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세상/좋은수필 5

[좋은수필]나이 먹는 게 겁나다 / 김상립

cabin1212 2021. 3. 19. 06:08

나이 먹는 게 겁나다 / 김상립

 

 

 

 

사위는 이미 어둠에 먹혔다. 매서운 겨울바람이 앙상한 나뭇가지를 마구 흔들어대고 두 줄기 불빛만이 나를 앞서고 있을 뿐, 길은 적막하다. 여름날 이 길을 가노라면 차가 막혀 거북이걸음을 하기가 예사건만, 지금은 차도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밤이 되면 더욱 활발하게 움직이는 겨울 호수를 만나고 싶어 밀려오는 외로움을 홀로 삭이며 얼어붙은 겨울 길을 열심히 달렸다. 드디어 운문호(경북 청도군 소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차를 세웠다.

겨울을 맞은 호수에 가보면 가쁜 숨소리를 듣게 된다. 얼음 나라가 세력을 확장하여 호수의 숨통을 바짝 조이기 때문이다. 날씨가 추워지면 얼음 나라는 육지에 본부를 차려놓고, 제 영토를 넓히려고 호수 중심부를 향하여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다. 그러나 호수는 얼음 나라의 군사들이 혹독한 동장군을 앞세우고 쳐들어와도 결코 호락호락 항복하지 않고, 물이 제일 깊은 곳을 본거지로 삼고, 밀고 들어오는 얼음 군대와 일전(一戰)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래서 물과 얼음이 다투는 접경지대에서는 매일같이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경계선도 날마다 달라진다. 이런 싸움 통에 얼음 나라가 충격을 받아 날카로운 비명을 내지르며 속으로 갈라지기도 하고, 호수 역시 몸이 멍들고 찢겨져 형태가 이상하게 일그러지기도 한다. 하지만 호수는 그 어떤 불리한 상황에 밀려도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거 품어서 기르는 수많은 생명체에게 숨길 터주는 일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호수가 얼음 나라에 완전히 굴복하고 나면, 일면식도 없던 사람들이 떼로 몰려와 축제를 벌이고 물속의 생명체에게도 위협을 가한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는 까닭에 호수는 큰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쉽게 손을 들 수가 없다.

그리하여 호수는 제 품안에 들어온 것이면 무조건 한식구로 받아들여 포근하게 안아주는 습성을 가지게 되었나 보다. 덕분에 물속의 많은 생명은 아무 탈 없이 목숨 줄을 잇고, 서로에게 몸을 기대며 인연의 깊이를 만들어 간다. 심지어 호수는 자신을 홀대한 사람들에게 복수는커녕 봄에 농사용 물 대줄 준비를 하고, 마실 물까지 정화하려 애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이런 일을 위해 여름보다 더 왕성한 생명력을 내뿜는 겨울 호수를 볼 때마다 나는 충격과 감탄을 금하지 못한다.

두어 달 지나면 새벽 물안개는 그림처럼 피어오르고, 물고기는 세상을 구경하려 텀벙 뛰어오를 것이다. 오리도 새끼를 부화하여 한 줄로 늘어세우고 먹이 사냥을 가르칠 터이고, 물속의 작은 생명체들도 각기 살길을 찾아 분주히 움직이리라. 그리하여 호수 안은 생명력으로 가득 찰 것이다. 생명이 번성하는 것도 자연 섭리요, 다른 생명을 억압하지 말아야 하는 것도 하늘의 이치다. 그러나 현대 문명은 끝없는 경쟁을 강요하고, 권력과 부가 소수에게 집중되는 방향으로 흘러가니 갈수록 많은 생명이 희망을 잃어버리고 삶은 빛이 바래진다. 그 긴 세월을 살아오면서 도대체 나는 어디쯤 서서 누구의 편을 들며 살아왔을까?

지금 눈앞의 겨울 호수와 생애의 겨울 끝을 향해 달리고 있는 자신을 생각해 본다. 내 지난 삶도 진즉 겨울 호수처럼 많은 생명과 함께 어우리지고, 그 누구라도 숨 가빠하거나 추워하면 따뜻하게 품어주려 애써야 했다. 또 때로는 그들을 지키기 위해 내 한몸 던져 위험을 막아주기도 해야 했지만, 그러지를 못했다. 의단 보살펴야 할 사람도 바쁘다는 핑계로 모른 척하기도 했고, 나를 공격한 사람에게는 호시탐탐 반격의 기회를 노렸다. 내 도움이 꼭 필요한 사람에게도 객관적으로 합당한 이유를 먼저 찾으려 했으니 더는 할 말이 없다. 아주 작은 자선이나 재능 봉사를 할 때에도 그 행위 이상으로 은근히 자랑하고 싶은 욕망 때문에 더러 마음고생도 했다.

오늘 바람 부는 언덕에 홀로 서서 겨울 호수를 바라보고 있으려니 내가 사람으로 살아온 긴 세월이 무척이나 민망하다. 올바른 생명 흐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지냈으니, 삶이 늘 부산하기만 했지 제대로 남긴 게 없다. 사회라는 같은 테두리 안에 함께 살면서 내 기준과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협력하는 일이 왜 그리 어려웠을까? 멀리 보면 다른 이의 삶과 내 삶이 같은 길일 수도 있을 것인데 수틀리면 적인 줄만 알고 날을 세웠으니 내 삶 또한 상처를 입을 수밖에. 그냥 열심히 산다는 것과 잘 사는 것은 근본적으로 큰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머리로만 이해하려 했으니 그것 또한 어리석은 짓이었다. 갈수록 세월 값하기도 힘들다는 사실이 피부로 느껴지니 이제 나이 먹는 것도 자꾸 겁이 난다.