스를 넘어지거나 규정 선을 이탈하기 않고 통과하면 합격인데 아주 어려워 보이진 않았다.
일 번 수험생이 출발하였다. 그는 서행으로 첫 커브를 진행하다 그만 발을 짚고 선을 이탈하고 말았다. 그 순간 스피커에서는 불합격이란 감독관의 목소리가 나왔다. 대기 중이던 수험생들에게서 웃음소리가 섞여 들렸다.
그러나 이 번, 삼 번, 사 번 수험생들도 연거푸 첫 코스에서 고배를 마시자 웃음은 뚝 끓어져 버렸다. 이어서 퀵 서비스를 하고 있어 자신 있다던 오 번마저 불합격을 받자 남은 수험생의 얼굴은 모두 사색이 되어 버렸다. 그나마 열 번째 응시생이 처음으로 합격하였다. 하지만 대기실에는 다시 올 수 없기에 한마디 조언조차 들을 수 없었다.
“십삼 번” 내 번호가 나왔다. 출발선으로 향하며 긴장된 가슴을 진정시켜보려고 했으나 잘되지 않았다. 앞선 응시생 대부분이 떨어졌고, 수험번호마저 합격과는 멀어 보였기 때문이다. 배정된 바이크에 시동을 걸고 코스를 바라보는데 나 역시 떨어질 게 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이 나이에 이걸 따서 뭐 하겠느냐는 회의감까지 들었다. 합격의 기대를 접어버리자 신기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출발 신호가 울렸다. 일 단 기어를 넣었다. 육중한 바이크에 기어가 물리는 흔들림이 온몸으로 전해왔다. 엔진은 얼른 튀어나가고 싶은 듯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천천히 왼손을 풀며 클러치의 유격을 머리에 담았다. 바이크는 엑셀 레이더를 당길 필요가 없을 정도로 힘차게 나아갔다.
코스에 들어서자 바로 좌회전이었다. 안쪽 선은 무시하고 바깥 라인을 보고 반 클러치로 속도를 조절하며 통과하였다. 이어서 나타난 우회전 역시 같은 방법으로 통과를 하였다. 수험생 대분이 이곳에서 떨어졌기에 무사통과 벨이 울리자 박수가 나왔다. 다음의 두 코스는 비교적 쉬웠고 마지막 직선주로에서 라인을 살짝 밟은 느낌이 들었지만, 스피커에서는 합격을 축하한다는 멘트가 나왔다.
면허증을 받고 나자 불현듯 바이크를 갖고 싶어졌다. 젊은 시절부터 대형바이크를 몰고 국도를 줄지어 달리는 라이더를 볼 때면 가슴이 마구 뛰곤 하였다. 특히 검은 가죽 재킷을 입은 할리 라이더가 묵직한 말발굽 배기음을 내면서 달리는 모습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바이크로 전국을 일주하고픈 것은 나만이 아니라 뭇 남자의 꿈이다. 그것은 일상으로부터의 탈출과 자유이며 때로는 저항을 상징하기도 한다. 가족을 거느린 가장은 목줄을 하는 강아지처럼 자유로울 수 없다. 오랜 시간, 처자식을 먹이고 입히고 결혼시키고 집 장만만을 위해 직장과 집을 왕복하던 그 쳇바퀴를 탈출하고 싶은 거다. 또한 자기보다 늘 앞서가는 잘난 사람들을 바이크를 타서라도 앞서보고 싶은 것이리라.
현역을 은퇴한 용기 있는 사람은 그 꿈을 실행하려고 노력한다. 그렇다면 오래전부터 프리랜서였던 나 역시 천구들이 모두 공직에서 은퇴했으니 사회 통념상 정년이다. 용기도 꽤 있는 편이다. 하지만 바이크가 어디 한두 푼인가 갖추어 입을 재킷과 부츠 가격도 만만치 않다. 게다가 요즘의 라이더는 달리는 모습을 실감나게 촬영하는 헤드 캠, 바이크 전용 내비게이션, 경보기까지 있어야 한다니 용기만 있어서는 꿈을 이룰 수 없다. 인터넷으로 바이크 가격을 알고 나서는 그만 포기하고 말았다.
개나리가 활짝 핀, 어느 날이었다. TV를 보던 중 흥미로운 영상이 나왔다. 서울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의사가 제주 해녀학교에 입학하여 물질을 비우는 장면이었다. 인터뷰에서 그는 병원 일을 마치고 집에 왔지만 급한 연락을 받고 다시 달려간 적이 부지기수였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산다는 게 뭔지, 이렇게 살려고 힘들게 공부를 했는가 하는 회의가 밀려왔다는 것이다. 결국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죽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고 하였다. 남자인 그가 가졌던 꿈이 물질이었다면서 비행기를 타고 와 수업을 받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다 나도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지금도 비록 적은 나이지만, 나의 남은 삶 중에서 가장 젊은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5년이 지나면 그냥 보낸 세월을 후회하리라. 그리고도 우물쭈물……. 또 10여 년, 다리가 후들거릴 그때가 되면 흘려보낸 시간이 아까워 눈물 흘릴 것이 틀림없었다.
얼마 후, 아내에게 바이크를 사겠다는 선언하였다. 당연히 반대하리라 생각했으나 예상외로 그러라고 하였다. 여태껏 사고 없이 타고 나닌 사실을 알고 동의를 했으리라. 게다가 바이크의 가격도 모르고 지원금도 주지 않을 사람이 기왕 사려면 대형으로 사라는 것이었다. 아내의 생각이 바뀔지 몰라 바로 다음 날 예전부터 마음에 둔 바이크를 구입하러 갔다. 비자금까지 톡톡 털어보았지만, 신제품은 바퀴 하나 값도 되지 않아 그저 깨끗한 중고를 애마로 갖게 된 것이다.
엔진을 점검해 볼 겸 팔공산을 한 바퀴 돌았다. 상태가 좋았다. 앞서 타던 라이더가 질을 잘 내둔 덕분에 살짝 당겨도 금세 100Km를 넘겼다. 이 정도라면 가고 싶은 곳이 많을 것 같았다. 설악산도 가고 제주도 일주도 하고 싶었다. 아니 아예 TV에서 본 것 마냥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도 달려보고 싶었다. 새로운 꿈이 나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 헤드 켐과 내비게이션까지 장착하면 나의 가슴은 더욱 고동칠 것이다.
여태 타보지 않았던 바이크를 운전해서인지 피곤이 몰려왔다. 첫 운전의 불안했던 마음이 첫날밤 사고의 꿈으로 표현되었다. 고속으로 달리던 바이크가 가드레일을 뚫고 강으로 추락한 것이었다.
잠을 깨자 헛웃음이 나왔다. 나이가 들수록 조심하라고 이렇게 선명한 꿈까지 꾸는가 보다. 다시 잠을 청하려는데 아직 떨어지지 않는 아카시아 꽃향기가 창을 통해 날아온다. 계절은 아직 나처럼 욕망이 살아 숨 쉬는 늦봄인가 보다.
박경대의 수필집 -<늦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