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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그들의 동료애 / 엄현옥

cabin1212 2021. 1. 15. 06:35

그들의 동료애 / 엄현옥

 

 

 

휴대폰 진동음이 나른한 오후를 단번에 날렸다. 셋째 언니였다.

"너도 생각나지? 혼도니 미도모나이, 그 뜻을 오늘에야 알았지 뭐냐."

평소의 차분함 대신 들뜬 음성이었다. 공소시효가 지난 사건의 단서를 찾은 프로파일러를 방불케 했다.

사연은 5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부모님 둘만의 대화 때 단골로 등장하던 일본어가 있었다. "혼도니! 미도모나이." 두 사람만의 언어 체계는 자식들이 근접할 수 없는 그 무엇으로, 그쯤 되면 우리는 퇴각해야 할 시점이었다. 우리의 다양한 요구사항을 들은 후 일본말이 끝나면 적절한 대안 조치가 내려졌다. "그래, 알았어." 또는 "낼 아침에 주마."가 대부분이었다.

우리의 요구는 학교 준비물이거나 용돈 청구였다. 교생 실습 나온 국어 선생님 이야기나 전학 온 친구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용돈이라야 요즘에 비하면 초라한 액수였지만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포진해 있던 오 남매의 요구는 공무원인 아버지와 전업주부인 어머니에겐 부담스러운 고지였으리라.

그 무렵 우리들은 부모에 대한 무한한 신뢰감으로 그 뜻을 파헤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과거 지배국의 언어에 대한 막연한 비호감도 작용했으리라.

근래 일본어에 입문한 셋째 언이의 말인즉 '혼도니 미도모나이''별꼴 다 보겠네.' 즉 꼴불견인 경우에 쓰는 말이란다. 비교적 무난한 성장기를 보냈다고 자부했기에 억울했다. 우리는 모범생으로 통지표에는 '품행이 방정하여 타의 모범이 된다.'라는 서술이 주종을 이루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미술대학에 진학하겠다는 말을 꺼냈다가 그다지 써먹을 데가 없을 것이라는 아버지의 반대에 군말없이 전공을 바꾸기까지 했다. 셋째 언니는 퇴직 후 무료한 아버지에게 소소한 즐거움을 드리려는 기특한 의도로, 월급을 봉투째 드린 후 용돈을 받을 정도였다. 나름 제 몫을 해왔기에 불시에 '혼도니 미도모나이'로 촌철살인 당할 지경은 아니었다.

시시비비를 가리기엔 공소시효가 지났다. 다른 세상으로 거주를 옮긴 터라 사실 확인은 불가했다. 답답했다. 며칠 동안 마음이 무거웠다. 하늘공원의 억새숲을 걷는 중에도, 지하철 안에서도 '혼도니 미도모나이'는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집요했다.

돌이켜보니 혐의가 없는 것은 아니다. 큰언니는 다된 밥에 코 빠트린 격으로 고등학교 졸업고사에 백지 동맹을 주도했다. 50여 년 전이었으니 당시 그녀의 단체 행동은 파격적이었으리라. 그녀의 삶에서 유일한 투쟁 기록이었다. 부모의 입장에선 무사히 졸업시키기 위한 수습이 쉽진 않았으리라. 오빠는 대학 졸업 후 사회인이 되어서까지 젊음에 술을 타 마시기를 일삼았다. 나는 고지서의 숫자 '1''4'로 고친 적이 있다.

'혼도니 미도모나이'야말로 당시 공문서를 위조한 내게 던진 부모님의 불편한 심사가 아니었을까. 원인 제공자들에겐 대수롭지 않았을지라도 총체적인 뒷바라지와 생활지도는 버거웠으리라. '혼도니 미도모나이'는 그들만의 동료애를 공유할 정서적 돌파구였으리라. 용돈을 거절하거나 잘잘못을 헤아린다면 서먹해질 것이고, 묵인하거나 덮어두자니 왠지 허전하여 독설의 쾌감을 느꼈을 것이다. 애정 전선이 남달랐던 것도 아니었으나, 부부는 거친 바다를 항해하는 동지였다. 자식들의 민원에 대한 부담스러움을 토로하고 결속할 창구로서의 '혼도니 미도모나이'는 카타르시스로 기능한 것이 분명하다.

우리 집에는 대화로 카타르시스에 이를 만한 대상이 없다. 남편은 매기고 받는 추임새에 인색하다. 공유할 만한 화제 끝에 누군가의 허물을 이야기하면서 화살은 나를 향한다.

"그 사람의 입장을 모르면서 한쪽 말만 듣고 말할 필요 있나."

그의 결론은 역지사지易地思之 의 교주인 양 완벽하다. 같은 돌부리에 넘어진 처참함과 부메랑을 수습하면 상황 종료다. 뒷담화가 정서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을 모르는 남편과의 대화는 소실점 없는 평행선을 걷는 무료한 동행이다. 중년의 끝자리에 앉고 보니 가족이라는 배의 무사 항해라면 시시비비를 따질 일도 없이 적절한 의리와 멤버십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가끔은 남편과 동류의식을 주고받으며 나누고픈 말이 있다.

"혼도니 미도모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